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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전쟁 본격화에 따른 ‘신냉전’ 구도가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높이는 가운데 약 1년 10개월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미국의 힘을 축내고 있다. 그 연장에서 최근 북·러 정상회담을 통한 군사협력 또한 대한민국 안보에 먹구름을 더한다.
현 상황의 피로도를 극대화시킨 것은 며칠 전 터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다. 오래된 이·팔 간 ‘폭력의 일상화’가 이스라엘 등 중동을 넘어 전 세계를 직·간접적 전쟁 상태로 끌어들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방어 및 전진 기지이자 중·러·일과 이웃한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북한의 군사 도발에 끊임없이 노출돼 왔다. 윤석열정부 집권 직후부터 한·미 동맹 강화 및 한·일 관계 정상화로 돌아섰으나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그의 미국우선주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를 전면 지원함으로써 러시아 약화를 추구하며 중국과는 경쟁·협력 관계를 지속하는 듯한 미국. 그 속사정과 한반도에 미칠 영향의 힌트를 얻고자 국제전문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85)를 찾았다.
커크는 1982년 미국 최초이자 유일한 전국종합일간지 USA Today 창간멤버이자 베테랑 지한파 언론인이다. 1972년 시카고트리뷴의 극동지역 특파원으로 서울에 처음 온 이래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80년 5·18 광주사태,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 때마다 주요 이슈를 심층 취재했다.
1997~2003년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의 한국특파원, 뉴욕타임스와 포브스아시아 등의 기고가였던 그는 2004년 ‘아시아에 관한 미국의 가장 훌륭한 칼럼니스트’로 메릴랜드대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델리와 마닐라에서 풀브라이트 수석연구자로 활동했으며 다수의 기자상도 수상했다.
다음은 커크와의 일문일답.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미국의 피로도가 높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화당 승리를 바라며 내년 미 대선까지 전쟁을 이어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로 인한 피로는 불가피한 것이며 1년 후 대선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필연적으로 자기 정치를 하기 마련인 가운데 전쟁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공화당 집권 후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약화되길 러시아 측은 바랄 수 있다. 하지만 정치란 불확실성 게임이다. 누군가의 편에서 결과를 예단하면 안 된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건재하는 한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회복기를 보이지만 미 대선에선 각종 대외 악재로 인한 경제문제와 트럼프 전 대통령 송사 이슈가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내년 미 대선의 결정적 변수라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앞으로 미국의 대(對)러시아·중국 외교는 어떻게 될까?
현재 미국에게 중요한 나라, 부담스런 나라는 러시아보다 중국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고 드론에 방탄복까지 물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이 중·러 두 나라와 모두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를 전략적으로 갈라 놓고 싶어 하지만 당분간 쉽지 않다. 미·중 관계 회복도 어렵다. 중국에겐 평화회담 주선을 기대하며 우크라이나에겐 러시아와 맞설 F16 전투기 등 무기를 보내는 모순적 상황이다.
-친중 세력이 로비로 미 의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중국인들은 각국의 산업·정치·교육 등 전방위적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미국 내 분명한 친중 세력이 있고 정보를 공유하며 중국의 대미외교 정책에 동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미국 내 많은 이들이 대만을 지지하고 중국공산당 정권에 반대한다. 대만을 전체주의와 싸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 1위를 유지 중이다.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면 바이든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승계할까?
굉장히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다. 트럼프가 당선돼 바이든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일정 정도의 전략과 정책노선의 상당한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미·일 협력체제는 다시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지만 중국 견제의 필연성은 이 삼국 공조의 필요성을 재인식시켜 줄 것이다.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해 온 윤석열정부의 기조가 미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쪽 외교 전략에 더 부합하나?
미 공화당이 주장하는 게 ‘보수주의’지만 사실상 ‘미국식 자립’을 원한다. 고립주의로 불릴 수 있다. 미국 바깥 문제에서 최대한 손을 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윤 정부와 맺은 긴밀한 유대관계로 미국에게 분명한 외교 이익이 있음을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임 문재인정부와 상반된다. 대북 강경 기류에 따른 한반도 정세변화를 평가하신다면?
북한의 위협에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때라고 본다. 좀 더 유화적인 정책을 취할 개연성이나 타당성이 전혀 안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의 대남전략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서로 감정상 극단적 평행선을 그리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재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 연합하거나 충돌하는 한가운데 한반도가 놓여 있다. 이 중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의 적대국 북한을 지지하고 있으니 상당히 우려스럽다. 한미관계 강화 이상의 해법이 있을까? 미국은 한국을 적화통일 위기로부터 구해낸 후 70년 동안 단단한 동맹을 유지해 왔다. 그 의미를 피차 잘 알고 있다.
한국·일본 군사협력 역시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이를 통한 전방위적 방어 태세가 미국과 일본에게 절실하다. 북한의 지속적 도발 속에 윤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현실적 외교을 구사하고 있다. 문 정부 시절 축소 내지 중단된 연합군사훈련도 재개했다. 한·미·일 공조 강화는 대단히 합리적 선택이다.
-최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린다.
전 세계에 충격을 줬으며 곳곳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단 한반도와 관련해서만 말해 두자. 북한이 하마스 편에서 미국·이스라엘에 적대적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데 하마스처럼 한국에 예측 불가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무기와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의 주둔 등 완전한 군사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대응이 유사시 미국의 즉각적 전폭적 지원이 필요한 한국을 위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굳건히 지킬 결심을 느슨해 해선 안 된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스라엘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미국과 한국의 이익이 걸려 있다. 미국의 세계전력을 중심으로 바라봤을 때 이스라엘과 한국은 긴밀히 연결된 지역이다. 이스라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와 대만의 유사시를 포함해 중국·베트남·필리핀 등의 남중국해 충돌 예상 시나리오를 짜는 등 투트랙 노선으로 대응하길 바란다. 군사대응 태세 준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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