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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보수는 좌파에 아양 떨지 말자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6 06:31:00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저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는 과정을 쓰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특히 김춘추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멸한 것에 분노를 느꼈습니다하지만 글을 쓰면서 되도록 그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했습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으면 아무리 철옹성 같은 나라도 무너지는 법입니다저는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원인을 그들 안에서 찾았습니다반면에 신라는 관창과 원술·구진천 같은 애국자가 있었기에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저는 독자가 이 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대하 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를 마치며 필자인 임동주 작가가 이야기한 내용이다. 스카이데일리는 지난해 1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매일 한 면 전체에 우리나라 삼국지를 연재했다. 고구려 건국을 시작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멸망하고 북쪽에 고구려를 이은 발해가 건국돼 신라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기까지의 800년 역사를 해박한 지식과 엄청난 필력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우리는 흔히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을 두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는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차지했을 뿐 옛 고조선과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은 얼마 후 북쪽에 건국한 발해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훗날 발해가 멸망하며 고려가 회복한 압록강까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란·여진족의 손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기막힌 것은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며 한민족의 영토가 쪼그라들어 버린 이 사건의 발단이 상당 부분 신라의 무열왕 김춘추의 사적인 복수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춘추는 백제 의자왕이 대량주(大梁州)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사위와 딸이 목숨을 잃은 일로 치를 떤다. 그래서 백제를 치고자 고구려에 도움을 청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어서 당나라로 건너가 당 태종을 설득해 군사 지원을 약속받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신라의 연호를 버리고 당나라 연호 영휘(永徽)를 쓰기로 하는 등 굴종도 마다하지 않았다.
 
▲ 우리나라 삼국지를 집필한 임동주 작가
 
▲ ‘우리나라 삼국지’는 단행본 시리즈(10권)로도 출간되었다. 도서출판 마야
 
결과적으로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군에 의해 백제도 고구려도 멸망했지만 실제로 두 나라가 망한 원인은 그들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임 작가의 지적이 정확하다. 그런데 문제는 옛 역사에서 나라가 망해 가는 기운에 휩싸였을 때 나타난 특징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우파의 여당과 좌파인 야당이 대립하는 것은 물론, 보수 내부에서마저 의견이 갈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분열과 다툼 속에서 국민이 분별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새 우리는 내편 편향(키스 E. 스타노비치·The Bias that Divides Us)의 어리석은 의리 같은 것으로 정당을 판단하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국민의 비위를 맞추느라 대통령과 여당은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은 광주 5·18을 헌법전문에 넣겠다는 둥 아양을 떠는 추태를 보이고, 보수 일각에선 그것을 비난하고. 그야말로 난리블루스요 오합지졸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난장판이다.
 
22대 총선에서 보수가 참패한 것은 누가 뭘 잘못해서라기보다 고착화된 중앙선관위와 범야권의 부정선거 카르텔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보수는 서로에 대한 비난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중도층이라 생각하는 분별 잃은 국민의 마음을 아양 떨어 돌리고자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신 차리고 원래 잘하던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소리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키워 온 세력이다. 그 과정에 불의와 부정의 그늘이 드리워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못한다. 독재자라 비난받는 대통령들의 산업화 정책 덕에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서양인들의 은근한 멸시의 시선이 찬탄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조사에서 부정 평가의 이유 1번이 민생 등 경제 관련 문제였다. 보수는 적어도 경제만큼은 좌파보다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지난 정권이 망쳐 놓은 게 사실일지라도 그걸 회복시키지 못하니 무능하다 여기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팬덤을 가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에게서 국민이 등을 돌리고 그다음 대선에서 보수의 경제통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도 경제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체감은 상피(上皮)에서 시작된다. 원자력발전이며 방위산업 등 해외 수주도 좋고 해저유전 발굴도 좋지만 그런 큼직한 것들에 앞서 물가안정·부동산시장 되살리기 등 국민 체감의 상피에 해당하는 부분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좌파에 아양 떠는 게 보수 개혁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 점을 경계하고 동시에 전략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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