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의 대기업 물류 팀에서 일하는 여성 이아영(가명·32) 씨는 올겨울에 에코퍼(eco fur, 친환경 모피)와 재활용 플라스틱 의류를 활용해 만든 옷을 샀다. 과거 가격과 디자인을 봤다면 이번에는 ‘환경보호’와 ‘동물보호’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겨울옷을 장만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월급이 올랐고, 이전처럼 가격에 연연할 필요가 줄었죠. 덕분에 제 만족도를 중심으로 소비해요. ‘착한 소비’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해서 전보다 제품 정보를 꼼꼼히 살펴봐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중심으로 쇼핑하는 거죠.”
MZ세대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심리적 만족감과 럭셔리 로망을 동시에 실현해주는 가심비가 떠오르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와 달리 가심비는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의 신조어다.
‘착한 소비 하고 싶어’ 프리미엄 소비로 떠오른 ‘가심비 소비’
MZ세대는 ‘착한 소비’에 더 비싼 값을 낼 의사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MZ세대 380명에게 실시한 ‘MZ세대가 바라보는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 조사에서 절반 가까이(46.6%)가 가치 소비를 반영하는 신조어 중 ‘가심비’를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꼽았다.
이어 가격과 품질 외의 요소를 통해 개인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아웃’이 28.7%를 차지했다. 응원을 위한 구매 활동인 ‘돈쭐(돈으로 혼쭐낸다)’이 10.3%, 자랑·과시하기 위한 소비 ‘플렉스(Flex)’가 7.9% 순이었다.
MZ세대들은 제품 구매 시 기업의 ESG 실천 여부를 중요하게 인식했다. 응답자의 64.5%가 ‘ESG 실천 기업의 제품이 더 비싸더라도 사겠다’고 답했다. 경쟁사의 동일 제품과 비교해 얼마나 더 지불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70%가 2.5~7.5%를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답했다.
친환경 제품 중 가장 파급 효과가 크다고 생각되는 품목으로는 ‘무라벨 페트병’(41.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전기·수소차’(36.3%),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류’(13.7%), ‘친환경 세제’(7.9%) 순이었다.
윤철민 대한상의 ESG 경영실장은 “공정과 정의를 중시하는 MZ세대의 시대·사회적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통업계 넘어 숙박까지… MZ 공략 ‘가심비 마케팅’
식품·유통업계는 ‘경험(맛)’과 ‘착한 소비’를 내세운 가심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고급 수제버거 전문점 고든램지버거는 10만 원대 안팎의 고가에도 개장 1년이 넘도록 식객으로 가득하다. 다른 패스트푸드점이나 수제버거 전문점의 햄버거 가격이 1만 원 안쪽이거나 비싸도 2~3만 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5~10배의 가격인 셈이다.
‘헬스 키친 버거’ ‘포레스트 버거’ ‘야드 버드 버거’ ‘팜 버거’ ‘베지 버거’ ‘아메리칸 버거’ 등이 인기 메뉴이며, ‘1966 버거’가 14만 원으로 가장 고가다. 투플러스(1++) 한우 채끝살로 만든 패티와 트러플 페코로니로 치즈가 들어가고 자체 개발한 소스와 발사믹 식초가 곁들여진다.
지난 주말(1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의 고든램지버거를 찾은 백윤지 씨(26)는 “가격이 ‘사악하(비싸)’지만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마침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아서 함께 왔다”며 “(여기에) 1시간 버스 타고 와서 15분째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백씨의 친구 조안나 씨(26)는 “원래 수제 버거를 좋아해서 이곳저곳 찾아다닌다”며 “(먹을 메뉴가) 너무 비싸서 돈이 아깝다기보다 그래도 안 먹어볼 순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맛있으면 최고 좋고”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매일유업은 지난해 대용량 커피 브랜드인 ‘바리스타룰스 그란데’의 아메리카노를 새롭게 출시하며 비닐 라벨을 제거했다. 매일유업은 이번 무라벨 패키지 출시가 매년 30년생 소나무 2000그루를 심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 마켓컬리는 2015년 서비스 시작부터 상품 배송에 쓰던 스티로폼 박스를 없앴다. 판매·배송 건수가 늘수록 스티로폼 등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고객의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모든 배송 포장재를 종이로 변경했고, 상품의 신선도와 안전성 등을 고려해 2021년 지속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컬리 퍼플 박스’를 도입했다.
대기업 계열의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감성적인 부분을 더 고려해 과거 인기 콘텐츠, 혹은 개성 있는 디자인을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다”며 “명품을 서슴없이 구매하는 MZ세대인 만큼 기업들은 MZ세대의 욕구를 분석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유기농화장품 브랜드 닥터브로너스의 ‘페퍼민트 퓨어 캐스틸 솝’은 화학 성분을 배제하고 미국 농무부(USDA)가 인증한 유기농 성분을 담았다. 제품 포장은 100% PCR(Post-Consumer Recycled)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해 환경 부담을 최소화했다. 닥터브로너스는 2020년부터 100% 종이 포장 배송을 도입하는 등 플라스틱 사용 감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
닥터 브로너스 관계자는 “닥터 브로너스 본사는 단기적으로는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는 자체적 노력과 동시에 장기적 대안을 찾기 위해 다각적 접근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텔·숙박 업계도 심리적 만족감과 럭셔리 로망을 동시에 실현시켜 주는 특별한 서비스를 앞세워 가심비를 좇는 MZ세대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대로 고급 호캉스를 경험할 수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에서 고급 뷔페나 고급 호텔의 자체 브랜드(PB) 상품 등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에 위치한 와이컬렉션은 5성급 호텔에서 누릴 법한 프라이빗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어 MZ세대들에게 인기다. 와이컬렉션의 객실은 △슈퍼브 오션뷰 스위트 △슈퍼브 오션뷰 로열스위트 △파노라마 오션뷰 스위트 △파노라마 오션뷰 로열스위트 △펜트하우스 등 총 5가지로, 크기가 약 165~300㎡에 이른다.
롯데호텔은 지난해부터 자사몰에서 PB 상품을 판매하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롯데호텔 PB 상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은 ‘시그니엘 디퓨저’다. 원래 호텔의 서비스 환경을 높이기 위해 만든 향인데 투숙객의 구매 문의가 이어지면서 상품으로 출시됐다. 롯데호텔에 따르면 한 병(200㎖)에 8만8000원으로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 집에서 ‘스몰 럭셔리’를 즐기려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분당에서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유진(가명·28) 씨는 친구들과 올봄 벚꽃놀이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곳을 물색하다가 벚꽃으로 둘러싸인 석촌호수 전체 뷰가 내려다 보이는 롯데 시그니엘 서울에서 호캉스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호숫가 대신에 1년에 한번 나에게 최고의 벚꽃놀이를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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