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한복판으로 접어드는 ‘4말5초’. 이즈음 경상남도 밀양시 위양지는 때아닌 설경으로 눈부시다.
위양지는 신라시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다. 양민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위양지라 이름지었다. 바로 옆으로 더 큰 규모의 가산저수지가 있지만 유명하기로는 위양지 못 따라온다.
사람들은 천년에 걸쳐 귀한 막내딸 돌보듯 위양지를 꾸미고 가꾸었다. 둑 전체에 다양한 나무를 심었고 작은 섬들은 다리로 연결했다. 입체적인 그림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위양지를 말하는 것이리라.
위양지 이팝나무와 완재정
저수지를 둘러싼 나무들은 대부분 노거수다. 왕버들은 몇 사람이 안아야 할 정도로 둥치가 굵고 사람처럼 허리가 굽어 꼭대기가 물에 닿았다. 소나무·느티나무·팽나무도 수령이 수백 년은 족히 된 듯하다.
봄이면 위양지에서도 완재정 주변은 온통 이팝나무 세상이 된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에 자생하는 물푸레나무과의 하얀 꽃나무다.
입하에 꽃이 핀다고 하여 이팝나무라고 하는 설과 하얀 꽃송이가 쌀밥(이밥)을 가득 퍼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팝나무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사람들은 이팝나무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가뭄이 든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점치는 능력으로 이팝나무는 예부터 신목으로 여겨졌다.
꽃이 한창일 때 나무는 잎과 가지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마치 눈이 내린듯하다. 한 겨울 폭설은 나뭇가지를 휘게하고 부러뜨리기도 하는데 이팝나무는 어쩌자고 휘도록 꽃송이를 맺은 것일까.
위양지의 전체 면적은 6만2790㎡로 30분이면 충분히 돌아볼 만하다. 하지만 저수지 안에는 5개의 작은 섬이 있어 길손의 발길을 꼭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그중 한 곳에 125년 된 건축물 완재정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배로 가던 곳이지만 지금은 작은 다리로 이어져 있어 도보로 찾아갈 수 있다.
한편 위양지의 핵심 명소 완재정에는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안동권씨 권삼변(1577~1645)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왜군에 잡혀 일본에서 10여 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다행히 1604년에 사신을 따라 귀국길에 오르는데 그는 고향 산청이 아닌 밀양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밀양에는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저수지 위양지가 있었다. 작은 섬이 여러 개 떠 있는 것이 중국 양양(襄陽)의 습씨지(習氏池)를 연상시켰다. 그는 섬 한가운데 자신만의 정자를 짓는 게 꿈이어서 ‘완재’라는 이름까지 붙였으나 막상 건축하지는 못했다.
완재는 시경의 ‘물가 한 쪽에 있는 저 사람, 물길 거슬러 올라가려니 길이 막혀 험하고 멀지만, 물길 따라 내려가니 완연히 물 한가운데 있네(遡游從之 宛在水中央)’라는 구절에서 가져온 단어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경자년(1900)에 후손들이 그의 뜻을 받들어 비로소 정자를 완성했다. 완재정은 정자 문화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경남지방 및 조선 후기의 귀한 건축 사료가 되고 있다.
구름 뚫고 올라가는 얼음골케이블카
재약산(1189m) 북쪽 중턱 해발 700m 노천 계곡에 오래전부터 시례 빙곡으로 불리던 얼음골은 자리하고 있다. 얼음골은 3월 초순에 얼음이 얼기 시작해 7월 중순까지 얼음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온이 낮은 곳이다.
재밌는 것은 반대로 겨울철에는 계곡물이 잘 얼지 않을뿐더러 바위틈에 새파란 이끼까지 관찰된다는 것이다. 신비한 자연현상이다.
근래에는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얼음이 얼어 있는 기간이 예전만큼 길지는 않지만 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오싹, 한기가 도는 것은 여전하다. 하여 아무리 여름이라도 계곡물에 1분 이상 발을 담그고 있기가 어렵다.
얼음골은 돌밭(安山巖)과 계곡을 중심으로 3면이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있어 경치가 뛰어나다. 단점은 그만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
얼음골 절경은 영남알프스 얼음골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 얼음골케이블카는 국내 최장 거리 왕복식 케이블카다. 선로 길이만 1.8km에 달한다. 상부 역사가 해발 1020m 고지에 세워져 있어 얼음골 일대를 한눈에 굽어보기 좋다.
역시나 단점은 있다. 대부분의 날에는 산허리가 운무에 휩싸여 있어 절경을 똑똑히 확인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장점은 워낙 높은 데 여가가 있다 보니 아랫동네와 기후가 다르다는 것이다. 아랫동네서 자취를 감춘 산철쭉을 5월 중순까지 지치도록 구경할 수 있다.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기분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케이블카 탑승정원도 50인으로 넉넉해 조부모·부모·자식 3대가 다 타도 공간이 남는다. 이용료는 성인 1만6000원이다. 배차간격은 약 20분 전후며 3월에서 9월까지는 9시2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산골 마을 뜻밖의 한천박물관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밀양 한천박물관은 밀양의 특산물 한천을 소개하는 사립박물관이다.
한천(寒天)이란 우뭇가사리를 끓여서 만든 반투명하고 말랑말랑한 물질을 말한다. 간장 양념을 해서 그대로 먹기도 하고 양갱·젤리의 원료로 쓰기도 한다.
우뭇가사리는 해초다. 당연히 바다에서 난다. 그렇다면 산지인 밀양이 어떻게 한천의 주산지가 된 걸까. 한천은 우뭇가사리를 삶아 나온 우무를 채 썰어 말리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밀양시 산내면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해 우뭇가사리 건조에 탁월한 환경을 갖췄다. 황태 덕장이 강원도 심심산골인 인제에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밀양이 한천 생산을 시작한 것은 1913년부터다. 한천박물관 입구에는 1961년부터 1994년까지 양산 소토한천에서 사용했던 자숙 솥이 전시돼 있다. 양산 소토한천과 밀양 삼랑한천이 통폐합된 것이 밀양한천(1994)이다.
한천박물관에서는 한천 산업의 역사부터 한천 제조에 필요한 천칭·각한천 포장기·건조 틀·건조대 등 도구가 전시돼 있으며 관련 영상물도 상영한다. 또 테마파크 내 한천 체험관에서 젤리 만들기, 양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밀양 부북면 퇴로마을에 있는 ‘뜰마당’은 한옥채와 뜰마당을 그대로 살려 운영하는 식당이다. 뒤주·괘종시계·지게·수평저울·오르간·재봉틀 등 시골집에서 썼음직한 물건들이 사정없이 쌓여 있다.
박물관이라기엔 약간 두서없지만 그 시절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다정함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오리백숙과 비빔밥이 주메뉴다. 시골집을 방문한 듯 편안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