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루 세끼를 먹는 한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주는 일을 멈출 수 없어요. 코로나 사태로 서울 시내에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지만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새벽 아침밥을 짓고 있죠. 앞으로도 어려운 분들께 소중한 한 끼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에요.”
재난은 공평하지 않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사태는 약자들에게 유독 검은 그림자를 강하게 드리웠다. 특히 집에서 식사를 챙겨먹을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심각했다. 이들은 지난해 초 서울 대부분의 급식소들이 문을 닫자 배고픔과 힘겹게 싸워야했다. 정부마저 방역대책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눈물을 애써 외면했다. 사실상 잊힌 존재였다.
그런 와중에도 문을 닫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비영리민간단체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다. 1993년부터 탑골공원 근처에서 무료 배식을 시작한 이 단체는 전염병 사태로 추운 시간을 보내던 이들의 허기진 배를 따뜻한 밥으로 채워줬다. 성별, 나이, 종교 등 어떠한 조건도 따지지 않았다. 스카이데일리는 2018년 9월부터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책임지고 있는 자광명 보살(67)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8년 9월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해
늦가을 오전 날씨는 약간 쌀쌀했다. 종로3가역에서 내린 뒤 탑골공원 근처에 있는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로 향했다. 근처에 가니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대부분 노인이었다. 간간히 중년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나이와 성별이 자세히 구분되진 않았다.
급식소가 있는 2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자원봉사자들과 마주쳤다. 이들은 여러 개의 봉지들이 담겨있는 상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봉지 안에는 참기름, 깨소금, 김가루, 멸치, 돼지고기 등으로 버무려진 주먹밥이 있었다. 자광명 보살과 자원봉사자들은 건물 아래로 내려가 줄서있던 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다.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이 보였다.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1993년 처음 문을 열었다. 20년 넘게 배고픈 사람들에게 365일 매일 한 끼를 제공했다. 비영리민간단체로는 2020년 4월 등록됐다. 자광명 보살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봉사하고 쌀을 기부했다. 그러던 중 급식소를 책임지던 스님이 개인사정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되자 자광명 보살이 2018년부터 소장을 맡아 이곳을 운영하게 됐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주는 장소가 없어지게 생겼으니까 이어서 책임을 맡게 됐죠. 저는 1993년 무료 급식소가 시작할 때부터 여기서 봉사하고 모자라는 쌀을 기부했어요. 근데 배고픈 이들이 식사할 수 있는 줄이 끊기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2018년 9월 1일부터 급식소 내부 수리를 진행했고 그해 9월 14일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나눠주고 있어요.”
식사 준비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자광명 보살의 솔선수범 하에 봉사자들은 이른 시간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쌀을 씻으며 배고픈 이들에게 줄 주먹밥을 조리한다. 배식은 하루 두 차례다. 조식은 8시 30분에, 중식은 11시 30분에 제공된다. 식단으로는 하절기에 주먹밥을 주고 날씨가 추워지는 10월 말 또는 11월 초부터는 떡국을 만들어 전달한다.
“코로나 전보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다른 곳에서 밥을 안 줬기 때문이죠. 작년엔 하루에만 1200분까지 드린 적이 있는데 그 이상은 드리지 못했어요. 밥을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죠. 지금은 웬만한 급식소들이 다시 열면서 점심에 350~400개 정도 나가요. 아침에는 200개 정도죠. 남을 때도 모자랄 때도 있어요.”
자광명 보살 혼자서 단체를 이끌다보니 자원봉사자의 도움은 언제나 필요하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활동이라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찾아 음식을 조리하고 배식을 돕는다. 평일엔 보통 4~5명, 주말엔 10~25명 정도다. 대체로 회사 직원들이 모임을 결성해 오거나 학생들이 봉사활동 차원에서 방문한다. 코로나 전보다 줄어든 건 아쉬운 부분이다.
“코로나 전 팀으로 꾸려졌던 사람들 대부분이 거의 안 나와요. 여기 나오면 코로나에 감염될 것이 우려되는 거죠. 근데 저희는 마스크를 다 착용하고 수시로 소독제를 바르고 온도도 재거든요. 방역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죠. 생각하는 것만큼 여기가 위험하지 않아요. 지난해 서울 시내 무료 급식들이 대거 문을 닫았을 때 여기만큼은 문을 닫지 않은 이유 중 하나죠.”
코로나 와중에도 문을 닫지 않도록 전염병 전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식단과 배식 장소를 바꿨다. 기존에는 사람들이 줄서서 건물 2층으로 올라와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을 받도록 했지만 코로나 시기에도 그렇게 할 순 없었다. 자광명 보살은 주먹밥을 만들어 놓고 야외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식사하도록 배급 방식을 바꿨다.
“역병이 돌아서 이전처럼 식판에 밥을 줄 수 없었죠. 그래서 바구니에 주먹밥을 담아 배고픈 사람들이 하나씩 가져가도록 했어요. 오는 사람마다 만들어서 줬죠. 하루에 2개 또는 3개 받아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관공서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라고 강조하더라구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선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고 드렸어요. 접촉하면 오염이 되는 줄 알았던 것이죠. 마음이 편치 않았죠. 지금이야 (백신으로) 면역력이 높아져서 고무장갑을 끼고 밥을 드리진 않아요. 그때만 생각하면 그분들께 정말 죄송스럽죠.”
“사실 무료 급식이라는 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배고픈 상황에 처해있다면 주는 것이에요. 조건에 따라 주고 말고 할 것이면 급식소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루 3끼 먹는 한 저 사람들한테 소중한 한 끼를 내놓겠다고 다짐했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배고픈 사람이라면 밥을 주겠다는 원칙
방역대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에 따라 탑골공원 안에 마련된 테이블 간의 간격을 띄어서 배치하며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식사할 수 있게끔 했다. 이로 인해 전염병 전파를 막을 수 있었지만 일회용품 사용에 따른 재원 부담은 상당했다.
“일회용 수저·그릇으로 식사를 제공하면 설거지 할 거리가 없어서 편한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이것만해도 한 달에 거의 300~400만원 정도죠. 돈을 떠나서 환경에도 좋지 않잖아요? 그래서 밥그릇만큼은 조금 비싸더라도 플라스틱보다는 종이류로 쓰고 있어요. 또 최근 종로구청에서 12월부터는 실내에서 식사를 드리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사이에 전염병이 다시 확산되면 어떤 지침이 내려올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계획이에요.”
비영리단체이므로 시민들의 후원으로 재원을 마련해 운영한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돈은 없다. 재정 상황은 넉넉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후원 규모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기존에 줄곧 기부하던 자영업자들의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상대하지만 저희 재정 상태도 엄청 어려워요. 정부 지원 없이 후원으로만 재원을 마련하죠. 기부금 영수증을 다 끊어주는데 대부분 법인으로 등록된 곳만 찾더라고요. 거기는 이미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데 말이죠. 요즘 사회적으로 다 어렵잖아요? 그동안 자영업 하는 사람들이 5만~10만원씩 기부해줬는데 상황이 어려워지자 이런 데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주변에 아는 분들이 쌀이 모자라면 보내주죠. 늘 감사해요.”
행복한 순간은 밥을 전달할 때다. 어르신들이 밥을 먹고 “고맙습니다. 보살님이 여기서 밥을 안 주면 우리는 굶는다”라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함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자광명 보살은 마음을 추스르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아프지 않고 열심히 오랫동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아요.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대부분 귀도 어둡고 정신·육체적으로 아픈 분들이 많죠. 사회 문제라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은 줄고 노인들은 늘고 있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죠. 대부분 맞벌이하고 지들도 살기 바쁜데 부모를 어떻게 봉양하겠어요.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아 걱정되죠.”
중장년들만 오는 건 아니다. 가끔씩 젊은 사람들도 찾아온다. 대개 졸지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다. 대부분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마스코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밥을 받아 간다. 그 뒤로 자광명 보살은 원칙을 세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배고픈 사람이라면 밥을 주겠다는 원칙이었다. 노인이라도 줄을 제대로 서지 않고 행패를 부리면 밥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젊은 사람들을 끄집어냈어요. 한번은 ‘멀쩡한 놈이 여기 와서 왜 줄 서서 먹느냐’라고 타박했죠. 그런데 제게 ‘보살님, 배고파요’라고 말하는 걸 듣는 순간, 아차 싶더라고요. 사업을 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돼서 전화까지 끊겼다고 했죠. 그러면 집은 온전하겠어요? 어떨 때는 전화도 와요. ‘보살님, 노인무료급식소라고써있는데 노인들만 가는 것이냐’고요. 그 후론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라고 플래카드를 붙여놨어요. 누구든지 배고픈 사람이면 오라는 뜻이죠.”
끝으로 그가 바라는 점은 하나였다. 나라가 안정돼서 길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생각하면 배고픈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먹고 갈 수 있는 일종의 약속의 장소로 자리잡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오시고 후원이 많이 들어와야 무료급식소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어요. 아직까진 후원이 넉넉하지 않아 직원을 구하지 못해서 제가 직접 반찬을 만들고 있죠. 반찬 비용으로만 한 달에 1500~2000만원 이상 나가니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구요.”
일인 다역을 자처하면서 쉴새없이 급식소를 돌보는 자광명 보살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급식소로 후원이 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면서 웃음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국가와 사회가 미처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매일 밥을 짓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삭막해져가는 우리 사회에 한 가닥 희망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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