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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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 증원’이 화두에 올랐다. 의료계는 이에 반대하며 ‘저(底)수가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이 70% 아래로 떨어져 의료기관의 안정적 운영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의료기관 간 경쟁과 직종 간 갈등으로 합리적 수가도출에도 실패했다.
특히 ‘필수의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분야에서 저수가 문제가 폭발했다. 의료계 28개 전 분과 가운데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며 외상을 입거나 병이 생길 때 거쳐야만 4대 메이저과가 있다. 누구나 불가피하게 이용해야 할 내·외·산·소 4개과는 당연히 공공재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강제성이 더해졌다.
대한민국 의료보험은 단일 보험체계로 모든 병원·의원은 당연 지정제로 정해져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는다. 설계부터가 문제다. 건강보험 공급자 측(정부)이 4대 메이저 과에 의료의 공공성을 반영한 수가를 강제한 것이다. 의료수가엔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상대가치 점수당 단가)가 들어가는데, 여기에서 정부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실제 협상에 임해 온 의료계는 “나라를 재건하는 것보다 수가 하나 고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스갯말을 할 정도. 원가보전이 안 되는 저수가를 국가가 책정하고 이를 일반 병원 의원 등 민간자원에 강제한 것이다.
결국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떠나기 시작했다. 전공의가 모이지 않으니 ‘의사 수 증가’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에 의료계는 “‘저수가 문제’ 해결을 자임한 정부와 수십 년 동안 수가 협상을 했음에도 실패했다”며 “이제는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해 같은 문제를 감당할 경쟁자를 더 끌어들이겠다”고 나온다. 필수의료 붕괴의 진정한 이유를 외면한 채 공공병원을 짓고 공공의대에서 배출한 공공의료 전담의사를 충원하겠다고 한다. 이에 문제를 제기하면 ‘의료진의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인다.
신동규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과장을 찾았다. 20년 동안 의료의 공공성을 인식하며 의사를 천직으로 여겨 온 분이다. 2004년 서울의료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근무한 이래 4000건 이상의 수술을 집도했으며 해외재난 현장 및 의료취약지역 10여 개국에서 의료봉사를 해 왔다. 현재 월급의 몇 배를 주겠다는 제의가 있어도 ‘소명의식’으로 공공병원과 필수의료계를 지켜 온 신 과장이다. 그는 “현재 인력도 필수의료계를 떠나는데, 새로 뽑을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지킬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오류”라고 언급했다.
▷ 다음은 ‘일문 일답’
▶ ‘저수가 문제’ 현장에서 보시기에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은 총액예산제로 정부가 정한 예산안에서 의료비를 쓴다. 의료계, 한의계, 치의학계 등이 나눈다. 의료계도 다시 외과, 내과 등이 일정 비율로 예산을 나눠 쓴다. 예산을 가지고 밥그릇 싸움을 하게 돼 있다. 게다가 각각의 수가마다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치료비 청구를 위해 ‘건강보험요양급여비용(건강심사평가원·심평원)’ 책자를 봐도 의사 외 사람들은 이 숫자를 이해 못 한다. 더구나 의료계 내부도 각 과 별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수가를 가지고 경쟁한다. 이게 주먹구구식으로 청구돼 있다. 이런 사정을 세상에 설득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림프샘을 떼어내는 위암수술 수술비가 148만 원이다. 원가의 80% 수준이다. 위암 수술보다 쉬운 우방결장절제술은 165만 원. 고난도 수술보다 쉬운 수술이 더 비싸게 책정되어있는 희한한 현상이다. 설명할 수가 없다. 예를 하나 더 들겠다. 탈장 수술보다 이비인후과에서 귀지를 떼는 게 더 비싸게 책정돼 있다. 이런 것을 고치려 해도 과별로 이권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해결책은 총액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 필수의료 살리겠다는 건 역대 정부의 일관된 기조다. ‘예산 증액’ 문제가 왜 안풀리는건가.
“총액예산제와 상대가치점수제도로 수가를 도출한다. 물가인상분이라는 게 있지만 수가 인상율이 이를 못 따라간다. 한의학보다 양의학은 물가인상률을 따라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여기에 가격 결정자로 들어오는 정부 입김이 너무 세다. 한번 잘못 책정된 상대가치점수는 바꾸기가 어려워 오랜 세월이 지나도 부적절한 비용으로 의료 행위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수술이 자유롭지도 않다. 급여청구 방식대로 수술하지 않으면 심평원에서 심사와 청구가 들어온다. 내 수술행위가 책자에 없으면 돈을 받을 수가 없다. 심지어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너무 불합리하다. 이걸 아는 후배들이 외과를 택하면 바보가 된다. 지금은 아무도 외과의를 하려 하지 않는다. 현업에 있는 이들도 힘들어한다.”
“미국식으로 바꾸면 된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수가를 요양급여의 가치를 각 의료행위에 대한 상대적 점수로 도출한다. 각 의료행위에 대한 요양급여 수가는 행위별 상대가치점수에 점수당 단가(환산지수)를 곱하여 산정하게 된다. 행위별 상대가치 점수는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점수당 단가를 매년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책정한다. 내 보기엔 가장 합리적 수가 도출 방식이다.”
▶‘전공의(醫) 80시간 법’도 필수의료인력 충원에 큰 걸림돌로 작동한다고 들었다.
“전공의 80시간 법은 당사자도 지키기 어렵다. 주 80시간만 일하면 수술의 기술(術技)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전공의들 스스로 안다. 그럼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80시간밖에 일을 못 한다. 환자도 손해고 의사도 병원도 손해다. 그렇다고 80시간 이상 일을 했다가 신고당하면 보건복지부가 실사를 나온다. 그러면 전공의 T.O조차 사라지게 된다.”
“만약에 이 법에 의해 오후 5시 퇴근해야 하는 전공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시간에 맹장이 터진 환자가 도착해 수술을 배우지 못하면 맹장수술 못하는 전공의가 돼버리고 만다. 나는 맹장수술을 1000건 넘게 집도했다. 이 상황에서도 맹장수술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환자들을 본다. 외과의는 수술 경험이 많을수록 의사도 환자도 안전해지는 것이다. 80시간 트레이닝밖에 못 받고 수술법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다면 수술해선 안 된다.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이 리얼 월드를 모른다. 외과계열과 필수의료 과들은 아무리 의료인력이 더 공급되더라도 전공의 80시간법 규정이 실력있는 외과의 양성을 막는다.”
▶ 빅5병원으로 ‘필수의료 공백’이 보완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사후약방문식 처방이다. 이미 빅5(국내 5대 대형 상급종합병원)가 모든 룰을 날렸다. 빅5 등장 이전까지 우리나라 의료는 지역별 어느정도 평준화 돼 있었다. 우리나라 전국 41개 의과대학엔 외과계열의 대략 110개 정도의 트레이닝 병원이 있다. 대부분 모두 다 비슷비슷하고 열심히 일하고 논문도 쓰고 발표도 하고 의국(해당 과 의료 사무 관장)도 있었다. 빅5가 블랙홀처럼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건 큰 마트가 들어오면 동네 시장이 말라 죽는 것이랑 같은 맥락의 비극이었다.”
“병원이 대형화하면서 지방 먼저 죽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도 점차 고사하기 시작했다. 빅5 병원들은 10년 단위로 ‘더블링(doubling)법칙’에 따라 병상을 배로 늘리면서 온갖 의료인력들을 다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대형병원들은 위암이나 대장암 파트만 봐도 웬만한 대학병원 외과 전체 스텝보다 많다.”
▶ 규모가 큰 병원에 전국 환자들이 집중되는 현상은 어떻게 보시는가.
“현재 빅5 병원의 총 병상 규모는 1만 개 수준이다. 미국은 다르다. 큰 병원일수록 좋다면 시장 논리에 철저한 미국이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 리 없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문화는 무조건 큰 게 더 좋을 것이라는 백화점식 논리를 가졌다. 단일 병원이 엄청난 규모로 확장하게 되면서 불안정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빅5 중 한 병원에서 강한 전염성 질환이 발생해 병원 기능을 잃었다고 가정해보자. 한국 의료계 전체가 흔들릴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량으로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당연히 퇴원을 강요당한다. 이 상황에서 합병증이 발생해도 같은 병원에 입원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병원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국가가 의료환경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함께 도모하고 싶다면, 적절한 규모의 건강한 대학병원들을 많이 지어야 한다. ”
▶빅5 집중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법은 있나.
“병원이라는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잘 조화를 이뤄져야 양질의 의료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안전한 진료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의사는 가이드라인대로 움직인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진료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사가 완전히 책임을 뒤집어쓴다. 그래서 똑같은 진료를 한다. 하지만 수술은 의사마다 경우마다 좀 다를 수 있다. 의사 들 별로 집도하는 술기법이 약간 씩 달라서다. 이 또한 착시가 크다. 빅5가 생존율이 높기는 하지만 또 개인 의사별 데이터로 치면 편차가 심하다. 평준화하기 매우 어렵다. 환자들은 모두 빅5 의사가 최고라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마치 백화점 시금치가 재래시장 시금치보다 좋을 거라고 여기는 맥락이다.”
▶ 공공병원 의사 수 증원이 정치권 화두다.
“바보 같은 이야기다. 나는 ‘나비효과’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95년도 의사국가고시가 시작됐는데 당시 전문의 합격률이 60%대였다. 당시부터 메이저과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외과는 정말 많이 무너졌다. 내 경우 96년도부터 외과 1년 차 레지던트를 시작했는데 당시 의사국가고시에서 다들 떨어져서 병원에 일손이 부족했다. 10명 일을 6명이 나눠서 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잠을 자지 않고 일하는데도 일이 안되더라. 1년 동안 몸이 성한 곳 없을 정도로 상해가면서 수련을 받아야 했고 이런 나를 보며 아래 연차들은 ‘외과 하면 난 죽을 것 같아’ 생각하고 안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수술환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당시부터 외과 전문의들이 팍팍 떨어져 나갔다.”
“의학전문대학원도 한몫 거들었다. 이들은 졸업하고 나면 30세가 보통 넘는다. 30세 넘어서 힘든 수련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의전원이 생기고, 의사 T.O를 이쪽에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필수의료 과에 4대 메이저 과에 전공의가 급감했다. 그나마 빅5가 전공의를 다 쓸어가니 지방의료가 죽게 된 것이다. 그리스 공공의료 교훈을 봐라. 의료인력이 모자란다고 의대생 정원을 늘려 의사 숫자가 늘자 의사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의료비 지출은 늘고 공공병원은 의사가 여전히 없어 힘겨운 상태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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