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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멍게처럼 살 수 있다면?', '멍게의 변신은 고착 생활 적응·에너지 효율성·진화적 요인과 연...'))
“이 멍게·해삼·말미잘아!” 어린 시절 친구를 놀릴 때 아이들이 흔히 썼던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그다지 화를 내지는 않는다. 고작해야 “내가 왜 멍게·해삼·말미잘이냐?”고 푸념하는 정도이다. 이게 욕은 아니니까 피식 웃는 것으로 상황이 끝나기도 한다. ‘그 정도밖에 생각을 못 하냐’ 또는 ‘너 정말 멍청하구나’ 하는 핀잔이니까 그렇다. 생물 시간에 하등동물의 본보기로 멍게·해삼·말미잘을 배웠고, 인간 입장에서 이들은 한참 열등한 존재이다 보니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말로 기억한다.
하지만 멍게는 놀라운 동물이다. 멍게는 해양 피낭류로 척삭동물문에 속하며, 우리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과도 먼 친척 관계이다. 유생 단계에서는 척삭 즉 원시적인 척추 구조를 가지는데 성체가 되면 사라진다. 진화 과정에서 움직임을 포기하고 생존에 최적화하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유생 멍게는 빛과 중력을 감지하며 환경을 잘 탐색한다. 척삭과 단순한 신경계로 충돌을 피하여 올챙이처럼 요리조리 헤엄쳐 다닌다. 이때는 뇌가 매우 중요하다. 정보를 인지하여 판단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 멍게는 하루 이틀 정도 돌아다니다가 적당한 곳을 찾으면 고착한다. 이때 뇌·척삭·꼬리 등이 없어진다. 이동할 때는 긴요하지만 이제는 소용없기 때문이다. 멍게가 신경계를 없애는 이 과정은 인간의 신경계 퇴화 및 재생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주어 퇴행성 신경질환인 알츠하이머·파킨슨병의 원인과 치료에 기여한다.
마치 식물처럼 한 곳에 자리 잡아 정착한 후 ‘무뇌’의 이 신기한 동물은 해수를 빨아들여 플랑크톤과 유기물을 걸러 먹는 여과섭식을 한다. 흡입공(입)·아가미 틈·배출공(항문)을 통해 물을 통과시켜 영양을 섭취한다. 단순한 신경망을 가진 멍게가 최소한의 에너지로 생존을 유지하는 이러한 방식은 인공지능(AI)의 발달에도 영감을 준다. 멍게의 세상 편한 먹이 흡입 방식은 해양 생태계에서 물 정화 역할도 해 준다. ‘나 편하고 남 좋은’ 삶을 사는 멍게가 부러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멍게의 생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한 몸에 암수 생식기관을 모두 가진 자웅동체의 성체 멍게는 자가 수정할 수도, 다른 개체와 교배할 수도 있다. 그저 정자와 난자를 여유롭게 물속에 뿌려두면 된다. 멍게의 여유만만한 삶은 이게 다가 아니다. 어떤 종은 출아법(budding)으로 번식한다. 무성생식이다. 성체 일부에서 돌기가 나와 자란 후 분리되는 방식이다. 이쯤 되면 번식의 마법사 아닌가?
단독생활이냐 군체생활이냐를 고민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멍게는 이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멍게 중 일부 종은 군체를 이루며 사는데, 군체성 멍게는 개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멍게는 식물에게 한 수 배운 동물이라고 하겠다. 뇌 없이 정착생활을 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물론 멍게는 식물과 달리 광합성을 할 수 없다.
인간은 고등동물이라 멍게보다 복잡한 생의 주기를 갖는다. 그 과정에서 어떤 기관은 급속히 발달하여 정교해지고 다른 기관은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영유아의 경우 언어 기능이 매우 우수하여 무서운 속도로 언어를 습득하지만 민감기인 만 12세경에는 이 기능이 퇴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민감기가 2차 성징이 발달하여 생식이 가능해지는 때라는 점이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언어로 구애하는 인간의 짝짓기 특성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들면 신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여러 기능이 퇴화된다. 귀가 어두워지고 시력도 떨어진다. 순발력과 기억력도 감퇴한다. 왜 그럴까? 멍게식으로 말하면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이런 기능이 생존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자연이 노년에게 삶의 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나이 들면서 좋아지는 것도 있다. 종합적인 판단력 그리고 경험이 돌돌 뭉친 지혜이다. 진화의 정점에 선 인류에게 노화와 장수에 관련된 빛나는 결과들이 속속 드러난다. 하지만 인간은 아주 복잡한 유전자 지도를 가진 만큼 장수와 노화의 비밀도 겹겹이 싸여있다. 그래서 단순한 구조의 멍게가 새삼 놀랍다.
멍게의 변신은 고착 생활 적응·에너지 효율성·진화적 요인과 연결된다. 멍게의 신경계 연구는 척추동물의 기원·신경 재생·AI 연구 등에 다양하게 기여한다. 특히 ‘뇌를 없애는’ 전략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멍게처럼 생의 순간순간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무한한 변태와 변신을 지속하면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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