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11] “제비꽃이 만발할 때 나는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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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제비꽃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13 19:30:36

▲ 이름만큼 종류도 많은 제비꽃은 우리나라에 60여 종이 자생한다. 윤상구 사진작가

오랑캐꽃·장수꽃·씨름꽃·병아리꽃·앉은뱅이꽃 등 제비꽃을 가리키는 이름은 유난히 많다. 이용악 시인이 1939년 지은 시 ‘오랑캐꽃’에는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꽃이 필 무렵 오랑캐가 자주 쳐들어와서 오랑캐꽃이라 했다고도 하고 꽃의 생김새가 여진족의 투구나 머리채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이용악 시인은 우리 역사상 ‘오랑캐’에게 가장 많이 시달렸을 함경북도 출신이다. 하지만 시에서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이라며 겉모습 때문에 공연히 침략자 오랑캐로 불리는 꽃의 억울함을 대변했다.

국내 자생 제비꽃 60여 종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 피는 꽃이라서 혹은 모양과 빛깔이 제비를 닮아서 제비꽃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이름만큼이나 종류도 많은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만 60여 종이 된다. 봄이면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게 제비꽃이건만 그 흔하디흔한 꽃을 유난히 사랑한 세계사적 인물이 있다. 바로 유럽 역사를 뒤흔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다.

나폴레옹의 제비꽃 사랑이 각별하다 보니 제비꽃은 그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아내 조세핀의 웨딩드레스에도 제비꽃이 그려졌고 두 사람 다 제비꽃 향수를 사용했으며 매년 결혼기념일이면 제비꽃을 아내에게 선물했다. 이처럼 나폴레옹과 제비꽃 관련 이야기는 전설처럼 풍문처럼 다양하게 전해진다.

대혁명의 여파가 자기네 나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 주변 나라들이 프랑스를 위협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조국을 구하고 유럽을 평정한 나폴레옹. 그는 1804년 자신을 황제로 선포했다.

나폴레옹과 그 지지자들은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뀐 것을 근거로 프랑스 제정 성립을 합리화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었다. 혁명의 격랑에 시달린 프랑스 국민은 강하고 안정적인 정권을 기대했다.

그럼에도 그의 황제 즉위는 그를 추종하던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안겼다. 합리적이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열어줄 영웅에서 구태의연하게 권력을 탐하는 독재자로 그 이미지가 바뀐 것이다.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교향곡 3번을 작곡한 베토벤은 악보 첫 장 헌정사에서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빼버렸다. 심지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패배를 안긴 영국의 웰링턴을 찬양하며 ‘웰링턴의 승리’라는 곡을 만들었다.

스스로 황제 관을 쓴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대관식도 자기 방식대로 치렀다. 당시 유럽 황제들은 교황이 있는 바티칸으로 가서 교황 집전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교황 비오 7세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오게 했다. 뿐만 아니라 교황의 집전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황제 관을 썼다. 일부 없는 장면을 그려 넣기도 했지만 자크 루이 다비드는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기록 사진처럼 상세하게 묘사했다.

당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는 나폴레옹의 적이었다. 영국·러시아·프로이센·스웨덴 등 동맹군이 사방에서 프랑스를 위협했고 나폴레옹은 그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1814년 3월, 동맹군이 파리에 들어왔고 나폴레옹은 퇴위했다. 엘바섬으로 유배를 떠나던 날, 그는 퐁텐블로성 뜰에서 수비대와 작별하며 말했다.

“나는 제비꽃이 만발할 때 돌아올 것이다.”

나폴레옹의 빈자리를 두고 유럽 제국들은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고 그 틈을 타 나폴레옹은 엘바섬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떠날 때의 약속대로 이듬해 봄, 제비꽃이 필 무렵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 가슴에 제비꽃을 단 환영 인파가 거리를 메웠다.

나폴레옹의 유해, 파리로 돌아와 개선문을 통과하다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영국·프로이센·러시아 연합군에 맞서 나폴레옹 군은 선전했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로써 백일천하는 끝나고 나폴레옹은 아프리카 적도 근처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두 번째 유배길에 올랐다.

6년 후 나폴레옹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사후 19년이 지난 1840년,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승전을 기념하여 지은 파리 개선문을 통과해 앵발리드에 안장되었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나폴레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끔 궁금해진다. 영웅과 독재자 사이를 두부 자르듯 잘라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앵발리드 건물 중앙에 안치된 나폴레옹의 거대한 관은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해마다 봄이면 나폴레옹의 귀환을 환영하는 인파처럼 앵발리드 주변에 제비꽃이 만발할 것 같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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