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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을 차별할 경우 더 고관세로 보복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 속에서도 유럽연합(EU)이 기술기업(주로 미 빅테크)의 금융데이터 접근 차단을 추진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 시간) 외교 당국자들을 인용해 독일의 지지 속에 EU가 금융데이터를 공유하는 새 시스템에서 애플·구글·메타·아마존 등을 배제하려 한다고 전했다. 핀테크 내지 스타트업 등 제삼자 서비스업체들이 은행·보험사의 데이터에 접근해 금융 자문 같은 신종 서비스를 창출하도록 하게 해 줄 새 시스템에서 미 빅테크가 제외되면 은행들 기득권이 보호된다.
FT는 이런 조치가 미 거대 기술기업 위협과 맞서 싸우려는 EU의 은행들에 상당한 동력이 될 것으로 봤다. 은행들은 빅테크가 데이터를 이용해 은행을 따돌리고 고객들과 직거래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그때문에 미 빅테크들, 일명 ‘디지털 게이트키퍼’들이 유럽 금융기관 고객 데이터를 끌어모아 지배적 지위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며 빅테크의 데이터 접근을 차단하려 애써 왔던 것이다. 승산 없어 보이던 이 싸움이 유럽 의회·집행위원회와 독일 등 주요국으로 전선을 확대해 지지를 넓혔다.
독일은 EU 회원국들에 보낸 문건에서 빅테크 배제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EU의 디지털 금융 생태계 발전을 촉진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며 소비자의 디지털 주권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2년 넘게 이어져 온 금융데이터 접근(FiDA) 규제안 협상이 몇 주 내 최종 단계에 들어갈 예정인 가운데, 외교가에선 빅테크들 측 패배가 거의 확실하다고 전했다. EU 의회와 회원국들은 올가을 중 최종 규제안 합의를 희망하지만 7월 무역합의를 이룬 미국과 EU 간 긴장이 재점화할 수 있다고 FT에서 지적했다.
빅테크 로비 단체들은 현 방향성이 유지되면 빅테크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손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러 빅테크 기업이 소속된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유럽지부의 다니엘 프리드랜더 소장은 “기존 은행들에 굴복함으로써 EU는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면 이미 소비자 데이터에 대한 게이트키퍼 권력자인 전통적 은행들이 고착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6월 애플 고위직 임원이 ‘디지털시장법’(DMA)으로 대표되는 유럽연합(EU) 규제를 작심 비판하며 다른 나라들 역시 이와 유사한 규제를 도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애플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 그레그 조시위악 부사장은 당시 주요 매체 기자들과 만나 “EU 규제가 애플의 핵심 기술과 생태계를 위협하고 사용자 경험과 개인정보 보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EU 집행위원회를 비판했다.
DMA란 2022년 11월 발효돼 이듬해 5월부터 일부 조항이 적용됐으며 작년 3월부터 주요 ‘게이트키퍼’ 기업들에 대한 의무가 전면 시행된 EU의 ‘빅테크 규제법’이다. 총 6개 기업(22개 서비스)에 대해 게이트키퍼 의무로 앱스토어에서 외부 결제·앱 유통 허용, 기본 브라우저·검색엔진 등 사용자 선택권 보장, 서비스 간 데이터 강제 결합 금지, 경쟁 서비스 차별 금지를 요구하며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을 물린다(재위반 시 최대 20% 벌금). 바이트댄스가 들어 있으나 나머지 5개 모두 미 거대 기술기업이라 “빅테크 규제”로 불린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초 i메시지 등 일부 서비스의 상호운용성 강화를 요구하며 애플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이어 4월엔 앱스토어 정책이 DMA 위반이라며 과징금 약 5억7000만 유로(약 8500억 원)를 부과했다. 애플은 ‘상호운용성 적용 제외’를 요청했지만 EU 집행위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시위악 부사장은 “유럽 규제당국이 DMA를 과격하게 해석해 의도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특히 상호운용성 요구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통합이라는 ‘애플 경험의 마법’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조시위악 부사장은 애플이 수천 개의 API와 개발 도구를 통해 카메라·마이크·위치 서비스 등 핵심 요소를 긴밀히 통합해왔다면서, “그런데 EU 규제는 새 기능을 출시하자마자 경쟁사 제품과 동일하게 작동하도록 요구한다. 기술적 복잡성을 높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도 있어 사용자가 애플 기기에서 누리던 경험 일부를 희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럽에서만 제한 당한 기능을 언급하기도 했다. 작년 공개된 ‘아이폰 미러링’ 기능은 EU 지역에선 제공되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크다고 한다.
또 규제가 혁신·지적재산권(IP)을 침해할 소지, 에어팟의 페어링 같은 통합 기능을 경쟁사와 공유하도록 강제된다면 출시가 지연되거나 경쟁 우위를 잃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조시위악 부사장은 “애플만 집중 표적이 된다”며 형평성을 문제 삼았고 개인정보보호 이슈도 거론했다. “규제 해석에 따라 와이파이 접속 기록이나 알림 데이터처럼 민감 정보까지 공유해야 할 수 있어 의료 정보 등 민감 데이터 유출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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