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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스카이데일리
그런데 성완종 메모가 발견되고 경향신문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한쪽은 故人(고인)이 되었고 거론된 당사자들은 끝내 입을 다물 것이니 사건의 팩트(fact)는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고 그 바람에 더 문제가 되게 생겼다. 이제 메모 내용은 소위 ‘眞實(진실)’이 되게 생겼으니 그렇다.
성 회장이 경향신문을 택한 것 역시 절묘하다. 한겨레는 종북적 색채로 해서 신뢰감을 잃었고 조중동은 현 정권과의 관계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경향신문은 좌파 중에서도 비교적 객관성을 인정받는 신문이 아닌가.
리베라 호텔에서 현금을 주고받았다는 내용 역시 공감이 간다. 영동대교 남단에 위치한 조용한 장소라서 예전부터 은밀한 거래에 많이 이용되던 곳이다.
김기춘과 허태열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오른팔 왼팔 노릇을 했고 비서실장을 역임한 분들이니 성 회장의 폭로는 정권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병기 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얼마 전 조금은 생뚱맞게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완구 총리도 곤혹스럽게 되었다. 그간 청렴한 이미지를 쌓아온 홍준표 지사도 타격을 입었으며, 유정복 시장이나 홍문종 의원 등 이른바 친박 인사들도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고 있다.
거명된 사람들은 당연히 사실무근이라 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상대방이 더 이상 세상 사람이 아닌 까닭에 그것이 사실무근임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대질심문을 할 수도 없으니 검찰이 수사에 나선다 한들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작년 4월 16일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 날이 丁巳(정사)일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인기하락에 다대한 역할을 했다.
오늘 11일이 바로 丁巳(정사)일이다. 오늘로서 360일이 된다. 따라서 이번의 성 회장 사건은 현 정권에게 있어 사실상 세월호 사고로부터 1년 만에 터진 대형 악재라 하겠다.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내부의 실로 치열했던 대통령 후보 당내경선에서 신고 된 돈 이상의 자금이 투여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우리 현실에서 높은 개연성이 있다. 물론 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하지만 당장 야당은 이제 기세를 올리게 생겼다. 소위 ‘건수’가 확실하게 잡힌 셈이다. (역시 우리나라 야당은 특별히 잘할 필요가 없다, 그저 기다리고 있다가 상대방의 건수만 노리면 된다.)
名(명)과 實(실)의 차이 혹은 괴리가 극심한 우리 사회이다. 부패는 만연하는데 겉으론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있는 우리 사회이기에 ‘들키느냐 감추어지느냐’가 더욱 중요한 우리 사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그다지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점, 우리 국민들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인이었던 이상 비자금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았을 것임도 모든 이가 짐작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성회장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名實(명실)간의 乖離(괴리)를 다시 한 번 아프게 찔러오고 있다.
성 회장이 눈물로서 또 죽음으로서 결백함을 호소했다고 해서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라 본다. 왜냐면 우리가 다 알다시피 하필이면 왜 본인을 기획수사의 표적으로 삼고 있느냐에 대한 억울함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실의 괴리가 엄청난 우리 현실에서 자신 또한 남들처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의 심정이었을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아직 名實(명실)의 차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사회 또한 아니다. 그 괴리를 속으론 인정하면서도 겉으론 인정하지 않는 表裏不同(표리부동)의 사회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도덕적 윤리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하고서도 들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우리 사회라 하겠다.
이처럼 당장의 현실에서 명실 간의 괴리로 인한 문제는 실로 엄청나다.
장관 임명의 사전 절차로서 국회 청문회가 있다. 청문회란 영어로 hearing 인데,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자는 취지이고 그 본질은 일종의 재판이다. 이 청문회 역시 명실 간의 괴리로 인해 그 처리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청문회 제도는 서구의 것을 본뜬 것이다. 그러나 서구와 우리 간의 문화적 토양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가령 청교도에 뿌리를 둔 미국사회는 거짓말, 즉 僞證(위증)을 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관용이 일체 없다.
미국의 경우 어떤 사람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으려 할 경우, 담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그냥 자신의 연간 소득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갚아나가겠다는 계획을 얘기한다.
은행의 대출 담당자 역시 대출을 원하는 상대가 말하는 연간 소득에 대해 전혀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대출결정도 대단히 신속하고 쉽게 이루어진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상대가 말한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은행원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는 문화가 다른 것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의심이 많아서가 아닌 것이다.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미국사회인 것이고, 우리는 거짓말 정도는 세상사는 요령 정도로 인정되는 차이일 뿐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청문회에서 당사자의 답변은 그냥 답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위증을 할 경우 그로 인한 代價(대가)가 너무나도 큰 까닭에 그렇다.
하지만 우리 사회처럼 명실 간의 괴리가 큰 나라에선 그 간격을 메우는 수단이나 방법은 결국 적당한 거짓말 또는 요령 있는 회피가 된다.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고 강제하는 사회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정부 인사가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나 범죄에 대해 뿌리를 뽑겠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을 보면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그 또한 본의는 아니겠지만 거짓말이고 헛된 기대일 뿐이다. 뿌리를 뽑는 것은 고사하고 잎사귀라도 몇 개 뜯어내면 다행일 터인데 할 뿐이다.
그 바람에 우리의 경우 가령 장관 후보 청문회를 위해 청와대에서 사전에 나름 후보를 검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문회가 열리면 이런저런 소문과 증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되는 것은 사전 검증의 상당 부분이 거짓말이거나 적당히 버무려진 사실회피였기 때문이다.
장관 청문회 할 때마다 으레 나오는 일련의 세트가 있다. 위장전입과 자녀의 병역비리, 이중국적, 세금누락 등이 그렇다. (특히 명망 있는 법조인 출신의 인사치고 아들이 군대 제대로 갔다 온 경우가 얼마나 될까? 정말이지 그 점에 대해 한 번 검증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 인사치고 이런 문제에서 2-3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 바람에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위해 적절하게 사람을 교체하고 싶어도 청문회가 무서워서 아예 시도를 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기준 자체가 우리 사회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것을 의욕이 앞선 나머지 선진국의 수준에 맞추다 보니 그렇다.
청문회라 하면 정말 짜증부터 난다. 야당 의원이란 사람들은 으레 호통부터 치고 본다. 대상자가 답변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고 야단만 친다. 얼마나 꼴불견인가 말이다.
이렇듯이 우리 사회는 명실 간의 엄청난 괴리로 인하여 실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그 괴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효과만 가져온다고 보지는 않는다.
‘막고 품는다’, 이런 우리말이 있는데, 과욕일 수도 있지만 일단 목표는 크게 잡아놓은 다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면서 실천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영원히 불가능해보일 정도의 높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우리가 어쨌거나 내세우고 있는 이상, 우리 사회가 그를 달성하게 위해 강제로라도 앞으로 달려 나가도록 하는 힘 그리고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서두에서 했던 말로 돌아가자.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운세가 기울고 있다. 그 바람에 여기저기 골치 아픈 문제와 예상치 않았던 일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현재 임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작년의 세월호 사건에서 만 1년이 된 시점에서 불거진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 대한민국은 리더십이 약해진 상태에서 대단히 길고 지루한 세월이 임기 말까지 이어질 공산이 커졌다.
민주당이 종북세력과의 야권연대로 치명타를 입은 이래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마당에 정권과 여당마저 무기력해질 경우 이 나라의 정치는 無主空山(무주공산)이 되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올해 4월 중순 경이면 금년의 테마가 등장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간의 흐름을 지켜봐왔는데 어쩌면 이번 성 회장 사건이 그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면 이제 슬슬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나타날 때도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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