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정치 시대 ‘희대의 왕마담’ 자취 83억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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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촌 성북동 명사들<54>]-이정자 전 삼청각·청운각 대표

요정정치 시대 ‘희대의 왕마담’ 자취 83억 저택
역사·밀실·기생파티 거쳐 문화시설 삼청각…동생은 대원각 ‘북악3각 자매’

황새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6-06-03 12:40:38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은 대기업 총수를 비롯해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부자들이 모여든 전통의 부촌이다. 성북동에서 요정 ‘삼청각’을 운영한 이른바 안방마님 이정자씨 역시 이곳에다 일찌감치 둥지를 틀었다. 삼청각은 대원각, 청운각과 함께 1970~80년대 ‘북악산 3각’이라 불리던 특급 요정이었다. 사진은 이정자 전 삼청각 대표가 소유하고 있는 성북동 주택으로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에게 렌트됐다. ⓒ스카이데일리

서울 성북동에 자리한 삼청각은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요정이었다. 1980년대부터 등장한 룸살롱의 기세에 눌려 고급 요정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삼청각과 청운각을 운영하던 이정자(77)씨 역시 자취를 감췄다.

이정자씨는 서울시 성북동에 토지 두 필지를 소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씨는 1973년과 1976년 두 번에 걸쳐 토지를 매입했다. 먼저 매입한 대지는 734㎡(약 222평)이고, 3년 후 매입한 부지는 334㎡(약 101평)이다. 이 두 필지 위에는 연면적 444.09㎡(약 134평) 규모의 2층 주택이 있다. 1992년 준공됐다.

S부동산 관계자는 “이곳 토지 시세는 3.3㎥(약 1평)당 2300만~2400만원 선”이라며 “두 필지를 합한 가격은 82억원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이씨의 행방에 대해 묻자 “이정자씨는 현재 미국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당 주택은 외국인이 렌트해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근처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우리가게 물건도 많이 팔아주고 예전에는 꽤 자주 봤는데 요새는 통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요정에서 일하던 기생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며 “돈을 모아 여기(성북동)에 집을 산 기생도 봤다”고 언급했다.

당시 요정을 자주 출입했던 김병관(가명·72)씨는 이씨에 대해 “일제강점기부터 자리 잡은 서울의 일류요정 옥류장의 둘째딸이었는데, 요정 주인이 대개 그렇듯 예쁘장한 얼굴에 상냥한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 1972년 문을 연 삼청각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정치인, 재벌, 고위장성 등 실세들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뒷거래를 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됐다. 삼청각은 1980년대 들어 룸살롱이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타격을 받았고, 기생파티장·한정식집으로 운영되다가 1998년 중소건축업체인 화엄건설에 넘겨졌다. 이후 1999년 12월 30일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사진은 삼청각으로 들어가는 입구 ⓒ스카이데일리

군사정권 실세들의 비밀 회합장소, 기생파티장 거쳐 문화시설 지정까지

1972년 정부의 필요로 만들어졌던 삼청각은 7.4남북공동성명 만찬장, 남북적십자 회담장 등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75년부터 본격 요정으로 운영되면서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은 극소수 실세들의 비밀화합으로 이뤄졌고 대원각, 청운각과 함께 ‘북악산 3각’이라 불리던 삼청각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후 로비와 접대로 얼룩진 요정정치·밀실정치의 산실로 명성을 떨치며 번성했다.

1980년대 이후 점잖은 요정보다 화끈한 룸살롱이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삼청각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이 시기 많은 요정들은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생파티장으로 운영됐다.

성북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예전엔 일본인들도 많이 왔었다”며 “요정에서 일하던 기생들 중에 일본인 부자의 후처로 간 사람들도 봤다”고 전했다.

영업 부진을 겪었던 삼청각은 1997년 ‘예향’이라는 이름의 한정식집으로 운영되다가 1998년 중소건축업체인 화엄건설이 약 300억원에 매입했다.

굴곡진 근현대사와 함께 한 삼청각은 1999년 12월 30일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듬해 화엄건설은 단독주택 타운을 짓겠다며 성북구청에 토지형질변경 허가신청을 냈다.

이에 당시 강홍빈 서울시 부시장은 “삼청각은 1972년 문을 연 뒤 남북회담 등 중요한 정치행사가 열리는 등 현대사에서 갖는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문화재로 봐야 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서울시는 2001년 삼청각을 국제적 관광명소로 육성하겠다며 인수했다. 현재는 세종문화회관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서울시는 삼청각을 2018년까지 한식과 한식문화를 소개하고 체험하는 ‘전통한식 랜드마크’로 만든다고 발표했다.

▲ 대원각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북악산 3대 요정'이었다. 대원각의 실소유주였던 김영한씨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대원각과 대지 7000평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그것을 계기로 1997년 길상사가 들어서게 됐고, 이날 법정스님은 김영한씨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주었다. 김영한씨는 1999년 길상사에서 생을 마쳤고,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길상사 한 편에 세워져 있다. 사진은 길상사(구·대원각) 입구 ⓒ스카이데일리

요정 운영하던 이정자·경자 자매, 외화밀반출·탈세혐의 이후 자취 감춰

이정자씨는 삼청각을 운영하면서 또 다른 요정인 청운각을 함께 운영했다. 조차임씨가 1956년부터 운영하던 청운각은 1970년대 들어 경영난으로 주인이 자주 바뀌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이정자씨였다.

청운각은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의 틀이 마련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이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상은 새벽에 청운각에서 비밀회담을 열었고, 이를 근거로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됐다.

이정자씨의 동생인 이경자씨도 성북동 대원각을 잠시 경영했다. 실소유주인 김영한씨가 1980년대 무렵 경영에서 물러난 후 이경자씨가 대원각을 임대해 운영했다.

이씨는 대원각을 운영하던 동생 이경자씨와 1983년 미화 밀반출과 탈세 혐의 등으로 적발돼 검찰에 기소됐다. 이후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정자씨가 삼청각을 화엄건설에 넘기며 대한민국의 요정 시대도 저물었다.

황새봄 기자 grace_bo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