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31] 연못을 장식하는 ‘잠자는 연꽃’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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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동안 수련 그리기에 몰두한 클로드 모네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0-07 14:35:45

▲ 수련꽃은 사흘 정도 피어 있는데 그동안 꽃잎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윤상구 사진작가

수련을 연꽃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수련은 수련목 수련과, 연꽃은 프로테아목 연꽃과 식물로 이 두 식물의 분류상 거리는 아주 멀다. 두 식물은 꽃과 잎의 모양은 물론 서식하는 모습도 전혀 다르다. 수련은 잎과 꽃이 수면에 붙어서 자라는데 연꽃은 꽃대와 잎이 물 밖으로 올라와 자라고 꽃도 물 표면과 떨어져 핀다.

한낮에 피어 저녁에 오므라드는 수련의 습성

▲ 수련과 연꽃은 꽃과 잎의 모양은 물론 서식하는 모습도 전혀 다르다. 윤상구 사진작가

수련의 ‘수’ 자는 ‘물 수(水)’ 자가 아니라 ‘잠잘 수(睡)’ 자이다. 수련꽃은 사흘 정도 피어 있는데 그동안 꽃잎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연꽃은 새벽에 만개하여 낮에 닫히거나 시드는 데 비해 수련은 한낮에 피기 시작하여 저녁에 오므라드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잠자는 연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수련을 보면 ‘인상주의의 아버지’ 클로드 모네가 곧바로 연상된다. 만년에 수련 연작 작업을 시작한 모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50여 점에 달하는 수련 그림을 남겨 ‘수련의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모네는 젊은 시절부터 밝은 야외 광선 묘사에 관심을 가졌고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나갔다. 1874년 모네는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출품된 작품들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이 전시에 참여한 신진 화가들은 살롱전의 전통 방식과는 다른, 과감하고 거친 화법의 그림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르아브르 항의 풍경을 담은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다. 대상의 형태가 명확하지 않고 지나가는 순간을 화폭에 담은 이 작품에서 ‘인상파’라는 용어가 생겨났는데 이는 모네의 작품을 비웃는 데서 만들어진 말이다. 하지만 모네는 아랑곳하지 않고 빛과 기후 조건에 따른 풍경 변화를 포착하는 자신의 화풍을 확립해 나갔다.

‘수련의 화가’라 불린 모네

모네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상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는 데 일생을 바쳤고 하나의 주제를 연작으로 그리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1877년 모네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파리 생라자르역 전경을 여덟 장의 화폭에 담았는데 이것이 연작 작업의 시작이었다. 그의 연작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수련 연작이다.

모네는 프랑스 지베르니에 농가와 작은 습지를 사들여 연못이 있는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는데 이 정원은 만년의 그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모네는 20여 년 동안 이 정원에서 수련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1909년에 열린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 중 절반은 수련이 핀 연못 그림이었는데 이 작품들은 큰 호평을 받았다.

1914년, 모네는 친구 조르주 클레망소의 권유로 대형 수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작품들을 그릴 수 있는 넓은 작업실을 손수 지었고 그곳에 틀어박혀 수련을 그리는 데 다시 10년을 보냈다.

필생의 걸작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모네는 점차 노쇠해졌고 특히 시력이 나빠진다는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1912년 백내장 진단을 받은 모네는 빛은 감지하지만 색이나 형태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1923년에 수술을 받았다.

아직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백내장 수술은 수정체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수정체가 없으면 사물을 볼 수는 있지만 심한 원시가 되고 빛의 굴절을 조절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백내장을 앓으면서도 계속된 ‘수련 연못’ 작업

백내장을 앓을 때 모네에게 세상은 붉은색과 노란색 계열로 흐릿하게 보였고, 수술 후에는 파란색과 보라색 계열로 흐릿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빛을 포착해 캔버스에 담아냈다. 모네는 “나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 주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붓으로 증명하고자 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이 시기에 ‘수련 연못’ 연작 여덟 점을 만들어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가 조국에 기증한 ‘수련 연못’ 여덟 점을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 전시된 그림 중 가장 큰 작품 ‘버드나무 두 그루(The Two Willows)’는 그 크기가 200x1700cm에 이른다. 가로로 길다란 그림 양쪽 끝에 각각 버드나무 한 그루씩 서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연못에는 수련이 가득 피어 있다.

모네의 대형 수련 그림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꽃이 아니라 물감 범벅이 보일 뿐이다. 그런데 뒤로 물러서서 보면 물에 떠 있는 아름다운 수련꽃과 잎들이 그 자태를 뽐낸다. 캔버스 앞에 바짝 서서 물감을 얹었을 텐데 멀리서 보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보일 것이라 어떻게 알았을까?

모네와 수련을 떠올리면 세상의 거의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이치들을 깨닫게 된다. 가까이서 봤을 때 보이지 않던 가치가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 같은 장면이라도 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 수많은 경험을 쌓으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모네가 현상 그 너머에 있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했겠는가? 결국 신념과 상상 이상의 노력 아니겠는가?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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