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DJ, 수상 가능성 타진 위해 직접 노르웨이로
1993년에 김대중(DJ)은 방문학자 자격으로 영국 런던의 케임브리지 대학에 반년간 머물렀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직접 노르웨이를 방문했다.
아무도 그가 런던에서 은밀히 움직이고 있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정계를 은퇴한 마당이니 훨씬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해 그는 또다시 최종 명단에 들었다. 하지만 그해에 DJ에게는 운이 따라 주질 않았다. 갑자기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였다.
그해의 국제 뉴스는 온통 남아공 소식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결국 그해 노벨상은 인종차별을 종식시키고 남아공에 민주주의의 초석을 깐 공로로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과 프레드릭 디 클라크 남아공 대통령에게 공동으로 돌아갔다. DJ로서는 또다시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이듬해를 기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태재단과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설립
1993년 6월, DJ는 서울로 돌아왔다. 1993년 7월14일, 그가 반년 전의 은퇴선언을 뒤집고 정계 복귀를 전격 선언한 것이다. 정치권이 발칵 뒤집어졌다. ‘영일만 왕소금’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정면으로 반발했다. 이부영을 비롯한 야권 인사들도 “권력에 눈먼 사람”이라며 맹비난했다.
DJ는 로키(low-key)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한편 정치권 재진입을 위한 발판으로 아태평화재단(아태재단)을 만들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실은 정계 복귀를 위한 교두보였다.
그는 또한 아태재단 산하에 아태민주지도자회의(FDLAP)도 만들었다. 이 단체는 민주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맞춤 도구였다. 아시아 지도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거물들과 연대함으로써 자신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속셈이었다.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사무총장은 경희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김상우 외교특보에게 맡겼다. 김상우는 경상도 출신에 영어가 가능하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다. 2년 후에는 김상우에게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했다. 국회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DJ는 이 두 단체를 통해 여러 명목의 국제 세미나와 회의를 자주 열었다. 자신을 아시아와 세계의 민주 지도자로 포장하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들이었다. 이러한 사업에는 특히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의 보이지 않는 후원이 있었다.
DJ의 집안과 경희대학교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두 아들이 이 학교 졸업생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한때 DJ의 최측근이었던 양준용 씨는 “고교 시절 김홍일은 공부와 담을 쌓은 문제아였는데, 내가 친척인 경희대 관계자를 통해 뒷문으로 입학시켜 줬다”고 증언했다.
1994년, 노벨상에 대한 DJ의 기대는 한층 더 커졌다. 그 전해의 수상 결과는 그의 1994년의 수상 가능성을 더 높여 주는 것으로 보였다. 1994년 1월 말, 노벨평화상 추천서가 마감되기 직전 김대중은 또다시 10일 일정으로 직접 북유럽 3개국을 순방했다. 그가 북구 여행에서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고 노벨상 관계자를 만난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일 것이다.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과의 공개 논쟁
그해에 DJ는 아시아 민주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구축하기 위해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를 이용했다. 그 잡지를 통해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과 공개 논쟁을 벌인 것이다.
그해 봄, 리콴유 수상은 “오랜 유교 문화의 전통과 권위주의 통치로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은 동아시아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해 가을, DJ는 “서구 민주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통하는 만큼 아시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다분히 노벨위원회를 겨냥한 전략적인 코멘트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해 역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또다시 넘기 어려운 강력한 경쟁자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1994년 노벨평화상은 중동의 평화 정착에 공을 세운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와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Shimon Peres)와 이샤크 라빈(Yitshak Rabin) 세 사람에게 공동으로 돌아갔다. 아마 빌 클린턴 미 대통령도 공동 수상 대상에 고려는 됐을 것이다.
해마다 추천서를 써 준 사람들
이즈음 해마다 DJ를 위해 노벨상 추천서를 써 준 사람 가운데는 제프리 톰슨(Jeffery Thoomson) 뉴질랜드 국민당 당수‧개리 우다드(Garry Woodad) 호주 멜버른대 교수‧톰 포글리에타(Tom Foglietta) 미연방 하원 의원‧윌리엄 커(William Kerr) 가톨릭계 대학 총장‧조지 토튼(George Totten) 남가주대 교수 등이 있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보수 정치인들의 추천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주로 교수들에게 추천장을 쓰게 한 것이다.
DJ 노벨상 수상 민주당 차원에서 추진
1995년 들어서는 아예 민주당 차원에서 DJ의 노벨평화상 추천 작업을 벌였다. 정당 차원에서 후보를 추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후보 추천서 작업은 민주당 현직 의원이었던 남궁진 아태평화재단 이사가 도맡았다. 그해부터 DJ의 추천 공적서에는 아태민주지도자회의 결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민주주의 신장과 평화 증진에 기여한 그의 공로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해에는 뜻밖에도 아주 가까운 데서 경쟁자를 만났다. 평생의 라이벌이자 현직 대통령이기도 한 김영삼(YS) 역시 노벨상을 향한 꿈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에서 DJ의 후보 추천 작업을 하던 관계자에 의하면 이때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한다.
뜻밖의 경쟁자
“1995년 경이었어요. 노르웨이를 방문한 길에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인 룬데스타드 교수를 만났더니 누구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DJ도 부패하지는 않았는지, 재벌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지는 않았는지를 묻는 거예요. 근거 없는 음해성 루머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웠어요.”
아마도 익명의 이 관계자는 이영작 박사로 보인다. 김영삼정부가 DJ의 노벨상 수상을 방해했다는 의혹은 앞서 설명한 대로이다. 노르웨이 주재 한국 대사관를 통해 DJ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작업이 이뤄졌다. 당시 노르웨이 대사는 권영민이었고, 국정원 파견관은 최종흡이었다. 이들은 YS의 노벨상 작업을 위해 현지에서 발벗고 뛰었다. 그 과정에서 DJ의 노벨상 수상 저지를 위해 활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1998년 초, 권영민은 김대중정부의 의전수석으로 발탁됐다가 이때의 행적 때문에 낙마했다. 말레이시아 참사로 나가 있던 최종흡도 소환 명령을 받고 감찰실 조사를 받은 끝에 국정원에서 옷을 벗었다.
이전투구 속 노벨상은 엉뚱한 데로
이렇게 YS와 DJ가 집안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이 1995년 노벨평화상은 듣도 보도 못한 엉뚱한 데로 가 버렸다. 그해의 노벨평화상은 핵무기 감축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은 조지프 로트블랫(Joseph Rotblat)과 과학과 국제 정세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s on Science and World Affairs)에 주어졌다.
조지프 로트블랫은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나 반핵운동가로 변신한 폴란드 태생의 영국 핵물리학자로 핵무기 폐기 운동에 앞장서 온 인물이고, 퍼그워쉬 회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꿈꾸는 단체였다. 마땅한 후보를 찾을 수 없는 해에는 핵무기 관련 단체나 인물에게 상을 주는 것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오랜 전통이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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