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라임사태’로 시작한 사모펀드 환매 중단에 경제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절망에 빠졌다.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는 말만 믿고 거액을 들여 펀드 상품에 투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평생 모은 재산을 잃게 된 허탈감 뿐 이었다. 배신감과 당혹감도 동시에 찾아왔다.
은행·증권사들은 서류를 멋대로 작성하고 불완전판매 등을 일삼으며 피해자들이 오랜 시간 피땀 흘려서 모아온 결혼·노후자금을 단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피해자들이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었던 정부와 금융사 모두 뒷짐만 지고 방관했다. 권력 개입 의혹이 불거져 나와 방관의 이유가 점차 명확해진 후에는 절망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고령의 치매 노인 대리 서명 요구 후 멋대로 서류조작…사기펀드 판매 열중한 국책은행”
디스커버리펀드는 국내 운용사인 디스커버리운용이 기획한 사모펀드로 장하성 중국대사 동생인 장하원 씨가 운용을 맡아 일명 ‘장하성 동생 펀드’로 불린 펀드였다. 은행, 증권사 등 판매사들이 모집한 투자금을 미국 운용사 DLI가 운용하는 방식으로 투자가 진행됐다.
디스커버리펀드 판매사 중 하나인 기업은행은 2017년부터 작년까지 디스커버리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디스커버리US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를 각각 3612억원, 3180억원 어치 판매했다. 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한 금융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8월말 기준 기업은행·IBK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에서 판매했다 환매 중단된 액수는 3124억원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불완전판매를 통해 펀드를 판매했다는 것이다. 환매 중단 사태로 피해 입은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펀드를 판매할 때 투자자의 구분에 따른 확인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 피해자 A씨는 “이미 은행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서명만 받아 갔다. 투자성향과 분석 등의 절차는 없었다”고 말했다.
은행은 고객의 투자성향을 분석하기 위해 충분한 질문과 유의사항을 안내한 후 투자성향을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은 각 세부 항목을 멋대로 체크해 고객의 투자성향을 위험등급 1등급 상품에 맞게 ‘공격투자형’ 또는 ‘적극투자형’으로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다수 피해고객들은 자신이 직접 해당 항목에 체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객들은 확인서 성명 란에 이름만 기재하고 도장날인과 서명만 했을 뿐 각 항목의 체크사항은 판매직원이 임의로 작성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는 PB팀장이 고객의 성명을 대리 서명한 경우도 있었다.
A씨의 경우 2017년 4월 12일 타 증권사 상품인 Royal-Classe펀드 가입 시에는 적극투자형(3등급)이었다가 2019년 1월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 가입 시에는 공격투자형(1등급)으로 변경됐다. 같은 해 2019년 3월 담당 PB팀장이 가입시켰던 또 다른 펀드 계약 시에는 안정추구형(5등급)으로 분류됐다. 같은 은행, 같은 PB가 상품에 따라 고객의 투자성향을 멋대로 바꾼 것이다.
A씨는 “정년퇴직 후 은퇴자금을 안전한 상품에 넣고 관리했는데 2017년부터 담당 PB가 집요하게 상품 가입을 강요했다”며 “지난해 1월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가입해 달라’고 하더니만 끝내 이런 일을 당했다”며 허탈함을 드러냈다.
기업은행은 펀드 판매 과정에서 고령투자자를 상대로 보호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행 및 IBK투자증권의 투자권유준칙에 따르면 중도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이나 구조화 상품 등은 고령투자자 ‘투자권유 유의상품’으로 분류해야 한다. 권유하는 경우에도 지점장 등 소비자보호 담당자가 사전에 적정성을 확인해야 하고 고령투자자의 경우 반드시 고령투자자 권유 가입확인서 및 상담확인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디스커버리펀드에 가입한 고령자들은 원금손실가능성 및 투자손익에 따른 투자자책임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은 임의로 적정성 확인 항목을 체크해 적합하도록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B씨(93)는 “평소 믿고 거래하던 기업은행 PB가 설명의무를 위반해 계약서 성명란에만 자필로 작성하게 했다”며 “만85세인 배우자의 계약도 나에게 대리 서명하게 한 후 도장날인만 받고 나머지 항목을 PB가 임의로 체크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나이가 93살인데 디스커버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펀드가 뭔지 알기나 하냐”며 “내 아내는 치매로 생활하는데 나 보고 대신 사인하라고 해서 해줬다”고 덧붙였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계약 전·후에 상품설명서, 계약서, 약관, 자순운용보고서 한 장 받지 못했고 투자제안서 마저 ‘대외비’라며 제공받지 못했다.
조순익 대책위 부위원장은 “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은 WM복합센터에서 공동으로 합작해 고객의 자산관리 실태를 개인정보 동의도 없이 뒤지고 PB들을 훈련시킨 후 안전하게 자산을 굴리는 고객만 찾아 고객의 사업장을 불시에 방문하거나 일부러 찾아오게 유인한 후 안전한 상품이라면서 위험등급 1등급 상품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했다.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지자 기업은행은 6월초 펀드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의 최대 50%를 선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부당권유, 설명의무 등 위반한 점을 들어 100%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창석 대책위원장은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금융감독원(금감원) 분쟁조정으로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피해자들에게 100% 직접 자율배상을 실시해야 한다”며 “배임이슈 문제로 자율조정이 안 된다는 거짓말 하지 말고 대책위에서 제출한 ‘합리적 경영판단에 따르면 배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배임이슈 해결 논리대로 즉각 자율배상에 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사고가 터질 때 마다 각종 대책을 내놓고 투자자 보호 장치를 보완하겠다고 한다. 이는 결국 정책의 문제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며 “정부는 사모펀드 정책과 기업은행에 당한 사기 피해자들의 짓밟힌 권리와 피해를 원상회복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피해금만 1조4651억원…역대급 부실 라임펀드 고령자·주부 대상 무작위 불완전판매
라임사태는 국내 최대 헤지펀드인 라임자산운용이 폰지사기, 수익률조작, 불완전판매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르며 모펀드 4개·자펀드 173개에 대해 환매중단을 선언한 사건이다. 라임자산운용이 판매한 모펀드는 플루토 TF 1호, 플루토 FI D-1호, 테티스 2호, CI(1호) 등으로 구성 돼 있다. 8월말 기준 환매 연기된 금액은 총 1조4651억원이고 피해자 수는 4600명에 이른다.
라임사태의 문제점은 착오에 의한 계약과 불완전판매, 폰지사기 등이다. 운용사는 투자제안서에 수익률 및 투자위험 등 11개의 핵심정보를 허위 및 부실하게 기재했고 판매사인 은행과 증권사는 면밀한 검토 없이 또는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는데도 상품을 판매했다. 판매사들은 투자 경험이 없는 고객들을 공격투자형으로 임의 기재하고 원금 보전을 조건으로 손실보전각서까지 작성하며 가입을 유도했다.
이강임 신한금융투자 사모펀드 공대위(준) 간사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돈이 통장에 쌓이고 난 뒤 판매사의 유혹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까지 찾아와주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은행PB를 믿고 상품에 가입했다.
이 간사는 “그 당시에는 PB들이 전문적인 능력을 갖고 자산관리를 하는 줄 알았다”며 “PB들은 어떤 상품인지 어디에 투자되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 없이 오로지 안정적인 수익률에 원금이 보존되니 맡겨 달라는 식으로 가입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라임펀드 피해자들은 판매사 PB들이 위험성이 생략된 단순화된 설명으로 금융지식이 부족한 고령자나 주부를 상대로 고위험의 복잡한 구조의 사모펀드를 무작위로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이 간사는 “은행이 설마 나한테 사기를 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올해 1월 처음으로 가입한 펀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내게 그 많은 상품을 판매했던 은행 PB는 아직은 아무것도 정확하지 않다고 확답을 미루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받고 무책임하게 떠나고 말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플루토TF-1호(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한 은행·증권사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권고에 따라 투자자에게 손실액 전액을 배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그러나 나머지 3개의 라임 모펀드는 금감원과 가교 운용사가 피해금액을 아직도 추산하고 있어 전액 배상 결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획 단계부터 철저히 계획된 사기 옵티머스펀드…“증권회사·투자자 전부 피해자”
옵티머스 사태는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 등에 투자한다며 돈을 끌어 모은 뒤 사업 실체가 없는 비상장 업체들의 사모사채에 투자했다가 2900여명이 모두 5500억원 손실을 본 사건이다. 8월 말 기준 환매 중단 금액은 3042억원이고 추가로 2109억원이 더 환매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 D씨는 “옵티머스 사태는 증권회사가 사기를 당했지만 결국 최종 피해자가 투자자인 사건이다”며 “특히 NH투자증권의 경우 운용사 경영진이 과거 문제를 일으켰던 전력이 있는 자들인데도 불구하고 판매를 강행해 피해를 키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투자자는 원금 손실이 날까봐 주식 투자도 못하고 있다가 연 3%에 혹해 목숨과 같은 돈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지경에 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NH증권 사장이 사과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약속 했지만 금감원 조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손 놓고 기다리자니 무언가라도 해야 될 것 같은데 마땅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윤승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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