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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논리 파묻힌 노벨문학상 논쟁-주판알 굴리는 정치판의 낯 뜨거운 침묵', '소설가 한강(韓康·53)의 노벨문학상 선정발표는 공전의 선풍적인...'))
소설가 한강(韓康·53)의 노벨문학상 선정발표는 공전의 선풍적인 희소식이다.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언론 매체는 대서특필로 반겼다. 외신들도 앞다투어 속보 형식으로 경쟁했다. AP는 백인·남성·서구 중심이라고 비판받아 온 노벨문학상이 아시아 여성 작가에 최초로 주어진 것은 ‘놀랄만한 사건’이라고 타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강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인 ‘채식주의자’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선구자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한 쾌거”라고 적었다. NYT는 이어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9살 때 서울로 이주한 한강의 성장 배경을 비교적 소상히 조명하면서 그의 문제 작품은 페미니스트적인 색깔이 돋보인다”고 논평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한강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itense poetic prose)’을 선보였다”고 밝힌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이유는 매우 인상적이다.
한강은 31살 때 시(詩)로써 늦깎이 등단했다. 그녀는 또 하나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에서 국가폭력에 항거하는 약자의 분노와 두려움을 표현함에 있어 시적음조(詩的音調)를 섬세하게 구사함으로써 감성(感性)의 파장을 폭넓게 주름잡는데 성공했다.
야심작인 ‘소년이 온다’는 광주5·18사태에 초점을 맞춘 장편이다. 제주4·3사태를 주제로 삼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품은 폭력에 의한 상처를 부여잡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론가들은 마치 오래된 LP의 선율처럼 독자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고 지적한다.
두 편의 작품은 하나같이 유니폼 군인·경찰(군경)의 위협에 짓눌린 민초(民草)들의 눈물과 여한(餘恨)을 끄집어내는데 역점을 둔 흔적이 뚜렷했다.
한강 작품이 마치 한강의 기적처럼 국제 문단에 진한 인상을 각인시킨 까닭은 그녀의 독특한 서정적 문체에 있다. 한강의 글은 지독한 폭력을 다루면서도 시적(詩的)인 ‘그림자’와 ‘가락’을 놓치지 않은 마음의 뿌리가 단단했다는 점이 독보적이다.
한강 수상은 지구촌 후미진 구석에까지 넘실거리는 한류(韓流)의 음영(陰影)이 일조했다는 주장도 귀담아야 한다.
지금 이시간 5대양을 누비는 무역선박 중 73%가 한국 조선소에서 만든 것들이다. 동서양 집집마다 손맵시 고운 가전제품과 핸드폰 50%는 ‘메이디 인 코리아’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3명의 공동수상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로빈슨(64)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빈국에 머물렀던 한국의 경이적 고도성장 원동력은 박정희 대통령의 폭발적인 리더십이라고 지적, 수출주도 성장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복합요인의 연동(連動)현상이 각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제고를 뒷받침했다는 분석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대목에 힘이 실린다.
경축일색의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또 다른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것은 굳이 간과할 수 없는 유의미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강 문학을 정조준한 매서운 비판의 목소리가 솟구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는 이 땅의 현대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골라잡는 외눈박이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여론몰이가 만만찮다.
‘전라도’ 태생임을 곧잘 앞세우는 호남 거주 정재학(69) 시인은 17일 발표한 장문의 글에서 “한강의 문학은 독(毒)이다. 당언컨대 그의 문학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적성(敵性)이다. 어쩌면 청소년의 영혼을 비릿한 정액 냄새로 타락시키는 패륜 문학일 수 있다”고 후려쳤다. 정시인의 글은 이어진다.
“1970년생 한강이 10살이었을 때 5·18이 있었다. 나는 당시 광주에서 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필자가 겪은 국군은 총을 쏘면서 데모를 진압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총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총탄 없는 총에 의해 시민이 죽었다는 표현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국군은 악마가 아니다”라고 찍어 돌렸다.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여류 김규나(金葵娜·56) 작가도 자신의 페이스 북에 올린 글에서 “축제를 벌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다만 부끄럽다. 그리고 슬프다”라고 속맘을 털어놨다.
그녀는 노벨문학상 가치의 추락, 문학 위선의 증명, 그리고 역사 왜곡의 정당화라는 집약적인 언어를 동원하는데 털끝만큼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한강의 편협한 현대사관을 신랄하게 비판한 김 작가의 글에는 엄청난 찬·반 댓글이 달라붙었다.
전여옥(田麗玉·17·18대 국회의원)은 자신의 전여옥TV에 출연하여 한강 문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소감을 밝혔다. 전 전 의원은 좌익사상에 뿌리를 박은 한강문학은 6·25전쟁을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읽고 있으며 북한의 남침을 ‘이승만의 북침’으로 몰아세우는데 동조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한강 작가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힌 전 전 의원은 “폭력을 저주하는 한강이 북한 세습정권의 포악한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예리하게 몰아세우면서 “한강의 세계관은 좌편향의 집착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쏴붙였다. 한강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목청을 높인 그녀는 한강의 세계관은 완벽하게 비뚤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과 유튜브공간을 사로잡은 한강 작품을 에워싼 논쟁이 요란하다. 사나운 불꽃처럼 피어오른 시시비비를 죄다 옮기기엔 필자에게 주어진 지면이 너무나 비좁다.
다만 한 가지만은 꼭 짚고 넘기고 싶다. 한강의 부친인 한승원(韓勝源·85) 원로작가가 당시 13살짜리 꼬마인 한강에 5·18 사진첩을 보여주면서 덧붙인 설명의 내용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비좁은 어린 가슴에 씨앗처럼 흩뿌려졌을지도 모를 ‘아버지의 언어’가 한강의 오늘을 육성한 정신적 대들보였다고 봐야 옳지 않을까.
정치판에서는 어설픈 침묵 모드다.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한마당을 온전히 간수하지 못한 채 손익계산 주판 알 굴리기에 푹 빠져 있는 정치의 머쓱한 몰골이 역겹다.
소프트 파워·하드 파워 나란히 어깨동무하여 선진국 문턱을 거뜬히 넘어선 오늘의 대한민국. 진영 논리에 파묻힌 우리네 정치판의 민낯이 부끄럽고도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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