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48] 데이지는 햇빛 아래서만 꽃 피우는 ‘태양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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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이나 구절초와 꽃 모양이 비슷한 데이지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2-10 10:54:36

▲ 데이지는 ‘태양의 눈’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윤상구 사진작가

데이지(daisy)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이다. 그런데 그 품종이 다양하고 비슷한 모양의 꽃이 많아 ‘이것이 데이지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쉽지 않다. 특히 샤스타데이지와 마가렛·구절초는 꽃 모양으로는 식별하기 어렵고 개화 시기나 잎 모양으로 제 이름을 찾아야 한다.

샤스타데이지는 봄에, 마가렛은 여름에, 구절초는 가을에 꽃이 핀다. 또 샤스타데이지 잎은 길쭉하고 구절초 잎은 쑥갓 모양이며 마가렛 잎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생겼다.

데이지는 ‘태양의 눈’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흐린 날이나 밤에는 피지 않고 햇빛이 있을 때만 피는 꽃의 특성을 이 이름이 말해준다. 데이지의 꽃봉오리와 꽃잎·씨는 훌륭한 식재료이다. 샐러드·샌드위치 등 채소로 만든 요리에 잘 어울리는데 꽃잎에서는 단맛이 나고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식감도 좋다.

데이지는 오래전부터 약으로 쓰였고 효능이 뛰어나기로도 유명하다. 잎으로 만든 연고는 타박상 등 외상을, 잉글리시 데이지 뿌리 달인 즙은 습진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고 미백 효과가 있어 화장품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미국 국민을 경악에 빠뜨린 ‘데이지 광고’

▲ 데이지의 꽃봉오리와 꽃잎·씨는 채소로 만든 요리에 잘 어울리는 식재료이다. 윤상구 사진작가

여러 개의 꽃술을 중심으로 기다란 꽃잎들이 둥글게 붙어 있는 꽃. 이런 모양으로 비슷하게 생긴 꽃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들판이나 화단·골목길 등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이 꽃잎들을 하나씩 떼며 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데이지 꽃잎 떼기’ 놀이가 미국 국민을 경악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1년 후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고 상대 공화당 예비 선거와 전당대회에서 젊은 상원의원 배리 골드워터가 유력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공천권을 받아냈다.

골드워터는 “소형 핵무기를 일반 폭격 무기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자유를 위해 핵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라는 등의 발언으로 평소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존슨 쪽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흑인 민권 운동의 강경한 옹호자인 휴버트 험프리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이에 반대하는 남부 사람들이 골드워터 지지로 돌아섰다. 10%대에 그치던 골드워터 지지율은 30%대까지 치솟았다. 위기감을 느낀 존슨 캠프는 핵 사용을 껌 씹듯 쉽게 입에 담는 골드워터의 평소 언사를 광고에 이용하기로 했다.

네거티브 광고의 시작이자 고전 ‘데이지 소녀 광고’

광고는 세 살 정도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꽃잎을 따며 숫자를 세는 앙증맞고 평화로운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일곱, 여섯, 여섯, 여덟, 아홉” 아이가 서툴게 꽃잎 개수 아홉을 세는 순간, 10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윽고 소녀의 까만 눈동자가 클로즈업되고 그 안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불기둥과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무서운 화염이 제법 길게 화면을 메운다.

그 영상을 배경으로 존슨 후보의 음성이 나온다.

“…세상을 신의 아이들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어둠 속으로 빠질 것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어서 “11월3일, 존슨에게 투표하십시오. 집에 머무르기에는 여기에 걸린 판돈은 너무나 큽니다”는 카피가 나오며 광고가 마무리된다.

이 광고는 1964년 9월7일 밤 10시 무렵 딱 한 번 방영되었다. 골드워터 캠프의 강력한 항의는 물론 “저렇게 무서운 영상을 틀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에 백악관 측이 광고를 즉각 삭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방영으로 이미 전 국민은 충격과 공포에 빠지고 말았다.

존슨의 당선은 ‘데이지 소녀 광고’ 효과

▲ ‘데이지 소녀 광고’는 정치 광고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텔레비전 네거티브 광고의 시작이자 고전이 되었다. 윤상구 사진작가

광고는 중지됐지만 주요 방송사에서는 뉴스마다 이 광고를 틀었고 엄청난 효과를 본 민주당에서는 아예 골드워터를 겨냥한 광고를 시리즈로 내놓았다. 이후 ‘데이지 소녀 광고’는 정치 광고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텔레비전 네거티브 광고의 시작이자 고전이 되었다.

‘데이지 소녀 광고’가 방영되었을 때 골드워터의 낙선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광고에는 이름 한번 거론되지 않았지만 골드워터는 득표율 61.1% 대 38.5%, 선거인단 수 486 대 52로 선거에서 참패했다. 존슨은 50개 주 중 44개 주 석권이라는,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었는데 그가 이뤄낸 득표율 61.1%는 미국 역사상 어느 후보도 얻지 못한 대기록이었다.

광고 앞부분이 유난히 평화로운 분위기였기에 뒷부분 폭발은 사람들에게 더 큰 놀라움과 공포심을 안겼다. 그런데 왜 하필 데이지였을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꽃이었기 때문일까? 광고 효과는 컸지만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린 데이지꽃을 볼 때마다 한동안 그 무서운 불기둥과 화염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렇게 ‘데이지 소녀 광고’는 많은 사람의 평범한 일상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참 잔인한 성공이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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