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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 법·제도를 통해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와 대조적으로 각종 규제가 첨단전략산업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도 정부의 지원 수준이 매우 미흡하다고 질타하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 강화가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경협이 7일 공개한 ‘주요국 첨단산업별 대표기업 지원정책 비교’ 보고서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중국·일본 등은 반도체와 이차전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 내고 있다. 이는 경제가 곧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마치 첨단산업의 대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을 모르는 고립된 섬처럼 너무나 한가롭게 지역이기주의를 고집하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달려가야 할 바쁜 걸음을 막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경우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해 주는 법안에 서명한 것은 환경영향 평가를 이유로 공장 건설이 수개월~수년간 지연되면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가 둔화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반도체는) 국가안보 문제로서 긴급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영향평가 면제에 대한 환경단체 등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은 환경보다는 국가안보에 우선 순위를 둘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미국 의회도 적극 지원했다.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환경정책법(NEPA)에 서명함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과정에서 통상 1년 정도 걸리던 환경 심사가 면제된다. 미 상원도 지난해 말 이 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최근 하원에서도 통과됐다.
우리나라 상황을 살펴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진행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은 600조 원이라는 엄청난 투자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면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필요한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현재로서는 최대 난제로 꼽힌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필요로 하는 전력은 총 16GW에 달하는데 이는 수도권 전체의 최대 전력수요 40GW의 4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그런데 송배전망 건설 지연과 한전 재정 악화 등으로 전력인프라 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전자파 발생을 이유로 한국전력의 변전소 옥내와 및 증설 사업의 건축 허가를 불허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어 논란을 일으켰다. 인근 주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경기도 하남시가 그 일례다. 이는 국가안보와 미래가 달린 거국적 사안에 대해 편협한 지역이기주의를 발동한 처사로 지적된다.
하남시뿐 아니다. 용인 반도체 산업 단지에 화천댐 물을 공급하면 물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강원도 역시 편협한 지역이기주의라는 손가락질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유들로 첨단산업 공장을 짓고도 전기나 물이 없어 가동을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은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요국들은 반도체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물·전기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반도체특별법·국가전력망확충특별법 등을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국가전략산업 발전의 걸림돌을 치워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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