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아요. 상당수 미혼모들이 당당하지 못하고 죄인처럼 살아가는 이유죠. 저희는 이런 사회적 편견이 사라진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에요. 미혼모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참여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7일 제주도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세 여아의 엄마가 제주항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그녀는 미혼모로 지내온 동안 경제적·사회적으로 고립돼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모녀사건을 계기로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혼모 또한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미혼모 단체 ‘인트리’도 마찬가지다. 2013년 만들어진 인트리는 미혼모의 자존감 회복 및 경제적 자립, 사회참여 의지를 복돋아 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혼모가 된 이후 폐업·비난 등 죄인으로 낙인…억울함에 활동 시작
“제 아이가 태어난 2005년까지만 해도 국가에서 미혼모를 위한 지원이나 시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벌어놓은 돈으로 아이가 첫 돌이 될 때까지 살았죠.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집 보증금을 빼곤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어요.”
인트리 대표를 맡고 있는 최형숙(47·여) 씨는 유능한 미용사였다. 당시 최 씨의 사정을 알고 있던 사장님 덕분에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취직한 지 1년 반 정도 흘렀을 때 최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미용실로 이직하게 됐다.
“이직을 했을 당시 굳이 제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제 능력으로 더 좋은 월급과 조건으로 이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직한지 4일 만에 손님을 통해 제가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졌어요.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2일 만에 새 직장을 그만두게 됐죠.”
평범하게 자라온 최 대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미혼모라는 사실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능력을 갖추고도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억울한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다. 상실감을 느낀 그는 2개월간 아이와 함께 전파도 잡히지 않는 경기도 포천에서 생활했다.
“막막했어요.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 다시 일을 해야 했죠. 그러다 우연히 미용실 인수를 제안 받았어요. 이후 2008년 은평구에 위치한 한 미용실을 인수했어요. 장사가 잘됐어요. 그런데 방송국에 출연한 게 문제가 됐죠. 알고 지내던 단체에서 미혼모에 대한 방송에 출연을 부탁했고, 얼굴과 이름을 모두 가리긴 했지만 인터뷰 직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어요.”
최 대표의 가게 이름과 내부가 방송에 나가게 되면서 미혼모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손님들이 하나 둘 끊기기 시작했다. 결국 2009년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미용실을 폐업해야만 했다. 미혼모라는 사실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그가 유부남과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세상이 무섭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리고 억울하고 분했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미혼모란 이유로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죠. 그래서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억울함을 풀고 싶었어요. 제가 인트리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계기죠.”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한 발걸음…다양한 자립활동 지원
인트리에서 서울시 사업을 담당하는 이연지(40·여) 씨도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인트리 활동을 시작했다. 미혼모가 된 이후 가족으로부터 당당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당당하고 행복해야 자녀 역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이다.
“저는 최 대표님이 인트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했어요.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아빠와 같이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여성학 강의를 듣고 용기를 얻었고, 다른 미혼모들도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인트리에서 상담업무를 맡고 있는 안소희(31·여) 씨는 인트리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미혼모에 관한 단체에 대해 알지 못했고, 단체에서 활동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동료 미혼모에게 들은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변했다고 말했다.
“하루는 알고 지내던 미혼모가 제일 친한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 아저씨가 친구에게 ‘같이 자고 싶다’고 보낸거죠. 이후 재판까지 간 상황에서 그 아저씨는 미혼모에게 ‘쟤는 미혼모이고 4~5년 동안 남자를 안 만나서 외로워서 나를 유혹했다. 쟤는 꽃뱀이다’며 증언했다고 해요. 분노했죠.”
“저는 20대 초반에 3개월 정도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덜컥 임심이 됐어요. 당시 남자친구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어서 책임지지 못했고, 저는 혼자 키우겠다고 결심했죠. 물론 집안에선 제 결정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가 어니였어요. 하지만 저는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당당하게 살고 싶었고 그러던 중 인트리를 알게 됐죠.”
나은(45·여) 씨는 미혼모는 아니지만 인트리에서 ‘CJ나눔재단과 함께 청소년 미혼 한부모 지원사업’ 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사회에서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지적했다. 미혼모가 자립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문제를 미혼모에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혼모라는 키워드가 제시되면 정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양, 낙태, 베이비 박스 등 키워드를 먼저 떠올려요. 최근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미혼모 지원이 떠오르면서 저출산 역시 미혼모에 따라오는 키워드가 됐죠. 정작 미혼모 입장이 돼 보면 마치 아이를 낳는 도구처럼 여기고 있다고 느껴져 상당히 기분이 나쁘죠.”
인트리에 따르면 지금까지 미혼모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활동이 아이의 앞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까 두려워 제대로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혼모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인트리의 설명이다. 오히려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미혼모도 분명 한 아이의 어머니에요. 직장·가정 등에서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죠. 미혼모가 스스로를 소중하게 인식하고 사회에서 미혼모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도록 인트리가 사회의 인식개선과 미혼모의 사다리가 돼 주는 게 목표에요.”
[나광국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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