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0] 신입생 환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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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20 06:30:07

“세상 이치 다 똑같어. 수제비도 반죽해서 발효시키고, 김치도 미리 담갔다가 발효시켜야 혀. 여자도 남자 맛을 아는 나이에 먹어야 맛있다 그말이라니께. 그게 겉절이와 숙성 김치의 차이여. 아따, 난 겉절이 풋내 나서 싫더만. 양념이 겉에만 묻어 있잖어. 그게 뭔 맛이라냐. 김치는 양념이 고루 배어야 깊은 맛이 나는 건디. 그리고 김치에 뭐 잔뜩 넣는 거 아녀. 김치맛은 간을 잘하고 숙성되는 타임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제. 젓갈이고 생선 대글빡이고 청각·부추·무 이런 거 잔뜩 넣는다고 맛있는 게 아니라고. 우리 집 김치 봐봐. 깔끔하잖아. 암것도 안 넣지만 물 자작하니 나오고 짜지도 싱겁지도 않잖여. 여자도 단순하고 깔끔한 여자가 맛이 좋아. 그래서 여자 머리가 꽉 찰수록 잠자리는 꽝이라니까. 대학 나온 여자 난 싫더라고. 살림 잘하고 애 잘 키우고 남편이 잘해 주면 좋다고 하는 그런 여자가 좋지. 여자는 밤에 요부가 돼야 혀. 요부가 뭔지 알아? 요 위의 부인.”

아저씨는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아저씨의 억지에 학생들은 ‘아, 어원이 그거였구나’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에 뭐 잔뜩 넣은 여자는 좋아도 막 좋다고 못 하잖아. 그놈의 체면 때문에. 좋으면 좋다고 하고 어떨 땐 지가 먼저 덤벼들고 그래야 좋지. 배운 것들은 좋다는 표현 잘 안 해. 지성에 기스난다고 생각하나 벼. 그런 여자가 뭐 맛있다냐, 뻣뻣하니. 그래서 난 내 마누라가 좋아.”

주인아주머니는 아저씨가 자신을 빗대서 하는 얘기가 익숙해서인지 들은 척도 안 했다. 대신 입방정 떠는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아저씨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다니다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 김치 맛은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양념 많이 들어간 걸 좋아하기도 하고 깔끔한 맛을 좋아하기도 해. 양념도 깊은 맛 내는 양념을 써야 좋은 거지 아무거나 넣는다고 맛있냐. 김치 담그는 사람이 비법을 알지 먹는 양반이 비법을 어떻게 안다고 지껄이냐.” 타박했다. “마누라 머릿속에 든 거 없어서 참 좋겠다, 이 양반아.”

식당 입구부터 술 냄새가 진동했다. 문밖까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퍼졌다. 제법 넓은 아름식당이 비좁아 보이긴 처음이었다. 낮부터 술판을 벌인 선배들은 신이 나 노랠 부르고 있었다. 승연·은영·기순이 들어서자 남자 선배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아졌다. 수십 명 선배들이 둘러앉은 술상 가운데 자리에 신학과 3학년 총학생회장이 도사처럼 앉아 있었다.

은영의 말에 의하면, 총학생회장은 신학과 출신이 늘 차지하곤 했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신학생들 성적이었다. 학력고사 성적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보수주의 성격이 강한 한국 개신교 풍토에서 진보주의 성향을 표방한 최초의 신학대라는 자부심은 부록이었다. 승연은 그것과 총학생회장이 신학과 출신이어야 하는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누가 되든 알 바 아니지만 진보 대학 맞아? 비닐 커튼으로 칸막이 경계선을 그은 옆자리에선 철학과 신입생 환영회가 열리고 있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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