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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의 핵폭풍으로 등장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진실공방이 뜨겁다. 특별한 설명도 없이 이름과 금액만 적힌 이 리스트의 진실을 놓고 당사자들은 펄쩍 뛰면서 사실관계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즉각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수사에 들어갔지만 얼마나 진실을 밝혀낼지는 미지수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는 속담처럼 정작 리스트를 남기고 홀연히 떠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신의 메모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 해 줄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결국 진실공방은 김무성 대표의 공언대로 법리가 아닌 정치사안으로 빠질 경우 오리무중에 빠질 공산이 커졌고, 박근혜 정부가 작심하고 뽑아 든 자원외교 수사도 흐지부지될 우려가 높아졌다.
성완종 파문의 키워드는 이제 현 정권의 전방위 사정칼날로 모아진다. 이완구 총리의 취임 이후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이를 주도하는 청와대는 물론 이른바 친박계 가슴들에 ‘성완종 폭탄’이 터지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성완종 리스트 전면에 등장한 대통령 최측근인 청와대 1·2·3대 전·현직 비서실장의 이름은 그야말로 예상치 못했던 ‘정치적 포승줄’에 다름 아니다.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진실여부를 떠나 당분간 사지를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검찰의 더 무서울 칼날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 가능성이 짙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전직 비서실장들의 돈 받은 혐의 시점인 2006~2007년 기간은 정치자금법 공소시효 5년이 지났다고 해도 특가법상 뇌물죄 공소시효 10년은 남아있는 탓이다. 나머지 리스트의 사람들 공소시효는 말할 것도 없이 검찰이 얼마든지 손댈 수 있는 그물망에 들어갔다. 성완종 전 회장의 자살에 대해 이심전심 동정을 갖고 있는 국민감정을 생각한다면 리스트에 오른 권력가들에 대해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자원외교 수사 지휘자들이 수면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물론 검찰은 현재 자원외교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선을 긋고는 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본격화되면 상황은 반전될 공산이 크다. ‘수사 결재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들이 치명적 총상을 입으면 대통령에게도 그 유탄이 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야당은 2차 녹취록 미공개 상황에서 자신들 조차 불안에 떨면서 대통령 후보 경선자금 및 대선자금 수사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자원외교 수사 총대를 메고 있는 이완구 총리까지 거명된 상황에서 그가 한 발짝 물러나게 되면 ‘대통령의 칼날’을 움직이는 수족들이 일거에 묶이게 된다. 이에 이번 성의종 파문이 전 정권 세력들의 대대적 역공세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실감난다.
사실 이번 자원외교 수사는 누가 봐도 현 정권의 전 정권에 대한 보복성 사정바람으로 비춰졌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대통령과 국무총리 개인의 보복전이 아니냐는 후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가, 재계, 관가 등에는 이른바 실세라고 하는 전 정권의 막강 파워맨들이 건재하고 있기에 우려감이 증폭됐다. 결국 전·현 정권 간 치열한 혈투가 맞는다면 성완종 전 회장은 그 틈바구니에서 무차별 희생된 기업인이다.
성 전 회장이 비록 권력형 줄타기를 통해 오늘의 기업을 일으킨 부분이 있다고 하지만 한국의 성공한 기업들 거의 대부분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이른바 ‘악마의 거래 조건’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일이다. 오죽했으면 그는 자살하기 하루 전 MB맨이 아니라고 목 놓아 울며 기자회견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사력을 다해 도왔다고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해 온 비밀스러운 정치적 줄타기를 대통령에게 보채듯 협박하듯 공개 폭로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아이처럼 보이는 기자회견’이었다. 국민들은 이런 기자회견을 보고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자살 이후 국민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오히려 동점어린 감정을 갖게 됐다.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성 전 회장은 불과 13세의 나이에 계모의 폭력을 피해 모친과 동생을 찾아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그는 남의 집 헛간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거쳐할 곳이 없는 가난 속에서 넝마주이, 신문배달,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린 소년가장으로 살았다. 그런 고생이 그에게 사업DNA를 갖게 해 주었고, 불과 1000원의 기적으로 오늘의 경남기업을 일구게 했다.
속된말로 성 전 회장은 사업을 시작할 당시 ‘백도 돈도 연고도 없는 가장 밑바닥 외로운 빈털터리’였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친분을 만드는 길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알몸뚱이로 이 나라의 권력세도가들을 만나며 권력 사다리를 탔다. 그가 “모든 일은 인간관계로 풀수 있다”는 철학을 가졌던 것도 결국 이런 척박한 배경이 작용했다.
하지만 막판에 그의 구명로비는 정말 집요했지만 오히려 집요하게 통하지 않았다.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사람들의 공개 항변을 들어 보면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전화를 들고 깊은 늪에 빠져 목만 내놓은 사람처럼 허우적 거리며 ‘살려 달라’고 외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자살과 함께 남긴 두 대의 ‘핸드폰 베일’을 검찰이 반드시 수사해야 할 이유다.
물론 성 전 회장은 정상적이지 못한 권력 줄타기로 사업을 일으킨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으면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었던 자신의 곤궁했던 처지와 가족생계를 책임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황 또한 짐짓 오버랩 된다. 나아가 단돈 1000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힘을 가진 사람 옆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듯싶다. 이후 실제로 성 전회장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의 말처럼 ‘권력주변’을 맴도는 ‘인간관계’였다.
하지만 그 인간관계는 더 큰 악마의 구덩이라는 것을 성 전 회장은 인정하지 않았기에 안타깝다. 권력은 언제든 배신의 칼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그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는 자원외교 비리 선상 중심에 자신이 들어가면서 주변의 막후 지인들에게 구명을 호소했지만 상황이 어려워지자 ‘배신감 가득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권력의 속성상 그는 구명이 안 되는 늪에 이미 빠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 전 회장은 그렇게 ‘순수한 인간관계’를 기대하는 행동을 했다. 그것이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고 급기야 대기업 오너 같지 않은 다소 이해하지 못할 읍소형 기자회견까지 하게 했다. 하루 뒤 비극적 자살이 결국 그를 더 이해하게 하고 동정하게 했을 뿐이다.
그의 자살이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자원외교 비리 수사를 넘어 아들과 아내까지 죄인으로 줄줄이 엮이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는 아버지의 신분으로 돌아가 ‘가족보호’라는 최후의 울타리를 쳤던 부분이다. 자신이 쌓아 올린 평생의 피땀 어린 탑은 둘째 치고 자신 때문에 같이 무너져 가는 가족 앞에서 성 전 회장은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가족들이 사선을 넘나들던 어릴 적 지옥의 순간을 책임진 상황이 오버랩 되는 시간이 그에게 최후까지 고통스럽게 흘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업인이기에 앞서 한 가족의 책임지는 아버지인 그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성 전 회장의 동생은 “형이 상당히 억울해 했다.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는 1원도 횡령할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형님은 2만1500명의 아이들에게 300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줬다. 형은 ‘내가 파렴치범으로 몰렸는데 그 아이들을 어떻게 보느냐’고 비통해 했다”고 전했다. 성 전 회장의 초등학교 중퇴가 평생 권력가들 옆에서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도 역시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일련의 정황들이 가족이면 오죽했을까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1조원 가량 매출을 하는 한 성공한 중견기업 대표는 사석에서 “한국사회는 여전히 견(犬) 같이 벌수밖에 없다. 그래서 돈을 벌면 좋은 일을 하면서 대개 자존감을 찾으려 하는 기업인들이 많다. 그 과정에서 명예가 타격을 입으면 못산다”는 말을 했다. 한국 사회 전반의 부도덕한 면과 그것을 불가피하게 인정하는 대중 개개인들이 오히려 한번 걸려들면 또한 절대 용서하지 않는 마녀사냥을 이 기업인은 가장 무섭다고 이야기했다.
진흙탕 권력에서 허우적대야만 성공하는 기업인들의 운명과 권력싸움에 늘 제물이 되는 기업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성 전 회장에게서 반추된다. 죄를 늘 멍에처럼 이고 있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사업환경이 한 가정의 아버지들을 잊을만 하면 자살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야만성은 기업인의 잘잘못을 떠나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일이다. 이런 악마의 고리를 끊어내고 성 전 회장의 진실(자원외교 연관성)과 삶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자원외교 수사는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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