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5~100% 관세 예고’에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미국산 수입을 늘리겠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관세가 미국 물가를 높일 것’이라며 경고 내지 반발하던 입장에서 선회한 셈이다. “(미국산을 더 사는 것이) 승자 없는 난타전으로 이어질 보복 (관세) 전략보다 양호한 시나리오”라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강조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발(發) 관세폭탄 엄포를 ‘협상용 카드’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미국산 구매 확대’ 등 상호 이익을 꾀할 방안을 모색하려는 분위기가 뚜렷해졌다. 우리 정부 역시 대미 무역수지 균형을 위해 원유·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 증대를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트럼프 첫 임기 당시 철강 관세 등 무역 현안을 두고 갈등을 겪었던 유럽연합(EU) 또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농산물 수입 확대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8일 미국산 LNG 수입확대 방안을 트럼프에게 제안한 사실을 공개한 것도 주목된다. 헝가리에서 비공식 EU 정상회의를 열어 트럼프 재집권 대응 전략을 논의한 직후였다. 심지어 “러시아산을 미국산으로 대체하면 에너지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 러시아 의존도를 낮출 수 있어 미국·EU의 공통 이익”이라고까지 했다. 이는 탈냉전(소련 해체) 이후 값산 러시아산 에너지에 기반해 서유럽의 번영이 지속됐다는 팩트와 어긋난 해석이며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는 태도가 읽힌다.
최근 FT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EU에서 미국산 농산물·LNG·무기 등 구매를 늘릴 방침을 고려 중이다, 군수품 조달에 미국 기업 참여를 허용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더 긴밀히 협력할 준비를 하고 있다 등의 보도를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향한 방위비 압박과 함께 트럼프식 ‘공짜 없음’ ‘미국 우선주의’의 구체적 퍼포먼스가 될 관세 정책에 다들 긴장한 모양새다.
트럼프는 19세기 후반 미국이 관세로 국부를 늘리던 시절을 되새기며 관세 수익 증가가 소득세 필요성을 줄여 준다고 주장한다.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 관세, 중국산에 6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마약유입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취임 첫날 멕시코·캐나다에 25% 관세, 중국엔 기존 관세에 10%를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미 남부 국경 단속 강화로 불법이민의 북부 경로 이용이 늘어 캐나다마저 피해를 볼 위험에 처하자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뉴스 나온 지 나흘 만에 플로리다의 트럼프 자택으로 날아갔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의 조치에 관세로 맞대응하겠다면서도 대화를 통한 접점찾기에 애쓰고 있다. 지난달 27일 트럼프와 통화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양국 간 우호관계에 동의했다. 관세전쟁은 없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또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가 멕시코 공장 부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관련 질문이 나오자 “확정된 투자는 없다”며 중국과도 거리두기를 했다.
업그레이드된 무역전쟁의 사실상 한복판에 선 중국은 미국산 대두(콩) 구매 등을 이어가고 있다. 볶음·튀김 요리가 주종인 중국에서 식용유는 예로부터 쌀·땔감과 함께 가장 중요한 식생활 필수품이다. 지난달 28일 소식통을 인용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영업체가 지난주 비축을 위해 최소 8건의 대두 화물을 구매했다. 미 농무부 자료엔 중국이 2024∼2025년 미국산 대두 13만2000t을, 이번 미 대선 이후 따로 500만t 이상을 더 사들인 기록이 있다.
‘트럼프주의’의 골자는 ‘서민·중산층 중심의 건강한 미국’ ‘강한 미국’의 복원이다. 이들 두 목표란 나뉠 수 없는 화두이며 ‘강한 미국’을 위한 주축의 하나가 ‘달러 패권’이다. 따라서 이에 도전할 조짐을 보여 온 비(非)서구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CIS 브라질·러시아·중국·인도·남아공)를 향해 트럼프는 ‘100%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 바이든 정부 내내 BRICS가 EU보다 활기찬 움직임을 보였고 이란·사우디아라비아도 가세한 상태였으나 별안간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BRICS 국가들이 달러에서 벗어나려 한다. 미국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새로운 자체 통화든 기존 통화든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 수출시장으로서의 미국과 작별하게 될 줄 알라”고 목소리 높였다.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 수지 개선에 유리할 ‘약(弱) 달러’를 선호하지만 달러 패권 도전엔 매우 단호하다. 세계 패권을 중국 등 그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다.
10월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BRICS 정상회의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무기화한 달러’를 지적하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퇴출이 2015년부터 크림반도 합병으로 인한 서방 측 제재에 내성을 기른 러시아 경제에 결정적 타격은 되지 못했으나 심정적 타격이 상당해 보인다.
다만 달러 패권에 가장 먼저 도전 노력을 개시한 나라이자 최대 위협은 중국이다. 미·중 무역분쟁 본격화 이전인 2014년 경부터 이미 위안화의 기축통화화가 추진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22년 중동 국가의 석유·가스 수입시 위안화 결제를 밝혔으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양국 교역에서 각자 자국 통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트럼프 귀한으로 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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