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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최고위급 인사다. 고인은 북한 사회주의 독재 체제의 민낯을 가감 없이 폭로했다. 기자는 2010년 고인이 별세할 때까지 수년간 서울 모처의 안전가옥(안가)에서 탈북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매주 만난 바 있다.
기자의 뇌리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말이 있다. 고인은 공산 체제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단 한마디로 명쾌히 설명했다. “그들은 ‘인간의 탐욕’을 망각했다.”
사회주의, 즉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의 핵심은 ‘부(富)의 분배’다. 그런데 전 국민이 부를 나누려면 이를 배분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재화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알아서 가져가시오” 하면 누구는 많이 갖고 누구는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배량을 정확히 계산해 부를 나눠 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고로 재물 앞에서 성인군자는 극히 희귀한 법. 배분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 전 재화의 99%를 제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나머지 1%만 국민에게 나눠 주고 “우리가 못 사는 건 다 누구(북한을 예로 들면 한·미의 경제 제재) 때문이다”고 하면 그만이다. 혹여 분배자의 횡령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프롤레타리아(노동계급) 체제에 저항하는 인민의 적” 등으로 몰아 숙청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되면 공산 체제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보다 더한 빈부격차가 발생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자칭 사회주의 지상낙원’ 북한을 보자. 김정은과 로열패밀리가 허연 뱃살 과시하며 초호화 특각(별장)에서 최고급 샴페인을 터뜨릴 때 북한 주민들은 꽃제비(걸인)로 전락해 굶어 죽고 있다. 2023년 12월20일 우리 통계청이 내놓은 ‘2023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에 의하면 2022년 기준으로 남북 간 1인당 소득 격차는 30배로 확대됐다.
지배계급의 부의 독점은 필연적으로 1인 독재로 이어진다. 1923년생인 황 전 비서는 1954년 모스크바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소련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1인 독재 체제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생생히 목도한 바 있다. 고인의 생전 증언에 의하면 소련 체제의 설계자 레온 트로츠키를 제거하고 블라디미르 레닌에 이어 분배권을 쥐게 된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급 독재라곤 하지만 노동자가 너무 많아 의견일치가 안 된다. 한 명의 탁월한 노동자가 독재를 해야 한다.”
사람은 돈이 있는 자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강철의 대원수’가 된 스탈린은 굴라그(강제노동수용소) 및 내무인민위원부(NKVD·비밀경찰) 운용 등 전 소련을 공포정치로 다스렸다. 스탈린에 반대한 이들은 상술한 트로츠키처럼 죽음으로써 대가를 치르고 사후에는 명예마저 말살됐다. 한때 소련에서 가장 강도 높은 욕설 중 하나가 “트로츠키 같은 놈”이었다.
1인 독재는 필연적으로 경제 악화로 직결된다. 1인 독재 체제하에서는 자연스럽게 능력보다는 충성심 우선으로 인사가 이뤄진다. ‘이념에 복무한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가 대표적이다. 소련의 농업 육종 연구자였던 그는 춘화(春化) 처리한 겨울밀의 2세대 종자는 별도의 춘화 처리 없이도 봄 파종용 밀이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교육과 노동을 통한 공산주의형 인간 개조 이데올로기의 과학 버전이었다.
1인 독재를 위해 자신을 도와줄 이들이 필요했던 스탈린은 서방 유학파 출신의 유능한 니콜라이 바빌로프 등을 숙청하고 리센코를 중용했다. 유사과학을 국가 시책으로 받아들인 결과 소련의 농업은 말 그대로 ‘폭망’했다. 소련은 ‘미국’에서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서방 진영에서 유행한 공산주의 유머 중 하나가 “소련이 미국을 앞지르지 못하는 까닭은 바지엉덩이 기운 자리 들킬까 봐”였다. 황 전 비서는 이 점을 촌철살인이 담긴 한마디로 명쾌히 설명한 것이었다.
야당이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 포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여당에서는 “오른쪽 깜빡이 켜고 좌회전” 등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25만 원 지급은 국민의 돈을 거둬 국민에게 나눠 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기에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 야당의 ‘카카오톡 검열’ 논란 등을 두고 ‘1인 독재 예행연습’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공동 분배와 이에 따른 1인 독재는 결국은 전 국민의 ‘평등한 공멸’로 직결된다. 야당은 행동으로써 의심을 불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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