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가출 청소년에 도움 못 주는 여가부 ‘자립해냄’ 앱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김기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20 00:02:30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속을 크게 썩였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원에 가기 싫었던 기자는 부모님의 모든 연락을 무시한 채 친구 집에 잠적했었다. 오후 11시가 됐을 무렵 방황하다가 결국 친구 집에서 며칠 묵기로 했다. 하지만 곧 부모님의 신고에 경찰의 연락을 받고 두려웠던 나머지 집에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순히 학원을 쉬고 싶다는 이유로 했던 가벼운 가출이었지만 10년 넘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가출을 결심했던 기억이 생생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돌아갈 곳 없이 방황하는 동안 불안에 떨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자보다 무거운 사유로 집에서 벗어나야만 했던 청소년이 여전히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이들은 여전히 안전한 쉼터를 찾지 못해 밤거리를 불안 속에 방황하고 있을 터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가출 청소년의 보호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청소년쉼터 등 많은 청소년 보호 시설이 생겨났고, 각 지자체 등에서는 상담 등 맞춤형 지원·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정 밖 청소년들은 이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집 밖을 방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1만5741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는 접수된 가출 신고만 해도 2만 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이 청소년쉼터 등 보호 시설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청소년쉼터를 이용하지 않은 41.5%의 가정 밖 청소년이 쉼터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 지원 보호·상담기관에서 제공받은 서비스도 상담 및 정보가 70%를 넘은 반면, 쉴 공간이나 하루 이상의 의식주 등의 서비스를 받았다는 응답은 과반을 넘지 못했다.

이는 지자체나 정부가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가 상담에 치중돼 있음은 물론 적당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이를 알지 못하는 청소년이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런 배경에 여성가족부가 2021년 말 내놓은 가출 청소년 등에게 입소 가능한 쉼터를 안내하고 자립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P·앱) ‘자립해냄’도 제기능을 해내지 못한 채 혈세만 축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 청소년의 거리 배회 시간을 줄이고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로 출시한 ‘자립해냄’ 앱은 아무런 인증 절차 없이 성별·생년월일·거주지·가출 여부 등을 아무렇게나 선택해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맞춤형 지원을 표방한 앱이 나이·성별조차도 식별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자립 준비 자가진단 등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지만, 자가진단을 굳이 진행하지 않아도 기존 서비스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내용만 형식적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립해냄’ 앱은 2022년 6월 아이폰용(iOS 운영체제)을 출시한 이후 단 한 번의 업데이트도 진행하지 않은 v1.0.0의 버전 정보가 표시되고 있다. 첫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업데이트 버전을 내놓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립해냄’ 앱을 만드는 데엔 1900만 원이 들었다. 개선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음에도 아무런 업데이트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앱 개발에 1900만 원의 혈세가 투입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고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할 소중한 예산을 실효성 없는 앱으로 눈가림한 꼴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연구기관 등의 조언을 받아 어떤 형식이 가정 밖 청소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실효성 있는 방안과 지원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김기찬 기자 gc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