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225] 산실과 무덤은 하나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용서, 시작의 열쇠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03 06:20:06

-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연어는 자신이 가려는 곳이 산실인 동시에 무덤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연어는 계속 물살을 거슬러 오를 것인지, 뒤돌아갈 것인지 갈등했습니다. 이곳까지 올라온 이유가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본능 때문인지, 무리에서 이탈될까 두려웠기 때문인지 처음으로 의심해 보는 것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다는 데 생각이 닿았을 것입니다. 어떤 연어는 이미 등 돌려 물결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헤엄치고 있지 않을까? 바다를 떠나지 않고 애초에 산란의 본능을 거스른 떠돌이 연어에 대한 전설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생각하는 연어는 물살을 거스르며 운명에 순응할 것인지, 물살에 순응하며 운명을 거스를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을 의심하며 불안했지만, 떼를 지어 강을 거스르는 무리보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깊이 바다를 헤엄치며 죽음을 유보했을 연어를 생각합니다. 바다로 돌아가는 길, 포식자에게 한입에 삼켜진다 해도, 하천을 거슬러 오르다 인간의 낚싯대나 그물에 걸려 죽는 무리가 많다는 소문이 그를 위로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다 죽을 것인가. 연어는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바윗돌을 스치며 쏟아지는 하천의 물살은 거칠고, 연어는 조금도 전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연어를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연어가 떠나온 바다, 그러나 바다로 되돌아가고 있을지 모르는 단 하나의 연어를 찾아, 나는 바다와 강의 합류 지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여름의 끝, 아직 저녁 햇살이 눈 부셨습니다.

에바의 노트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걸까. ‘당신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메일을 받았을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메일을 무시하고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야 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여러 번 그 순간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인생이 우연과 돌발의 연속일지라도 지금이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의 결과였다. 똑같은 노선을 매일 반복해서 달리는 지하철처럼, 아무리 되풀이한다 해도 전혀 다른 내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에바의 노트를 손에 쥐었다. 유리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랐다. 유리는 병원으로 옮겨지고 나서 두 시간 뒤 숨을 거두었다.

“요, 용서… 나…….”

그녀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나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건 유리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혹시 꿈꾸기를 단념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용서해요.’

그러나 애써 기억에서 지워 버렸던 어머니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어렴풋이 나는 어머니의 메시지가 아버지와 내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런데 비로소 그 짧은 말 속에 감춰진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누르고서라도,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먼저 용서해야 했으리라.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