[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광복 위해 피 토했던 그들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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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19 06:31:20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가을, 구리시청에서 열린 13도창의군기념사업추진위원회 창립기념 학술대회에 참여했다. 구한말 3대 의병 중 마지막으로 활동한 대규모 부대인 ‘13도 창의군’이 구리시에서 조직된 것을 기리는 행사였다. 대한제국 행정구역은 총 13개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당시 경기도 양주였던 구리시가 바로 13도 창의군의 결성지이면서 서울 탈환 집결지였다. 필자는 그 학술회의에서 구리시에서 출생한 한 여성의 역사와 만났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1860~1935)이다.

해주윤씨 가문에서 윤익상의 딸로 태어난 윤희순은 아버지와 화서학파 동문인 유홍석의 아들 유제원과 결혼한다. 시아버지 유홍석은 춘천을 대표하는 의병장이고 그의 6촌 유인석은 13도의군 도총재를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시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이 의병 투쟁을 위해 나서자 윤희순은 ‘안사람의병단’ 30명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하며 무기와 군자금을 전달했다. 왜병을 꾸짖는 가사를 지어 부르며 항일독립의지를 고취시키던 당찬 여성 윤희순은 어린 아들 돈상을 죽이겠다며 시아버지의 거처를 말하라고 협박하는 일본인 순사에게 아들과 자신이 죽을지언정 시부의 거처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의병장 유홍석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한다. 윤희순은 중국 요령성 산골에서 ‘노학당’을 세워 교장으로 활동하며 50여 명의 애국지사를 길러 냈다.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노학당의 폐교와 시아버지와 남편의 별세로 홀로 남겨진 윤희순은 중국인을 독려하여 일제에 대항하는 기반을 닦는다. 당시 22살이던 큰 아들 돈상과 민상·교상, 세 아들을 일선으로 보내 만주와 몽골에 흩어진 독립투사들을 다시 모아 한중지사 180여 명으로 구성된 ‘조선독립단’을 1920년에 결성한다.

고국 땅에서 이미 ‘안사람의병단’을 조직했던 윤희순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사돈 음성국·아들 유돈상과 함께 가족 부대를 결성하여 밤마다 사격 훈련을 하며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유돈상은 조선독립단학교를 세워 반일사상과 사격술을 가르쳤고,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과 무순습격작전(1932)에 참가하기도 한다.

1920년 김좌진·홍범도 장군에게 대패한 일제는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태우고 모조리 빼앗아 가는 삼광작전을 벌여 만주의 무고한 한국인 3469명을 학살하고 민가와 학교를 불살랐다. 그 시작은 윤희순의 집이었다. 윤희순의 조직적인 투쟁은 일제를 위협하는 무서운 칼날이었기 때문이다. 윤희순은 불길 속에서 어린 두 손자를 겨우 구해 내고는 떠도는 신세가 된다. 이어 큰아들 돈상이 일제에 체포되어 한 달여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어머니 품에서 사망한다. 아들의 희생에 크게 충격 받은 윤희순은 1935년 ‘해주윤씨 일생록’을 집필하고 11일 후 세상을 등졌다. 76세였다. 광복을 10년 앞두고 절명했음이 몹시도 애달프다.

시어머니 사망 후 홀로 남겨진 며느리 음채봉은 어린 아들 둘과 유리걸식하다가 일제의 잔혹한 고문으로 5년 후 33세로 생을 마쳤다. 두 삼촌이 거둔 여덟 살짜리 고아 유연익은 반일독립투쟁의 연락책 임무를 수행했다. 해성에서 심양까지 200㎞가 넘는 길, 무순에서 심양까지 50㎞가 넘는 길은 며칠이 걸린다. 연익은 일제에 들키지 않으려고 피투성이가 된 발로 인적 없는 오솔길을 내달렸다. 굴렁쇠에 의지하여 뛰고 걸으며 삼촌의 편지를 동지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윤희순의 둘째 아들 민상은 1942년에 일제에 의해 살해되었고 셋째 아들 교상은 총에 맞아 불구가 되었다. 1994년 10월17일, 윤희순의 손자 연익은 할머니의 유해를 수습했다. 그렇게 해서 최초의 여성의병장은 사후 60년 만에 독립한 조국에 돌아왔다.

윤희순 의사는 자신과 가족을 조국 독립의 제단에 바쳤다. 남의 나라 깊은 산골로 숨어들어 나무껍질로 연명하며 터를 닦아 학교를 세우고, 중국인을 설득하여 공동의 적과 맞서고, 군사훈련을 하고 애국지사들을 규합했다. 그는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남겼다. 최초의 한글 의병가이며 민족 저항 시가이다. 윤희순은 글로 일제를 고발하고 총을 들어 그들을 겨누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절명한 후에도 어린 아들들을 독려하여 수많은 항일 애국 투사를 키워 냈다. 시아버지와 남편·세 아들과 자신, 그리고 자부까지 가족 모두가 광복을 위해 피를 흘렸다.

올해는 광복 79주년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거름이 된 의병들의 투쟁이 마음을 두드린다. 자손들은 자신의 조상이 그토록 고귀한 희생을 했는지도 모른 채 소외되어 웅크려 살고 있다. 유연익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일제에 협조하고 충성했던 이들의 후손은 떵떵거리며 대한민국을 누리고 있다. 우리 모두는 독립투사들에게 빚졌다. 그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한다. 조국을 위해 부모를 바친 자손들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내 그들이 흐뭇하고 뿌듯하게 살도록 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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