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믿음직스러워하는 여자의 눈빛을 기대하는 사내의 심리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소.”
유지오가 과거를 돌아보듯 잠시 면회실의 회색 벽을 쳐다보았다. 나방 한 마리가 앉아 있을 것만 같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채를 발밑에 툭 떨어뜨렸소.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말이오.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소. 법을 다루는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잔혹할 수 있냐고 그녀가 따졌소. 어이가 없었소. 나는 항변했소. 나비하고 나방도 구별 못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오.
나방을 내보내 봐야 불빛을 찾아 뛰어들거나 숨도 끊어지지 않은 채 새의 부리에 살을 뜯길 거라고, 거미줄에 붙잡혀 서서히 말라죽을 거라고, 그러니 단번에 죽여 주는 게 자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말했소.
그건 우리 몫이 아니야, 그녀가 소리쳤소. 나비가 나방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편견일 뿐이라고 그녀가 말하더군. 자연이 그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우리들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였소. 벽면 가득 나방들이 붙어 있어도 그렇게 말할 거냐고, 나방이 그렇게 소중하면 애완용으로라도 기르라고, 나는 비아냥거리고 말았소.
나방으로 시작된 그 밤의 다툼은 우리가 더 이상 서로를 견딜 수 없다는 걸 증명했소. 다음날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없었소.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투덜거린 적 없는 여자였소. 그때 깨달았소. 그녀는, 나와 전쟁을 하고 싶었다는 걸 말이오. 그녀가 내게 남긴 건, 나방의 한쪽 날개가 붙어 있던 책 한 권뿐이었소.”
유지오가 나를 쳐다보았다.
“이혼 과정에서 정하운 씨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있소. 트러스트 미에서 일하게 된 과정까지 말이오.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도로 지냈소. 하루는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왜 혼자냐고, 그녀가 물었고 나는 이 얘길 해 주었소. 내 말을 듣고 나서 그녀는 언제나처럼 냉소적으로 말했소. ‘당신은 곧 카르마를 체험하게 될 거예요. 정하운이라는 불꽃에 뛰어들어 재도 남김없이 타 버릴 테니까요.’ 웃지도 않고 잘도 말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 먹었소.”
나를 향해서는 절대 웃어 보이지 않던 그의 입술이, 하운을 떠올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날 이후 지난 5년간 우린 친구로 지냈소.”
나는 하운이 바라던 남자가 유지오라는 걸 깨달았다. 주결이 쓰러진 다음 날, 하운이 유지오에게 주결의 상태를 알렸고 그는 다시 에바에게 연락했다. 그 결과 주결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에바가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하운이 받은 전화는 그녀가 한국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이었고 에바가 도착하기 전 혹시라도 쓰러지지 않을까, 하운이 애써 주결을 병원에 데려간 이유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에바를 마중한 것은 유지오였다. 파티에 참석하는 대신 혼자 남겨진 주결을 주말 동안 지키기 위해 한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린 것도 이 남자였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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