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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그들(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주민을 이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그들(가자 주민)이 새로운 아름다운 땅을 가져야 한다. 또한 그 땅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도록 누군가 돈을 대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백악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선 가자지구 수도·전기 등 모든 인프라가 파괴된 상태임을 들며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 거긴 이제 철거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적절한 부지를 찾아 돈을 들여 괜찮은 장소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수십년간 죽음을 경험한 가자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으리라 생각한다”고 하자 미국이 자금을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트럼프는 “돈 댈 사람이 그 지역(중동)에 충분하다”며 요르단·이집트 등의 이주지역 조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요르단과 이집트가 이주민 수용을 반대한다는 지적엔 “베네수엘라도 미국에서 추방된 자국민 수용을 거부하다 결국 받아들였다”며 자신의 압박술을 환기시켰다.
트럼프는 또 “그동안 대안이 없었을 뿐이다. 더 우월한 선택지가 있다면 주민들은 기쁘게 가자를 떠날 것”이라며 ‘강제 이주’ 시각도 받아쳤다. 요르단·이집트·사우디·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 5개국 외무장관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입장을 밝혔다는 로이터통신 보도가 나왔으나 트럼프는 이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어 보인다. 이날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팔레스타인사람들 거취를 묻는 질문에 “역내 몇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에 기대하고 있다. 이 문제를 집단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트럼프의 외교 노력을 전했다. 트럼프는 내주 이 사안 논의차 방미할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만날 예정이며, 1일 이미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한다.
이런 흐름 배경엔 이른바 ‘아브라함협정’에 집약된 트럼프 특유의 구상이 있다. 중동문제 해결에 필수불가결한 이스라엘과 아랍의 원수관계를 풀기 위한 행보에 이들 공통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대교·이슬람교가 공유하는 구약성서 속 인물이자 늦둥이 외동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계시에 순종해 ‘믿음의 조상’으로 통한다. 다만 희생물이 될 뻔한 아들이 유대교·기독교에선 본처가 낳은 ‘이삭’, 이슬람 쿠란에선 이집트 여종 소생이자 훗날 아랍인의 조상이 된 ‘이스마엘’로 보는 차이가 있다.
팔레스타인이란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중해 연안의 땅 이름이다. 네 차례 중동전쟁을 통해 이스라엘로 편입된 이 지역 내 아랍계 주민들이 유대인과의 갈등 속에 정체성을 키우면서 팔레스타인인(2023년 기준 516만6000명)으로 불리게 됐을 뿐 별개의 국가·민족으로 존재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가자·서안 지구에 분리된 채 살아 온 주민들이 종교자유를 허용하는 현대국가 이스라엘에 통합되거나 주변 아랍국의 일부가 되지 못했으며 건국 역량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유대인들이 첨단의 세상을 경험하고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와 나라를 세울 때 현지 아랍계 주민들은 전근대적 ‘부족·종족’ 상태였다. 이 시차가 결국 비극적 대립으로 이어진 측면이 크다. 20세기 현대인이 18세기 사람들과 함께 살기 어려운 이치와 비슷하다.
한편 미국이 끝까지 포기 못 할 우방국 1순위가 이스라엘이라는 역사적 이해도 필요하다. 양국 관계란 한미동맹 만큼이나 특수하다. 이스라엘은 현대적 법치시스템을 가진 사실상 중동지역 유일의 국가이며,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대인의 해방자로 자리매김한 미국, 그리고 미국의 초강대국화에 유대인 망명자들과 그 후예의 공헌이 크다. 미국을 움직이는 힘이 유대인의 재력과 정치력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 기반한 아브라함협정에 근거해 2023년 말까지 실현될 예정이던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및 상호 대사관 설치가 그 해 11월 하마스기습에 따른 전쟁으로 갑자기 무산됐다.
트럼프의 중동 구상이란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격인 사우디아라비아과 이스라엘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해 시간을 두고 중동을 현대국가 중심으로 재편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발상이 가능해진 배경엔 우선 미국의 에너지 독립선언이 있다. 수출하지 않고 쓸 경우 500년치 매장량으로 추산되는 미국 땅 셰일이 채산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도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시 부족국가 수준이던 사우디왕가를 안보 약속을 담보로 확고하게 끌어안은 것도 석유를 위해서였다.
환경을 내세워 물가상승을 부채질한 조 바이든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2024 대선에서 트럼프가 셰일 채굴을 적극 외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중동 석유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미국의 해당 지역 개입 여지를 줄여 나가는 게 트럼프의 전략이다. 그러려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우호관계, 신정(神政) 이슬람공화국 이란 힘빼기가 필수다. 가자전쟁에서 하마스를 도운 헤즈볼라(레바논 무장정파) 배후에 시아파 종주국이자 사우디와 앙숙인 이란이 있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난달 19일부터 교전을 멈추고 생존 인질 33명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1904명 교환을 골자로 한 6주간의 휴전 1단계에 들어갔다. 휴전 2단계에서 모든 인질 송환과 이스라엘군 완전 철수를 협상, 3단계에선 영구 휴전과 가자지구 재건 등이 논의된다. 이런 가운데 제시된 가자주민 이주안(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국가로 평화 공존한다는 ‘두 국가 해법’의 폐기나 다름 없다. 국내외 주요 언론이 일제히 ‘트럼프 야욕의 표현’인양 보도하고 있지만 수십년 이래 ‘두 국가 해법’의 한계가 증명된 마당에 긍정적으로 검토할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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