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그룹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을 편입하면서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코빗의 원화시장 점유율은 1% 안팎이지만 미래에셋이 주목한 것은 현재의 거래 규모가 아니다. 실물연계자산(RWA) 토큰화와 토큰증권(STO), 스테이블코인 등 제도권 디지털자산 시장이 본격화될 미래를 대비해 핵심 금융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그룹 비금융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은 지난달 22일 코빗 지분 91.7%를 확보하며 대주주 변경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어 같은 달 24일 지분 5.42%를 추가로 취득하면서 보유 지분율을 97.15%까지 끌어올렸다. 코빗은 사명을 ‘Digital X’로 변경하고 미래에셋의 디지털자산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다만 법인명 변경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그룹 계열사가 국내 원화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영권을 확보한 것은 처음이다.
대주주 변경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겸 글로벌전략가(GSO)는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Digital X를 ‘미래에셋 3.0’을 구현할 핵심축으로 제시하며 전통자산과 디지털자산을 연결하는 새로운 투자 플랫폼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번 인수는 단순한 거래소 인수가 아니라 박 회장이 지난 30년간 이어온 ‘미래 시장 선점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다. 해외투자와 글로벌 금융회사 인수에 이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자산 시대를 겨냥해 새로운 투자 인프라를 확보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400억 원…미래에셋이 산 것은 ‘거래대금’ 아닌 진입권
코빗은 2013년 문을 연 국내 최초 가상자산 거래소다. 현재 국내 원화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 빗썸, 코인원에 이어 4위 사업자로, 원화 거래시장 점유율은 1% 안팎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코빗의 시장점유율과 유동성 등을 고려해 이번 기업결합이 거래소나 증권·자산운용 시장의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래에셋이 코빗을 품은 배경에는 디지털자산 제도화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는 디지털자산기본법과 STO 제도화,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금융권도 디지털자산을 기존 금융서비스와 결합하기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경쟁력이 단순한 거래소 운영이 아니라 증권과 자산운용, 결제, 투자상품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에서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에셋이 주목한 것도 현재의 거래 규모가 아니다. 코빗의 핵심 가치는 원화 입출금이 가능한 거래소 인프라와 고객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등 제도권 사업 기반에 있다. 국내에서 원화 거래를 지원하는 거래소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5곳뿐으로, 신규 사업자가 동일한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미래에셋은 코빗 인수를 통해 디지털자산 제도화가 본격화될 경우 즉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인수 주체가 미래에셋증권이 아닌 비금융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이라는 점도 규제 환경을 고려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거래소 직접 보유에 대한 규제 불확실성을 감안해 비금융 계열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분석이다.
미래에셋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은 단순한 가상자산 거래소 운영을 넘어선다. 박현주 회장은 RWA 토큰화와 STO, 스테이블코인, 전통자산과 디지털자산이 결합한 투자 생태계를 직접 제시했다. 미래에셋의 상품 기획·운용 역량과 코빗의 거래 인프라를 결합해 자산의 발행부터 유통, 거래, 보관까지 아우르는 디지털 투자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외투자 DNA, 디지털자산으로 이어지다
미래에셋의 코빗 인수는 박현주 회장의 경영 철학과 맞닿아 있다. 박 회장은 현재 시장보다 앞으로 성장할 산업을 먼저 보고 투자하는 전략을 반복해 왔다. 1997년 미래에셋 설립 이후 장기투자와 글로벌 분산투자를 앞세워 해외투자를 대중화했고, 2016년 대우증권을 인수해 국내 최대 자기자본 증권사로 도약했다. 이후 미국과 홍콩, 영국, 인도, 베트남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 모델을 새롭게 썼다.
현재 미래에셋증권은 11개 지역에서 24개 해외법인과 3개 사무소를 운영하며 글로벌 브로커리지와 투자은행(IB), 세일즈앤트레이딩(S&T), 자산운용 등을 현지화했다. 해외사업도 단순한 거점 확대를 넘어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1분기 해외법인 세전이익은 2432억 원으로 분기 기준 최대를 기록했고, 지난해 해외법인 세전이익도 약 5000억 원으로 전체 세전이익의 약 24%를 차지했다.
미래에셋은 이미 글로벌 ETF와 해외투자 플랫폼을 구축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자산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미국 ETF 운용사 글로벌엑스(Global X)를 비롯한 글로벌 운용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으며, 디지털자산도 기존 글로벌 투자 플랫폼과 연계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단순히 거래소 하나를 운영하는 차원을 넘어 해외 투자상품과 디지털자산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결하는 미래 금융 생태계를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Digital X, 거래소가 아닌 미래에셋 3.0의 플랫폼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코빗 인수는 단순히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박현주 회장이 제시한 ‘미래에셋 3.0’의 핵심은 전통금융과 디지털자산을 하나의 투자 생태계로 연결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래에셋증권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채권을 발행하는 등 토큰화 금융을 준비해 왔다”며 “코빗은 향후 이러한 디지털자산과 고객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도가 정비되면 RWA 토큰화와 STO, 스테이블코인, 가상자산 ETF 등을 하나의 투자 생태계로 연결하는 사업모델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이 Digital X를 ‘지능형 투자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거래 기능을 넘어 투자정보와 리서치, AI 기반 자산관리까지 결합해 고객에게 새로운 투자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이 축적한 증권·운용·연금 사업 역량과 코빗의 디지털자산 인프라가 결합하면 전통금융과 블록체인 금융의 경계도 점차 허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금융상품과 가상자산의 연계는 아직 규제 정비가 필요한 분야이며, 가상자산 2단계 입법과 STO 법제화,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범위가 구체화돼야 사업모델도 본격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미래에셋이 이번 인수를 통해 확보한 것은 국내 4위 가상자산 거래소의 점유율이 아니라 디지털자산 시대의 핵심 인프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투자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던 박현주 회장이 이번에는 Digital X를 통해 전통금융과 디지털자산을 연결하는 글로벌 플랫폼 구축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금융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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