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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책읽는고양이)는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면서 문단에 데뷔한 일본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1931~ )의 에세이다.
그가 이 책을 처음 썼을 때가 나이 마흔이었다. 그리고 51세와 65세 때 수정본이 나왔고 93세가 되는 올해 한국 출간 20년 기념으로 국내에서 재출간됐다. 50년 넘게 일본과 한국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드문 책이다.
이 책은 늙음을 경계하는 글이지만 세대가 바뀌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근본적인 고뇌를 다루고 있다.
차선도 담담히 선택하는 나이 마흔
소노 작가는 자신이 젊은 시절 얼마나 속 좁고 철없는 인간이었는지는 고백하며 비로소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게 마흔이라고 밝힌다.
“나는 복잡하게 몇 겹으로 가리어진 사물의 내면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은 사물의 배후에 있는 무한한 깊이와 숨겨진 부분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점점 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는 것일 뿐이었다.”
그는 40세에 이르러 더 많이 볼 수 있게 된 만큼 도저히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다는 절망감도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최선이 아닌 차선이나 혹은 그다음의 길도 담담히 선택하게 되는 나이가 40세라는 것이다. 이보다 마흔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본 일이 없다.
한없이 행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
“인간은 참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부여받으면 받을수록 인간의 정신은 또 다른 불만에 시달리게 된다. 하루 세 번의 식사를 제때 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이 불만의 명확한 목표가 되지만 세 번의 식사가 제대로 되어도 그 식사의 질 또한 커다란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고독해도 괴롭지만 집단에 속해 있어도 증오심을 갖게 된다.”
소노 작가에 의하면 특히 노년에는 자기중심적이기 쉽다고 한다. 자기와 관계없는 바깥일에는 흥미를 잃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인간 공통의 운명이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나의 불행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는 사회를 잘 살펴보면 그 어떤 일에도 한도는 없다는 생각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남 보기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도의 딱한 생활을 하면서도 제법 즐겁게 지내는 사람에 놀라고, 저렇게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무엇이 저렇게 불행할까 싶어 놀란다.”
불행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듯 행복에도 한도가 없다. 한없이 행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소노 작가는 타인의 마음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헤아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받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려라
작가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자립심이다. 나이가 들면 남이 해 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남이 뭔가를 해 주길 바라는 것은 유아의 특징이면서 노년의 특징이다.
“아주 적은 돈이나 물건·시중에 이르기까지 노인들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이런 심리 상태가 모든 면에서 매우 심해지면 그것은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로 보아도 좋다. 옛날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태도란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손에 넣고, 그다음엔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소노 작가는 ‘주겠지’ 하고 기대하는 정신 상태는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사회에 참여할 자격을 잃은 상태라고 단언한다. 성숙한 인간은 자신을 위해 스스로 일함과 동시에 약한 자에게 자기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듯 말이다.
그는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를 인용해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 이상으로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노인이 되어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면 그건 행 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로 보아도 좋다는 것이다.
몸이 말을 안 듣게 되더라도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옛날에 몸이 불편한 노파가 매일 밤 도로로 난 창가에 등불을 놓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등불은 그곳을 지나는 여행자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은 물론 남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몸이라고 해도 타인을 위해 살 수는 있다. 인간의 위엄은 남이 찾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며 행복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젊은이를 위해 뒤로 물러나라
소노 작가는 또 하나 명심할 사항으로 ‘젊음을 시기하지 말 것’을 든다. 이 부분에서 그는 훌륭했던 선배들을 추억한다.
“그분들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날 정도로 유치한 내 행동을 묵인하고 감싸며 늘 지켜주었다. 그리고 넌지시 나를 늘 앞에 내세우려 했다. 내가 단지 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게 했으며 조금이라도 더 재능을(그러한 것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발전시킬 소지를 만들어주려 했다.”
그런 일일수록 내색하지 않고 했기 때문에 소노 작가는 뒤늦게야 그 일을 알게 되었다.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를 놓친 그가 그분들에게 은혜를 갚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노인이 되어서도 매사에 자신이 전면에 나서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진취적이며 훌륭한 생활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답지 못하다. 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이다. 어른다움이란 대국적 견지에서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서는 일이다.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며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누구든지 한 번은 젊고 한 번은 늙는다. 이것은 공평한 흐름이다. 이것을 시기하는 것은 탐욕이다.”
가족에게 아무 말이나 하지 마라
소노 작가는 가족 간에 예의를 지킬 것을 당부한다. 해도 좋을 말과 해선 안 될 말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응석이라는 것이다. 가정은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는 곳이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태연하게 해도 되는 곳은 아니다.
타인이 참고 있는 것을 대우받는 것으로 착각해서 기분 나쁜 일을 마구 털어놓거나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면 곤란하다.
오히려 가정은 부부 사이든 부모·자식 간이든 배려와 위로가 필요한 공간이다. 자식은 아무리 바빠도 정기적으로 부모를 찾아뵈어야 하며 부모는 집을 깨끗이 치워놓고 옷도 깔끔한 것으로 갈아입고 즐거운 화제를 생각해 놓고 자식을 기다려야 한다.
또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자식을 맞이해야 한다. “시간 내느라 참 힘들었지?”라는 인사를 건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모처럼 가족이 모인 시간을 푸념을 늘어놓는다거나 불평을 토로하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소노 작가는 당부한다. 배려와 위로가 있는 가족은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결코 냉랭한 관계가 되지 않는다는 게 소노 작가의 통찰이다.
그 밖에 책에는 △다른 사람의 생활을 왈가왈부하지 말 것 △즐거움을 위해 돈을 아끼지 말 것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 △러시아워 때 이동하지 말 것 △짐을 들고 다니지 말 것 △자주 버릴 것 △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할 것 △화장실 사용 시 문을 꼭 잠글 것 등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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