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웃음소리·기계음 사라진 충무로 인쇄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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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30 00:02:30

유튜브를 ‘현대인의 교과서’라고 부르는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다. 교과서라 불릴 만큼 많은 정보를 유튜브에서 얻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닐까.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고, 유용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주로 오가는 시대임이 틀림없다.

심지어 인사치레로 주고받는 명함도 ‘리멤버’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주고받는 시대다. 학생들은 더이상 종이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인공지능(AI) 기능이 탑재된 ‘디지털 교과서’를 보기 시작했다. 오히려 더 쉽게 알려 주고 이해하기 쉬워 디지털 교과서가 더 크게 호응을 받는 상황이다.

정보화·디지털화로 정보를 더 빠르고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런 흐름이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다.

기자의 부모님은 1990년대 초부터 10여 년 동안 이곳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합지(合紙) 공장을 운영했었다. 초등학생이던 당시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하교 후 버스를 타고 부모님의 합지 공장으로 가서 쌓여 있는 종이 위에 앉아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엔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단순한 작업을 배워 일손을 거들기도 했고, 어머니가 편찮으신 날에는 어머니 대신 4~5시간가량 일하고 용돈을 챙기기도 했던 것 같다.

공장을 더 키워서 다른 곳으로 옮겼을 때는 공장 이전을 축하하며 배불리 출장 뷔페 음식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이제는 시간이 오래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기분 좋은 종이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우리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건물이 사라지고 없었다.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 흘렀어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이 위치에 허름한 공장이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정보의 디지털화로 인쇄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인쇄골목이 소멸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도무송(정해진 틀에 맞춰 인쇄물을 자르는 공정) 기계를 돌리고 있던 한 업체 대표를 붙잡고 이곳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냐고 물었다. 그는 언제 적 얘기를 하느냐면서 요즘엔 다들 일이 없어서 충무로를 떠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부가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부모님과 친하게 지냈던 식당 아주머니와도 연락해 보았다. 아주머니도 인쇄업이 사양산업이 돼 가는 바람에 손님이 줄어 식당이 많이 어려워져서 몇 년 전 식당을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인쇄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도무송·합지·인쇄·디자인 등 인쇄 업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곳엔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나 싸우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분명 점심 때면 식당가가 북적거리고 좁은 골목이 인쇄물을 나르는 차량으로 가득했었는데 말이다.

인쇄물을 차량에 싣고 있던 한 업체 대표는 최근 인쇄 공장의 상황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렵죠”라고 짧게 답했다. 그는 예전보다 공장 수가 크게 줄었고, 이 제는 거의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고 전했다.

디지털화에 따른 인쇄업의 쇠퇴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가뜩이나 디지털화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서울시가 세운지구 재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인쇄업을 이어 가기도 벅찬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2017년에 서울시와 중구 등은 충무로·을지로 일대를 ‘중구 인쇄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정하고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돈 10원도 지원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시대가 변해 특정 산업이 쇠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 충무로는 600년의 역사를 이어 온 곳인 만큼 주민의 생업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강구하고 개발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김기찬 기자 gc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