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살고 싶어 시작한 공인중개사의 삶…불통 행정·정책 종용에 피로감·허탈감 극대화
충남 예산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성희 씨는 부동산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잘 나가는 공인중개사로 활약했던 정 씨는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부동산 정책과 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길 종용하는 현 정부의 태도에 극도의 피로감과 허탈감을 느껴 결국 공인중개사로서의 삶을 스스로 포기했다.
정 씨는 “불혹에 접어들 때쯤 직장을 그만두고 공인중개사로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며 “가족들이 배곯지 않고 보다 편하고 여유 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부동산 업계에서만 20년 넘게 열심히 일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러다 2016년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서울서부지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며 부동산 업계를 대변하는 데에도 앞장서기 시작했다”며 “당시만 해도 정부와 대화를 통해 업계의 입장을 공유하고 국내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도출하는 등 매우 협력적인 관계를 꿈꿨다”고 회상했다.
상황은 정 씨의 바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현 정부 출범 후인 2018년 6월 부동산서비스산업진흥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공인중개사의 처우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정 씨는 “공인중개사 대부분이 영세한 개인사업자인데 이러한 업계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가 부동산 중개업을 기업화하겠다는 법을 적용해 많은 영세 공인중개사들이 폐업하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협회 차원에서 정부에 영세한 공인중개사의 생존권을 지켜 달라고 호소했으나 정부는 들은 체 만 체하며 법을 밀어붙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후 수십차례 부동산 정책이 바뀌는 동안에도 정부는 공인중개사의 목소리를 들어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기는커녕 되레 요동치게 만들어 경쟁을 심화시키고 업계에 불리한 규제만 늘려 공인중개사들의 숨통을 옥좼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정부 정책 변화에 맞춰 근근이 버텼지만 운영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무소 임대료를 내는 것조차 벅찬 상황에 직면했다”며 “가장으로서의 더 이상은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결국 지난해 12월 내 손으로 간판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국내 부동산업의 매출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7월 부동산업 생산지수(계절 조정)는 108.7로 직전월인 6월 112.9 보다 4.2p 하락했다. 올 들어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부동산업 생산지수는 중개 수수료 등 부동산 업종의 매출액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등 주택 거래가 활발할 때는 상승하고 침체할 때는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 관련 업계에선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한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주택 거래가 감소한 것이 부동산업 매출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정부 부동산 중개 서비스 개선 방침에 하루아침에 생업 잃은 중개보조원들
현재 정부는 중개보수 개편에 이어 중개 서비스도 개선도 추진 중이다. 특히 중개 서비스의 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개 보조원 채용 제도를 손본다는 구상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무소의 90% 이상이 1명 이하의 중개 보조원을 고용해 운영하고 있다. 과도한 업무량 대비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중개 보조원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공인중개사 수를 초과해 중개 보조원을 고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내놨다. 중개 보조원 수를 줄여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러한 단순 논리에 약 6~7만명으로 추정되는 전국의 중개 보조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김희원 씨(가명)도 최근 중개보조원 일을 그만 뒀다. 김 씨는 “내가 일했던 공인중개사무소에는 4명의 공인중개사와 9명의 중개 보조원이 소속돼 있었는데 정부가 중개 보조원 수를 제한한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며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을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까닭에 나를 포함해 5명의 중개 보조원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법상 불법도 아닌데 왜 중개 보조원의 일자리를 제한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중개 사고가 문제라면 직무 교육 등을 통해 중개 보조원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우선돼야 하는데 그 책임을 중개 보조원의 탓으로만 돌리고 고용을 축소시키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 업계의 서비스 질을 낮춘 게 오롯이 중개 보조원만의 잘못인지 모르겠다”며 “정부는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할 생각 말고 철저한 계도와 단속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부터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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