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죽음의 맷돌’ 사이버 렉카 처벌은 솜방망이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2-27 00:02:30

타인의 불행을 악마의 편집으로 부풀리고 공론화하는 이른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으로 돈벌이 하는 ‘사이버 렉카(Wrecker·견인차)’의 횡포는 피해자를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간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모방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한 ‘베르테르 효과’는 이제 ‘베르테르의 유령’이 됐다.

지난해 BJ잼미(본명 조장미·27)와 배구선수 김인혁(27)은 각각 ‘남성·여성 혐오’ 논란에 휘말렸고, 렉카들의 조롱 영상과 수많은 악플을 감당하다 되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넜다. 올해 초·중·고 12년 동안 당한 학교 폭력을 고발했던 표예림(27) 씨도 ‘근거 없는 학폭’이라는 악플 세례를 받다 결국 세상을 등졌다.

2019년 에프엑스 설리(본명 최진리·25)와 카라 출신 구하라(28)도 악플과 사이버 불링을 호소하다 끔찍한 선택을 했다. 임신설·낙태설·리벤지 포르노설 등 온갖 루머와 악플들을 감당했던 이들의 죽음을 알리는 비보는 사실상 ‘발단’에 불과했다. “악플은 이제 그만해 달라. 버티기 힘들다”는 김인혁의 마지막 소셜미디어(SNS) 절규는 렉카와 이들을 추종하는 익명 악플러의 폭주에 되레 기름을 붓고 있는 듯하다. 남의 고통과 불행을 동력으로 삼은 온라인 폭력은 똬리를 틀며 서서히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옥죄고 있다.

최근 기자의 오랜 지인 A씨도 언론에 공론화된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간 합의중재안을 비밀스럽게 작성했다가 사이버 렉카의 먹잇감이 됐다. 그는 2차 가해자로 낙인찍혔으며, 온라인에서 집단 마녀사냥을 당했다. 피해자마저 그에 대한 사이버 불링을 멈춰 달라고 공개 요청할 정도였다. 일면식도 없는 유튜버들은 유튜브 채널과 SNS에 그의 신상을 낱낱이 공개한 후 모욕적 언사로 조롱하고 선동했다. 이들을 스토킹·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고소한 A씨는 “소시민 박사생으로 살다 순식간에 한 사람에게 찍힌 후 수십만 명에게 가스라이터·2차 가해자로 낙인찍혀 인격 살인을 당했다”며 “한 명의 렉카가 공격을 시작하자 주변 렉카들도 같이 공격을 시작하며 사회적 인격은 완전히 살해당했다”고 했다. 표예림 씨도 명예훼손·모욕·스토킹 등 혐의로 악플러들을 고소했으나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악플 세례에 휘말리며 2차 가해를 감당해야만 했다. A씨는 답답해 한다. “내가 왜 이 목숨 건 전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경찰청의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건수 통계는 해마다 급증세를 보인다. 2019년 1만6633건→2020년 1만9388건→2021년 2만8988건으로 증가세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지난해 청소년 10명 중 4명·성인 10명 중 1명이 사이버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해마다 비보가 전해져도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건 어째서일까. 그것은 바로 범법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라는 절대 반지를 보험처럼 쥐어 주는 솜방망이 형벌체계 때문이다.

악성 댓글을 달아 적발되면 형법상 모욕죄로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정보통신망법에선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사이버 불링을 수년간 취재하며 만난 익명의 법조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래 봤자 수십만 원 정도 벌금형 나온다. 경찰에선 온라인에서 오고간 말싸움 정도로 여긴다. 고소해 봤자 원하는 수준의 처벌을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가능하지도 않다”

‘선처는 없다’며 특정 악플러를 고소한 유명인들이 원했던 처벌 수준의 제재 선례도 안 보인다. 누가 상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폭력에 대해 합당하다 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을 받았는가. 사생활이라는 불확정적 영역의 특정 부분을 도려내 경멸하고 모욕하며 혐오를 조장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가해도 ‘수십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 이들을 강력히 처벌하지 않는 한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실사판처럼 법 위에 군림하는 ‘악마의 맷돌’ 사이버 렉카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