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조금 느릴지라도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겠다는 의지를 국민께 말씀 드리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무언가를 바꾸겠다, 변화시키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죠. 저는 지금 제가 살아왔던 삶 중에 가장 열심히 살고 있어요.”
피아니스트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메신저의 의미는 같아”
‘피아니스트’ ‘헌정사상 첫 시각장애인 여성 국회의원’ ‘메신저’ ‘안내견 조이’ ‘감사한 논란’…. 모두 제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해 3월 11일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해 그달 25일 헌정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으로서 당 대변인에 임명됐고, 다음달인 4월 16일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초선인 김 의원은 ‘할 말 하는’ 당찬 의원으로도 유명하다. 일례로 정치권 입문 당시 환영식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다고 한다”면서 비하성 발언을 하자 김 의원은 “사람이니까 의지가 약한 사람이 있고, 강한 사람이 있다. 선천성 장애인이 결코 의지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다”고 이 전 대표를 꾸짖기도 했다.
‘당찬’ 김 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기자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제1번을 들었다. 도입부가 웅장한 이 곡은 각 악기가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조화를 이뤄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김 의원 이야기도 이러한 협주곡 같으리라 생각했다. 곧 그의 집무실에서 마주 앉아 피아노를 시작한 계기부터 물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악기를 좋아했어요. 비장애인 친구들처럼 야외활동을 하거나 시각적 활동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제겐 악기가 장난감이자 친구였어요. 일상 생활 대부분을 듣고 연주하고 노래했죠. 부모님의 권유나 이렇다 할 큰 계기가 있어 시작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제 삶의 한 부분으로 음악이 들어왔고, 그렇게 전공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피아니스트가 된 시기도 언제라고 딱 정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저처럼 시각장애가 있는데 연주나 전공을 하는 사람이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연주를 함으로써 각자 얻는 보람이라든지, 각자가 전하는 메시지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제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연주자의 길을 쭉 걸어왔죠. 그렇게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음 속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부터 시작하니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음악은 초월적인 소통의 방법이라 생각해요. 장애나 비장애, 나아가 국가와 성별까지 초월해 음악만으로 소통할 수 있죠. 이런 경계와 장벽이 음악을 통해 허물어짐을 느낄 때 정말 행복감을 느껴요. 특히, 연주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고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는 도움의 기반을 마련하게 될 때 큰 보람을 느껴요.”
김 의원은 지난해 8월 5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유쾌하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미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당시 김 의원은 진행자 유재석의 ‘김예지가 생각하는 음악인과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메신저”라고 답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김 의원은 변함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음악인이나 국회의원이나 내면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연주자는 작곡가가 전하고 싶은 내용을 분석하고 이해한 뒤 관객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해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로 본인 생각만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전달자, 즉 ‘메신저’라는 공통점이 있죠.”
‘주장 강한’ 안내견 조이와 함께하는 국회의원의 일과… ‘감사한 논란’ 생기기도
피아니스트로서 음악을 통해 소통을 실현하는 삶을 살던 김예지는 현재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시각장애인 여성 국회의원이 돼 당당히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치권을 지칭해 ‘난장판’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하는 만큼, 김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공천 받을 당시 어떤 주저함이나 고민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저는 어떤 정당에서 몸을 담고 활동을 했다든지, 공천을 받기 위해 개인적 노력을 해서 국회로 들어온 경우가 아니에요. 특히, 제가 국회의원이란 직을 처음 하기 때문에 ‘과연 잘할 수 있을까’란 걱정과 동시에 사실 늘 생각해왔던 일, 변화시키고 싶었던 일들을 비례대표라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큰 망설임 없이 시작했어요.”
“국회의원의 업무가 바쁘기도 하지만 하루하루가 항상 달라요. 예측 가능한 날도 있지만 예측 불가능한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게 일상이라 빠른 적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매일 느끼죠. 의원이 되기 전에는 학교에서 레슨을 하거나 사회적인 활동을 준비했지만 지금은 그러기도 힘들어요. 개인적인 만남 자체는 생각할 수도 없죠.”
“주중에는 국회 일정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언론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을 통해 더 많은 국민께 제 메시지를 전해드릴 수 있죠. 공부도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기존에 있는 법안들을 어떻게 개정하면 좀 더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논의와 여러 방면에서의 이해와 관련 현안들도 파악해야 하죠.”
국회의원이 된 후 김 의원의 일상은 매일이 다르고, 예측 불가능한 일정을 소화하며 심지어 개인시간은 상상조차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처럼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김 의원 옆에는 안내견 ‘조이’가 언제나 함께하며 그를 지켰다. 인터뷰 내내 기자의 다리 아래 누워 숙면(?)을 취하던 조이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고, ‘감사한 논란’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이는 저와 만난 지 3년이 조금 넘었어요. 조이는 여섯 살 정도 된 래브라도 리트리버에요. 자기 주장이 강하고, 호불호가 명확하죠. 보통 사람들은 안내견이 무조건 복종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복종하는 안내견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아요. 강아지마다 성격이 다 다르거든요.”
“조이는 비례대표 0번이에요. 미래한국당 시절 당시 원유철 대표께서 붙여주신 별명이죠. 안내견과 후보가 국회에서 같이 다니는 경우가 흔한 케이스가 아니어서 이 기회를 통해 많은 분들께 안내견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죠.”
“‘감사한 논란’도 있었어요. 제가 국회에 들어오면서 본회의장에 안내견 출입 가능 여부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출입 거부를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당시엔 심적으로 곤란하긴 했지만 논란 이후 평소 이슈화되지 않았던 안내견에 관한 에티켓이나 사회적 이야기들이 언론에서 많이 조명됐어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논란으로 안내견이 단순히 반려견이 아닌 점, 현행법상 안내견은 어디든 출입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많이 알려지게 됐죠. 이런 이슈 덕분에 장애인들이 안내견과 동행할 때 실제로 출입거부를 하는 곳도 줄고, 주변에서 안내견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와서 ‘감사한 논란’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장애인복지법’ 제40조 제3항에는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 공공장소,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에 대해 논란을 일으키는 사례는 여전하다. 다만, 김 의원의 말처럼 한편으론 논란이 지속됨에 따라 사회는 더욱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민 메신저’가 전하는 메시지, “거짓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일꾼 되겠다”
인터뷰 막바지, 기자는 김 의원에게 지난해 12월 시각장애인에 대한 독서 활동을 위한 프로젝트인 ‘메일데이지’를 기획했던 20대 청년비영리단체 ‘천재지변’의 활동을 전했다. 천재지변은 현재 서울시각장애인 복지관에 메일데이지 프로젝트를 넘겼고,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김 의원에게 전하면서 시각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지 물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화 증진에 뛰어든 천재지변의 활동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하고 싶어요. 제가 당사자인 만큼 시각장애인의 문화 활동에 대한 중요성·필요성·심각성을 상당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죠.”
“장애인의 독서 활동에 대한 여러 내용을 검토해본 결과, 우리나라엔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있는데 2019년도에 문화체육관광부 1차 소속기관으로 격상됐어요. 그러나 ‘도서관법’에는 격상되지 않은 채로 일일이 국립중앙도서관을 거치게 되죠. 그래서 우선 이것부터 개정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어요. 제가 문체위 소속인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잔소리를 많이 할 예정이에요.”
“좋은 사례도 있어요. ‘ITlo(IT로)’라는 시스템인데 시각장애인의 독서 접근성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자 비영리단체가 만든 거예요. 따라서 일반도서, 즉 인문·사회·종교 등의 도서는 이 시스템으로 개선할 수 있고, 전문도서의 경우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홍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고려하고 있어요.”
이러한 김 의원의 메시지는 인터뷰가 끝난 후 최재현 천재지변 대표(27)에게 전했다. 최 대표는 김 의원에게 “시각장애인도 문화향유에 관한 욕구가 많다는 점을 천재지변 활동을 통해 느꼈다”며 “하지만 청년단체의 여건이나 환경 등 제도적 부분에 대해 제한이 있다. 김 의원께서 그분들의 문화향유권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주실 것이라 믿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의원에게 국민께 전하고픈 메시지를 부탁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국민께서 심신이 많이 지치신 것을 알고 있어요. 제가 이를 곧장 해결할 순 없지만 제 위치에서 국민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입법과 정책적 실현이 가능하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사각지대에 있거나 이슈화되지 못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세심한 지원 등의 부분도 제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지금도, 앞으로도 열심히 해나갈 거라고 다짐해요.”
“끝으로 제가 조금 느릴지라도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건 거짓말이잖아요. 현재 저는 살아왔던 삶 중에 가장 열심히 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으니 국민께서 응원해주시고,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초선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김찬주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