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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영국 노동당 정부의 지지도가 급락해 총선을 지금 다시 치른다면 의석수가 절반쯤 줄어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싱크탱크 모어인커먼의 여론조사(10월31일∼12월16일) 분석 결과, 당장 총선이 열린다면 노동당 228석·보수당 222석으로 예상됐다고 선데이타임스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심지어 득표율은 보수당이 26%로 노동당(25%)을 앞섰다.
가장 눈길을 끈 점은 ‘극우 포퓰리즘’ 취급을 받아 온 영국개혁당이 72석으로 3위를 차지하고 득표율(21%) 역시 양대 정당 못지않은 수준으로 예측됐다는 사실이다. 7월4일 치러진 총선에서 노동당이 650석 중 412석을 얻어 압승했고, 보수당 121석, 자유민주당 72석, 영국개혁당 5석이었다. 서유럽 주요국에서 이른바 ‘극우 정당’이 약진하는 가운데 노동당이 지난 총선에서 창당 124년 만의 대승을 거둔 것은 보수당 추락의 반사이익이었지 좌파의 승리가 아니었다. 반(反)이민을 앞세운 신생 정당인 영국개혁당의 원내 입성이 오히려 더 주목받았다.
이번 여론조사에선 영국개혁당이 중도우파 보수당과 중도좌파 노동당 내각 주요 인사 의석까지 빼앗는다고 분석됐다. 심지어 현 내각 장관 중엔 7명이 의석을 잃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앤절라 레이너(부총리)·이베트 쿠퍼(내무장관)·존 힐리(국방장관) 등 6명이 영국개혁당에 의석을 내준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기관 JL파트너스의 분석 결과 역시 비슷했다. 지금 당장 총선이 치러질 경우 노동당 256석, 보수당 208석, 영국개혁당 71석으로 전망됐다.
무엇보다 분배 정의가 중요한 노동당이지만 스타머 총리는 성장에 힘쓰겠다고 약속하며 취임했다. 그러나 집권 첫 분기(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이 당초 추정치보다 낮은 ‘제로’(0)를 기록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19일 올해 4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3% 성장에서 0.0%로 수정했다.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은 “15년간 방치된 경제의 정상화란 힘든 일”이라며 전임 정부에 책임을 돌린 뒤 “예산과 개혁안을 통해 지속 가능한 장기 성장을 창출하겠다”고 다짐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4분의3이 중도우파 정당 단독 내지 우파 정당이 최소한 하나 포함된 연립정부가 집권 중이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선 프랑스 국민연합(RN)·독일대안당(AfD)·이탈리아형제들(Fdl)이 크게 도약했다. 모두 극우 포퓰리즘으로 손가락질 받아 온 정치세력들이다. 내년 2월 조기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도 불법이민 차단을 앞세운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AfD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 독일 뒤셀도르프 하인리히하이네대의 슈테판 마르샬 정치학 교수는 “극우 정당이 엘리트를 향한 지속적인 비판을 통해 굳건히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유럽 각국에서 우파 정당들이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산업국가에서) 진보의 시간은 끝났다, 적어도 지금은”으로 요약했다. 경제난과 이민증가에 따른 납세자들의 불안감 외에 기후변화와 성(性)정체성, DEI(다양성·평등성·포용성) 등 이른바 ‘진보 아젠다’에 사회적 피로도가 극심해졌다는 점이 지적됐다.
서구권 전문들은 경제침체 속에 이민자 증가와 이들을 배려한 정책이 반발을 불렀고 자국중심주의 열기로 이어진 점을 지적한다. 평생 민주당 당원이었지만 현재는 중도우파 성향의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인 루이 테이세이라는 “노동자 계층이 이민과 문화전쟁에 시달리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제적 보상에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엘리트들이 지난 20~30년 이끌어 온 이슈들이 현실과 괴리된 ‘패션 좌파’ 지적 유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게 사실이다. 우르줄라 뮌히 독일 투칭 정치교육아카데미 소장은 “어떤 섬이 바다에 가라앉을지보다 자신의 일자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짚었다. WSJ은 과거에도 좌파·우파가 번갈아 집권하긴 했지만 이젠 기성 정치권·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으로 기득권에 맞선 정당이 힘을 얻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가 각국의 실제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역시 전형적인 사례에 속한다. 트럼프는 ‘기득권 타파’를 외치며 나타난 인물이다. 미국에서 공화당이 기득권 정당이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난 20년간 뚜렷하게 공화·민주 처지가 뒤바뀌었다. 서민·중산층이 몰락하는 가운데 민주당이 고학력·고수입 엘리트 집단 이익을 대변하게 됐다. 트럼프가 지난 4년 당내 네오콘 세력을 퇴출시키고 이젠 공화당이 보수적 가치와 노동계층을 위한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트럼프주의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캐나다에선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정책 연합을 맺었던 신민주당(NDP)이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하면서 총리직을 내놔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조기 총선을 치른다 해도 높은 인플레이션과 주택 비용 상승, 개방적인 이민 정책에 분노한 표심으로 여론조사에서도 보수당에 큰 차이로 뒤지고 있는 만큼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한 현지 여론조사에선 트뤼도 총리보다 트럼프 당선인에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 캐나다인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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