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5] 새로운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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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30 06:30:36

수정이 방문을 잠그는 일은 드물었다. 엄마 아빠가 항상 노크하고 인기척을 충분히 낸 후에 수정의 방에 들어섰기에 수정이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사내라면 모를까. 승연은 수정의 방문을 두들겼다.

“얘기 좀 해. 니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사실과 달라. 그런 거 아니야. 승준 엄마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승연은 문밖에서 승준 엄마가 지난번 만남에서 기분이 언짢았던 일을 수정에게 상기시켰다. 그것 때문에 골이 난 거라고. 학교에서 마주치고 연락도 하는 사이인데 나를 알았다면서 지금까지는 뭐하고 이제 와 옛날 얘기를 꺼내겠어, 수정은 반응이 없었다. 분명히 침대에서 이불 둘러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수정이 화났을 때 하는 행동이다. 늦게 낳아 애지중지 키운 딸이지만 버릇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화가 충분히 연소할 때까지 시간에 분을 담아 폭발을 지연시킬 줄 아는 아이였다.

승연은 승준 엄마가 고등학생인 수정에게 무슨 말을 어디까지 했는지, 생각할수록 부아가 났다. 이 여편네가! 수정과 얘기하려고 문을 여러 번 두들겼지만 수정은 문을 열거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 얘긴 안 듣고 승준 엄마 말만 믿는 건 아니겠지? 네가 듣고 싶은 진실이 엄마 입에서 나와야 하잖아. 맞아 엄마도 시위했어. 대학생 대부분이 시위 한 번씩은 했던 시절이었다고. 하지만 승준 엄마가 한 말은 내가 모르는 얘기야.”

수정은 꿈쩍하지 않았다. 딸이 승준 엄마 말을 믿을까 봐 딸의 침묵이 두려웠다. 승연은 기다려야 했다. 딸은 노여움이나 화가 풀리면 먼저 말을 걸어 오는 타입이다. 수정은 충분히 생각하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사과하곤 했다. 그러니 변명이 길어지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나았다.

문에 귀를 대고 수정의 동태를 살피던 승연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서재로 갔다. 서재 책장 맨 아래에 꽂혀 있는 앨범을 뒤졌다. 대학 졸업앨범은 친정집에 있었다. 대학 때 찍은 사진들을 넣어 둔 사진첩을 몇 년 전 친정집에서 가지고 온 기억이 났다. 친정어머니는 세 남매에게 각자 자기들 책과 앨범을 정리하라 하셨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승의 짐부터 정리하고 싶다고. 자식들이 출가하면서 남겨 놓고 간 과거의 짐들은 이제 각자 정리하라셨다. 결혼하면서 여고 졸업앨범·대학 졸업앨범·이념 서적들은 잊고 싶은 정신적 짐이었다. 20대를 몽땅 날린 이념 서적들은 어머니네 분리수거장에 내려놓고 사진첩만 가져왔다. 결혼 전 추억이 담긴 사진첩을 집으로 가져온 뒤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책상 아래 쭈그리고 앉아 대학 시절 사진첩에 승준 엄마가 찍힌 사진이 있는지 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준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어디서 만난 사이인지, 승연을 기억해 낼 만큼 가까운 사이였는지 알아야 했다. 승준 엄마는 얼굴에 칼을 댄 티가 많이 났다. 분명히 쌍꺼풀을 한 눈이었고 코에 인공 보조물을 넣은 자국이 선명했다.

‘턱까지 손댔다면 알아보기 힘들 거야. 대학 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 못 할 수도 있어.’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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