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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 느와르를 표방하는 영화 ‘귀공자’가 개봉 일주일 차에 접어들었다. 길거리 복서로 살아가는 마르코. 그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온 것뿐. 코피노인 그에게 아버지란 낯설고 아득한 이름이다. 그가 아버지를 애타게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이다. ·
그런 그에게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소식이 닿는다. 거짓말 같은 일은 계속 일어난다. 한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없는 추격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거야? 이유도 알 수 없고, 적과 친구의 구분조차 어려운 정체불명의 추격전 속에서 마르코는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한국판 아포칼립토의 제목이 ‘귀공자’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박정호 감독은 전작인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신세계’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깃든 악마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번 영화에서 박 감독은 귀족적인 악에 대한 염탐을 시도하고 있다. 사람의 목을 따고 머리통을 날리는 절대 폭력 속에 스민 고귀함. 그것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만으로 귀공자는 유혹적이다.
영화 ‘귀공자’에는 세 명의 귀공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 귀공자는 이름이 없다. 왜 없을까? 누가 봐도 깔끔한 귀공자 스타일이므로 귀공자 외에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공자의 작업복은 허름한 운동복이 아니라 값비싼 새 양복이다.
타깃을 추격할 때도 결코 구두를 포기하는 법이 없다. 한 올의 흐트러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귀공자는 수시로 거울을 확인하며 외모를 점검한다. 박 감독의 뜻대로 김선호 배우는 ‘깔끔한 미친놈’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다. ‘갯마을 차차차’의 홍 반장이 잘 차려 입으면 이렇게 된다.
두 번째 귀공자는 마르코 역의 강태주다. 아무리 허름하게 입어도 그 속에 깃든 귀족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고급스러운 영어 발음이며 깔끔한 얼굴선은 그가 태생적으로 귀족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그의 성정은 세 남자 중에서 가장 귀족적이다. 총을 든 이복 여동생의 뺨을 세게 후려칠 때 그의 귀족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죽음의 위협에 구걸하지 않는 자세는 아무나 갖추는 게 아니다.
세 번째 귀공자는 한 이사 역의 김강우다. 김강우의 단단한 외모야말로 귀공자 역에 적격이다. 그래서 감독이 한 이사의 캐릭터를 지나치게 평면화시킨 게 아쉽다. 그가 조금 더 고급스러운 언어를 사용하고, 조금 더 품위 있는 태도를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좀 더 두려우면서 매력적인 악당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귀공자는 킬링 타임용 영화로 손색없다. 자기에게 불리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언론인을 장총으로 쏴죽이고, 고가도로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며, 고등학생 손에 권총을 쥐어준다. 일당백의 싸움에서 살아남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영화는 판타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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