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방송에서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인간이 사는 문명세계에도 살해가 많다는 걸 느낀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동물들의 개체 간 공격은 인간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밀실 살인사건을 재구성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밀실 살인사건이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는 닫힌 공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여성 피해자와 그녀의 자녀인 유아와 영아가 함께 죽었는데 엄마는 마치 자살이라도 한 듯 문에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피해자의 고교 동창이었는데 피해자를 시기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 매우 계획적으로 세 사람을 살해했다. 사건의 발단은 오랜만에 만나게 된 친구를 피해자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데서 시작되었다. 동창에게 자신의 내실 방문까지 활짝 열어 준 피해자의 배려로 가해자는 피해자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미혼에다 취업준비생인 가해자가 생각할 때 자신보다 잘날 게 없는 친구가 자신은 가지지 못한 ‘완벽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친구의 행복은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가해자는 먼저 친구의 남편을 유혹했고, 그 일에 성공한 후 피해자를 죽여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가해자의 치밀한 각본대로 피해자는 놀이를 한다는 말에 속아 아이를 안은 채 눈을 가렸고, 10개월 된 딸을 안은 채 목 졸려 죽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이를 떨어뜨릴까 봐 손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교살당하는 그 순간까지 피해자는 가족 같은 친구와의 완벽한 우정을 꿈꾸었다. 이 사건이 다른 어떤 사건보다 마음 저린 것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순한 양 같은 피해자는 친구의 공격성과 시기심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자신을 구할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우연히 피해자의 시어머니가 가해자와 아들의 수상한 장면을 목격하여 경고를 주었지만 착하기만 한 피해자는 친구를 의심하지 않았다. 가해자와 남편 사이가 들통 나서 가해자와 인연을 끊을 기회도 있었지만 남편의 수습으로 무마되고 말았다.
다른 동물처럼 인간에게도 공격성이 있다. 늑대·하이에나·사자처럼 인간은 종종 같은 종에게 강한 이빨을 드러낸다. 자연계에서의 공격성은 영역과 관련이 깊다. 동물의 텃세는 생존과 번식에 집중되어 있다. 개체의 밀도와 먹이의 유무, 짝짓기의 조건과 새끼 양육의 환경 등이 텃세의 배경이 된다. 개체 밀도가 너무 높으면 새끼의 생존이 어려우므로 출산을 조절하며, 어미들은 새 생명을 기르는 좋은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고 싸운다.
동물에게 영역이 중요하듯이 인간도 그렇다. 동물이 텃세를 하듯 인간에게도 자기 터전을 지키는 본능이 있다. 인간의 텃세 또한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의 장을 지키는 일이므로. 영역은 재산과 물리적 장소뿐 아니라 가족·친지 등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도 포함된다. 텃세 본능이 없다면 집에 울타리도 대문도 없을 것이다. 또한 수많은 계약과 법률과 재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경계선을 긋는다. 법과 관습은 선을 넘은 자를 응징한다.
인간 사회에서 텃세의 생물학적 법칙은 문화와 관습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재산 소유를 인정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한 것은 텃세의 제도화이다. 벨기에계 미국 사회학자 피에르 반 덴 베르거(1933~2019)는 미국 시애틀 부근 휴양지에서 벌어지는 행동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집을 방문할 때 조심스럽다. 방문객은 가족의 영토로 들어오기 전에 일종의 확인 의식을 치른다. 인사나 폐 끼침에 대한 사과 등이다. 문 밖에서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고 목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린다. 집주인이 나오면 어디까지 발을 들여놓아도 되는지 가늠한다. 문지방은 주인이 방문객을 인지하고 안내해야만 넘을 수 있다. 주인이 현관까지 혹은 거실까지 안내하면 예의 바르고 조심스레 실내로 들어간다. 이처럼 선을 지키는 일은 인간관계와 일상에서 필수 에티켓이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타인에게 내어주는 거리, 즉 물리적 간격에는 분명히 차등이 존재한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30cm까지 접근할 수 있다면 그와의 친밀도는 아주 높은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 본능적인 경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느낌 또한 텃세에 뿌리를 둔다. 심리적 텃세는 나를 에워싼 공간을 누군가가 침범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알아챔에 둔감한 사람은 침입자에게 공격을 당할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떠나서 그는 이미 자신의 터전을 무방비로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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