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화끈거렸다. 동시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온몸이 경련과 함께 와들와들 떨렸다. 전율할 충격이었다. 라라는 무너질 것 같은 몸을 겨우 버티면서 물었다.
“이거 제가 가져도 될까요?”
“그럼, 가져가. 익명의 투서는 아무도 신경 안 써. 여기는 말 공장이잖아.”
황 부장이 직접 허락했다. 박 피디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고, 양 피디의 추천을 받아들여 라라를 프라임타임 작가로 채용한 황 부장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라라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나가 펑펑 울고 엉엉 통곡했다.
‘실력으로 일하려 들지 않고 알량한 몸으로 일을 하려 든다.’
그게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내가 이런 소리까지 들을 지경이 되었나. 내가 그 정도로 형편없는 건가. 그래서 진행자가 원고를 거부하는 건가. 이 투서는 누가 왜 쓴 걸까.’
머릿속에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안 피디가 그녀를 찾으러 왔다가 그녀가 우는 걸 보고는 오히려 미안해했다.
“저, 김 피디님이 민 작가님 불러오래요, 지금 할 게 많다고. 너무 힘들어 마세요. 근데 누구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라라는 말 대신 고개를 저었다. 우체국 소인을 보니 마포구였다. 그곳에 사는 작가는 역시 같은 부서에 있다가 얼마 전 일을 손에서 놓은 그녀였다. 그런데 그 여자 작가는 언젠가 같이 점심을 먹고 방송국 내 공원을 산책하면서 라라 씨는 천상 여자야, 라고 했던 바로 그녀였다. 라라가 선배 작가로 믿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든 다른 정황은 그 여자 선배 작가의 소행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안 피디가 말했다.
“우리 부서 사람 맞겠죠. 회식 때 일을 언급한 걸로 봐서?”
라라는 고통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의심하지 말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넘겨짚고 썼겠지.’
김 피디 앞으로 간 라라는 말했다.
“저, 그만둘게요. 이런 투서를 받고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제가 너무 부족한가 봐요.”
그러자 김 피디는 격앙된 목소리로 되받았다.
“누군가가 라라 씨를 쫓아내려고 작정하고 투서 보낸 건데, 진짜 나가면 그 사람들 뜻대로 되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버티고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죠. 이 바닥이 얼마나 독종들이 모인 곳인데요. 그렇게 여리고 순진해서는 여기서 못 버텨요. 우리 지금 특집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단 말예요.”
권 차장은 라라와 젊은 남자 피디 김 피디와의 관계를 의혹의 시선으로 보는 눈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 부장이 한마디 했다.
“내가 방송일 하면서 이런 일 두세 번 겪었어.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아주 드문 일도 아니지. 간혹 새로 온 사람이 잘 나가면 이런 일이 생기더라고. 민 작가는 일 시작한 지 한 텀밖에 안 됐는데 일찍 겪는 편이지. 보통 2∼3년차 돼서 좀 뜨려고 하면 저런 일로 끌어내리더라고. 안타까운 일이지. 피디들은 그러면 부담 생겨서 같이 일하기 겁내게 되지. 그런 걸 노리는 거라고 봐.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힘내. 민 작가 약하지 않찮아, 안 그래? 그래서 내가 작가 선정 결재한 건데. 여기선 실력밖에 없어. 상당히 힘든 동네지, 허허.”
그 투서는 머지않아 예언이 되어버렸다. 투서 사건은 김 피디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는 힘들어하는 라라를 지탱해 주기 위해 마음을 써주었다. 늦게 일이 끝나고 버스를 여러 차례 갈아타고 가는 라라를 매일 아현동 집으로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목이라 전혀 문제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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