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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다수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거부하면서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새로 지명되었지만 이재명 당 대표 방탄에 수사 검사까지 탄핵 소추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민주당이 또 거부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내년 총선까지는 사법부의 리더십 공백 상태를 계속 이어 가려는 욕구가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3권 분립의 민주국가에서 국회와 행정부 권력을 두고 정당들은 싸우게 마련이지만 사법부는 휘둘리지 말고 위상을 지켜야 한다. 그 방법은 여당과 야당 어느 쪽의 눈치도 보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서 판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사법부를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하에서 법원은 민주당에 유독 우호적인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결과 사법부의 위상이 높아지기는커녕 민주당으로부터도 무시를 당할 정도로 추락했다는 생각이다.
우선 조국 전 법무장관 재판을 예로 들 수 있다. 올해 2월3일 그에게 징역 2년이 선고되었지만 법정 구속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 이유로 배우자가 수감 중인 점과 사회적 유대 관계에 비춰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변호사인 필자조차 금시초문인 ‘사회적 유대 관계’를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했다는 것은 조국 씨가 ‘가붕게’(가재·붕어·게)에 비유한 보통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렇게 특혜를 받은 조국 씨는 지금 2심 재판을 받으며 근신하고 있는가? 전혀 아니다. 그는 아들의 미국 대학시험 대리 응시 건과 관련해 미국 대학의 교수를 증인 신청하겠다면서 재판을 지연시키려 하고 있다. 이달 6일에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법 체계 내에서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비법률적 방식으로 명예 회복하는 길을 찾겠다’면서 총선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 법원이 아닌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인데 내년 총선까지 재판을 지연시킨 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조국 씨는 법원이 민주당에 우호적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바로 법원이다. 조국 씨를 원칙대로 법정 구속했다면 2년 형을 선고받은 그가 법원을 얕잡아 보지 못했을 것이다.
8월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한 판결도 빼놓을 수 없다. 명예훼손죄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소지가 커서 비범죄화 논의가 있는데 생존자도 아닌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실형을 선고한 것에 세상이 놀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법원이 신격화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이라면 과연 이런 형이 선고될지 의문이다.
편향성의 정점에는 이재명 민주당 당 대표 사건이 있다. 사례가 너무 많지만 우선 구속영장 기각을 들 수 있다. 특히 위증교사의 경우 혐의가 소명되었다면서도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구속을 모면하고 재판 진행을 지연시키려고 변칙 단식을 이어 가던 것을 천하가 다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판사는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해 영장을 발부하지 않아 ‘무권유죄 유권무죄’란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이 결정 직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민주당은 중대한 도덕적 흠결이 있는 것도 아닌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이재명 영장 기각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법원의 신호라는 분석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법원은 자신이 밀어 줬던 민주당에 뺨을 세게 맞은 셈이다. 법원이 금도를 넘을 정도로 민주당에 호의를 보였지만 돌아온 것은 무시뿐이다. 내년 총선 전에 법원이 정상화되길 바라지 않는 민주당은 또 다시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 지연도 문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재명 대표 사건을 계속 같은 재판부에 배당하고 재판부는 병합 심리해서 판결 확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국회 일정을 핑계로 재판에 불참하고는 정작 국회 회의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법원을 갖고 노는 셈이다. 이러다간 이번 정권 임기가 끝나도록 판결이 안 나오고 그 사이에 이재명이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재판이 아예 무력화될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약간의 변화 조짐이 있긴 하다. 재판부가 위증교사 사건은 다른 건에 병합하지 않고 별도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건은 구속영장실질심사 담당 판사가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했기 때문에 총선 전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낙관하기 어렵다. 혐의가 소명됐다는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곧바로 공판기일을 잡는 게 아니라 한 달 후로 공판준비기일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사안이 복잡하고 쟁점이 많을 때 미리 정리하고 심리 계획을 세우는 절차가 공판준비기일인데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재명에 우호적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재명 본인의 출석 부담을 덜어 주면서 총선 전에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 준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이렇게 민주당에 유독 우호적이고 편향적인 법원에 대해 과연 민주당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장 임명 동의 거부로 실추된 법원의 위신이 과연 다시 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임명동의안이 또 다시 부결되면 권위 회복이 영영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빌미는 법원이 제공했다. 이제라도 이재명 위증교사 건과 조국 씨 재판을 총선 전에 선고해야 한다. 권위는 누가 세워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워야 하는 것임을 법원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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