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87]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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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상의 모든 신들 앞에서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10 06:30:10

“정하운, 나와! 나오라고!”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주차하던 사람들이 창을 내리고, 주차장을 나가려던 운전자들이 차를 멈추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쳐다보았지만 상관없었다.

“너에게 할 말 있어. 물어볼 게 있단 말이야.”

나는 목이 터질 듯 외쳤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눈에 보이는 막다른 벽 앞으로 뛰어가 주먹으로 꽝꽝 두드렸다.

“정하운! 여기 있는 거 알아. 화난 것도 알아. 그래도 말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말해.”

나는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문 열어! 문 열라고!”

나는 정하운의 이름을 부르며 벽을 발로 찼다. 두 주먹으로 때렸다. 이마로 들이받고 몸을 던져 벽에 부딪혔다. 내지른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주차장을 왕왕 울렸다. 곳곳에 있던 주차요원들 서너 명이 다급히 뛰어왔다.

“나오란 말이야, 정하운!”

이러면 안 된다고, 사내들이 양쪽에서 내 팔을 붙잡았다. 주차요원 중 몇몇은 무전기로 호출 신호를 주고받았다.

“난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내가 살 방법을 알려 줘. 답을 달란 말이야!”

나는 바락바락 사지를 휘저으며 하운을 향해 소리쳤다. 주먹에서 피가 났다. 주차요원들이 가까스로 나를 벽에서 떼어 냈지만 어딘가에 문이 있든,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든, 하운이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왜 나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열심히 살았어. 최선을 다해 살았어.”

나는 다시 벽으로 달려들려고 했지만 이번엔 경호원인 듯한 검은 정장의 날렵한 젊은 남자들이 달려왔다. 호신술이라도 하는지 그중 한 명이 나를 완전히 제압해 순식간에 바닥에 넘어뜨렸다. 주차장 차가운 바닥에 얼굴 한쪽을 대고 쓰러진 내 등을 사내가 무릎으로 찍어 누르고 양쪽 팔을 뒤로 꺾어 잡았다.

“난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살려 줘. 난 이 어둠이 싫어. 지긋지긋하게 싫어.”

나는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어디서 왔는지 흰색 자동차 한 대가 와서 멈춰 섰다. 운전석의 문이 열렸다. 하운이었다.

어둠의 터널을 달리는 동안 하운은 말이 없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더라도 나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어떻게 어비수스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는지도 눈여겨보지 못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터널을 달려 하운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나는 뛰어내렸다. 차분하게 하운이 뒤따라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버튼을 눌렀다. 화살표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정확히 Z에서 멈췄다. 나는 템플 어비수스의 홀 안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들어갔다.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세상 모든 신의 형상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죽음이 두려운가?’ 교만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 내려놓아라!’ 근엄하고 거만한 얼굴로 훈계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고승의 주장자일지도 몰랐다. 바다를 가른 모세의 지팡이인지도 알 수 없었다. 길고 단단하고 뱀의 머리를 한 긴 막대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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