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철없고 생각이 짧아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고 잘못에 대한 반성도 크게 하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순간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 속에 과거를 반성하며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가수 현진영(48·남·본명 허현석)은 한국 음악사의 한 획을 그는 대한민국 1세대 힙합 뮤지션이다. 주위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춤과 음악을 익혀온 그는 이태원 등지에서 비보이로 활동하다 프로듀서인 이수만 씨에게 발탁돼 SM엔터테인먼트의 1호 가수로 대중 앞에 섰다. 데뷔와 함께 ‘슬픈 마네킹’, ‘흐린 기억속의 그대’ 등이 연속 히트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지금도 ‘현진영 go 진영 go’의 후렴구는 대중의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있다.
“재즈 뮤지션이셨던 아버지와 어린 시절 어울렸던 흑인친구들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춤과 음악이 몸에 뱄어요. 어릴 적 미 8군 지역에서 자랐거든요. 춤과 음악을 즐기며 성장하다보니 가수, 뮤지컬 배우와 같은 꿈을 갖게 됐고 이수만 선생님의 눈에 띄어 가수의 길을 걷게 됐죠. 당시엔 생소했던 힙합음악을 저만의 독자적인 춤으로 어필한 점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바탕이라 생각해요”
“철없이 방황하던 과거…후회보단 반성으로 성장”
그렇게 가수 현진영은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로 승승장구하며 활약을 이어갔으나 연이은 마약흡입 사건으로 쓸쓸히 무대 뒤편으로 퇴장해야 했다. 최고의 스타가 구속과 방송정지 처분을 받으며 대중의 기억 속에 서서히 사라진 것이다.
“핑계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엔 너무 철이 없었어요. 힙합음악을 하는 가수라면 불미스런 일을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벌을 받는 시간에도 반성보다는 억울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은 잘못을 연이어 저질렀던 거죠.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또 무엇이 잘못됐는지 조차 몰랐었던 시기였어요”
그는 ‘몸이 아프셨던 어머니와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성장한 탓에 이른 나이 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때문에 학교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해 ‘인격을 단련할 시간이 부족했으며 자신에 대한 정체성도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제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혼란이 생겨 중심이 잘 잡히지 않더라고요.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잘못에 대한 판단도 많이 흐렸어요. 그래서 잘못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마약을 복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관심도 없었죠. 그런데 주위에서 자꾸 유혹을 하곤 했죠. 마약을 통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고. 제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고 싶다고 하니, 그것을 이루어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결국 호기심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게 됐어요”
현진영은 1990년대 마약흡입 혐의로 구속과 방송정지 처분을 반복하다 결국 무대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발표한 앨범은 성공을 거듭했지만 그의 그릇된 행동이 음악적 성공을 무색케 한 것이다.
“그렇게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다 문득 서른 살에 접어들어 제 생각을 바로잡게 됐어요. 재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울리더니 지금까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됐죠.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반복했던 행위들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그때서야 깊이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올바른 길을 걷는데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으로 아내와 프로듀서인 이수만 씨를 꼽았다. 아내 오서운 씨는 아역시절부터 활동해온 배우다. 그는 자신을 위해 지금까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아내에게 고마우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가까이에서 아내가 절 도와줬고 멀리서는 이수만 선생님이 제가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줬어요. 아내는 제가 마약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절 관리해줬죠. 아내가 없었다면 또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몰라요. 저 때문에 일본 진출의 꿈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던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감사해요”
“아버지 꿈이어 국내 재즈음악 널리 알리는 메신저가 목표”
현진영은 한 때 아내의 권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다. 아내는 그의 병을 완전히 치유해야 앞으로도 건강하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 그를 병원으로 이끌었다.
“정신병원에 있으면서 제가 가졌던 인격장애와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모두 치유할 수 있었어요. 분명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제가 한층 더 성장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겪은 끝에 현진영은 한 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음악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랜 공백기간을 거친 후 발표한 ‘소리쳐봐’와 ‘무념무상’등의 노래는 대중들에게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공부했어요. 보다 완성도 높은 힙합재즈를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 오랜 시간 재즈씬을 오가기도 했죠. ‘무념무상’을 만들 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서울역에서 한 달 가량 노숙한 적도 있어요. 제가 이처럼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현재 ‘현진영 프로젝트’란 이름아래 국내 재즈 뮤지션들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그 시작으로 오는 28일에 HG펑크트로닉이라는 밴드와 재즈 음악을 알리는 콜라보 공연을 진행한다.
“국내 재즈씬이 작아지며 신인 재즈 뮤지션들이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때문에 저는 제 이름을 발판삼아 실력 있는 유망한 재즈 뮤지션들이 대중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또 재즈음악이 단순히 재즈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스윙, 비밥,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가 있는 것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현진영은 이후 지속적으로 실력 있는 재즈 뮤지션과 콜라보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는 재즈 음악을 알리기 위해 헌신했던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 고 허병찬 씨가 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재즈 음악에 익숙해지는데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하셨던 일을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사비를 들이면서 재즈 음악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처럼 저도 재즈 음악이 대중화되는데 공헌하고자 합니다. 돈을 보고 하는 일이 아닌 만큼 제 행위가 아무쪼록 많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결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재즈 메신저로 기억되는 게 향후 목표에요. 제가 정식적인 재즈 뮤지션이 아닌 만큼 재즈 음악가로 인정받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저로 인해 재즈 음악의 다양성과 깊이를 알게 됐다고 기억해주면 뿌듯할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재즈 뮤지션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도록 열심히 활동할 계획이에요”
[강주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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