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불행하지 않느냐고 물어봐요. 힘든 일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결국 이겨내고,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어요. 오히려 제가 겪은 힘든 과정들 덕분에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죠. 수업료가 약간 비싸긴 했지만 전보다 더 대범하게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김철민(49·남) 게임캐스터는 2001년 e스포츠계에 몸을 담은 18년 차 베테랑이다. 지금은 사라진 MBC게임 채널의 개국공신이자 간판 진행자로 활동하던 그는 당시 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시간을 뒤로한 채 위암·이혼·실직·사업 실패 등 쉽지 않은 인생길을 걸어왔지만 굳은 의지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캐스터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담담히 회상하며 누군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 ‘다이하드’를 보면 브루스 윌리스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온갖 고생을 해도 결국은 목표를 이뤄내잖아요. 그리고 관객은 그 과정을 보면서 재밌어하고 박수를 쳐주죠. 제 삶도 마찬가지 였다고 생각해요. 평탄하기만 했다면 절대 재밌거나 깊이 있는 인생이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가끔은 다음에 닥쳐올 시련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해요. 저는 제 인생이라는 작품에서 맛 보는 재미와 감동에 만족하고 있어요.”
잘 나가던 게임캐스터, 암 판정 후 타인을 배려하는 삶 살기로
“모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우연하게 게임캐스터 일을 제안 받았어요. 안정적인 일을 하다가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 게임캐스터 일을 하려니 고민이 많이 됐죠. 주위 반대도 심했고 결혼을 불과 5개월 남겨놨던 때였거든요.”
“오랜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했어요. 자세히 알아보니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또 잘만 하면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가 될 수 있겠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었죠. 그때가 제 극적인 삶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해요.”
김 캐스터는 2001년 개국한 MBC게임 채널의 개국공신으로 게임캐스터 세계에 뛰어들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국민적인 인기를 끌면서 게임 채널과 리그가 성장해갔고 자연스레 김 캐스터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그는 당시 시내를 돌아다니면 유명 연예인 부럽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뜻하지 않은 위기에 직면한건 2004년이었다.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암 판정을 받고 난 후 병원 앞 잔디밭에 앉아 지나 온 삶을 돌아보며 정말 긴 생각을 했어요.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모든 게 다 의미 없다는 느낌이었죠. 열심히 모아놨던 돈이나 제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남들을 질투하고 견제했던 그런 것들이요. 그때 이후로 제 삶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었어요.”
김 캐스터는 위암 수술로 위의 70% 가량을 잘라냈다고 했다. 다행히 초기에 위암이 발견돼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의 인생을 통틀어 큰 사건인 점은 분명했다. 그는 암 투병이 자신의 가치관을 바꾼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암 투병 이후 저 스스로 아닌 남을 위해 살자는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그때부터 타인에게 베풀려고 노력했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찾아갔죠. 그렇게 사는 게 저도 재밌었고 또 누군가가 저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가치 있게 느껴졌어요.”
MBC게임 채널 폐국되며 실직…사업실패·이혼, 시련 잇달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김 캐스터지만 고난은 암 투병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12년 MBC게임 채널이 폐국 되면서 직장을 잃고 업계를 떠나게 된다. 그는 당시 방송국 경영 상황이 악화되긴 했지만 수뇌부 몇 사람만의 의사로 MBC게임 채널 폐국이 결정된 점이 몹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일궈왔던 모든 것들이 단 몇 사람의 말로 쉽게 뒤집혔다는 생각에 환멸이 들었어요. 게다가 저보고 MBC게임 채널 마지막 방송의 진행을 맡아달라고까지 했죠. 제가 MBC게임의 문을 열었던 만큼 문도 제가 닫아야겠다는 생각에 그 역할을 맡긴 했지만 정말 잔인했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직장을 잃은 것 그 이상의 아픔이었으니까요. 그 후 일에 대한 회의감으로 몇 년간 e스포츠계를 떠났어요.”
그는 캐스터 일을 그만둔 후 자동차 튜닝샵을 열어 사업을 시작했다. 모아놨던 돈을 모두 투자할 만큼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사업 환경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고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그는 사업 실패를 통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정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창 사업 할 때 주위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방송 일을 할 때가 제일 멋있었어’라고요. 저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고 재밌었죠. 결국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 자리라고 생각해 현업에 복귀하게 됐어요. 사업 실패로 인해 빚이 있었지만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행복해요.”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면서 많은 돈을 잃은 데다, 직장이 폐쇄되면서 수입도 불안정했죠. 거기에다 사업 실패로 인해 빚만 남게 됐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까지 하게 됐어요. 물론 누군가는 굉장히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들을 해봤다는 점이 재밌게 느껴져요.”
게임 통해 봉사활동도 적극 나서…“행복 주는 삶의 본보기 되고 싶어”
김 캐스터는 SPOTV GAMES를 통해 게임 캐스터로써 사람들 앞에 섰다. 또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통해 자체적으로 준비한 게임 경기를 중계하고 있기도 하다. 한때 MBC 게임의 간판 진행자였던 그가 다소 주변으로 밀려난 감이 없지 않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게임 캐스터로써의 저의 수명은 40대 초반이 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50을 바라보는 지금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정말 행복하죠. 여전히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 놀랍고도 감사해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묻는다면 저는 더 이상 절 찾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할 거라고 대답할 거예요. 백발의 노인이 되더라도 단 한 사람이도 저를 찾아주고 필요로 한다면 절대 마이크를 놓지 않을 생각이에요.”
현재 김철민 캐스터는 사비를 들여 크고 작은 대회를 개최해 진행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팬의 요청에 따라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태국 아이들을 위한 스타크래프트 대회의 중계를 맡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고 전했다.
“모든 걸 다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리면 정말 돈이 다가 아니에요. 한창 돈을 많이 벌 때에 사람들이 감탄한 건 제가 아니라 제가 가진 것들에 대한 부러움이었어요. 결국 제가 빛이 나야 정말 성공한 인생이고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 바탕은 제가 정말 하고 싶으면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에 있죠.”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저 놈 참 잘 살았구나’라는 말을 들으며 제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때문에 되도록 다른 사람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결국 방송일도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하는 거니까요. 비록 가진 것은 많이 없지만 언제나 즐겁게 살고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의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삶은 절대 불행하지 않고 어려움도 꼭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요.”
[강주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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