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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지방 공동화 현장을 가다(上-산업)
위기의 지방 산업… “근로자가 살고 싶은 곳 돼야”
대기업 철수·용도변경 등에 위기감… “문 닫은 공장 많아”
첨단산업으로 산업 구조 재편… 고급 인력 확보에 ‘사활’
“인재 뽑아도 지방생활 못 견뎌… 양질의 삶 보장 먼저”
양준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4-24 00:07:00
대한민국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지방 공동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일자리의 절대다수를 맡고 있는 중소기업 대부분이 지방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이들이 인력을 구하지 못해 한국 제조업을 떠받치는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여파로 지방의 부동산도 위태로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스카이데일리는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로 ‘지방 공동화 현장을 가다’로 정하고 관련 내용을 두 편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 구미 국가산업단지 곳곳에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한원석 팀장|양준규·신성수 기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집중도는 2000년 46.3%에서 매년 꾸준히 올라 2019년 50%를 돌파한 데 이어 2021년에는 50.4%를 기록했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며 지방 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기업들이 인력을 구하기 힘든 지방보다는 수도권 사업장을 선호함에 따라 지방 산업단지에 있던 기업들이 폐업 또는 휴업을 결정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폐업·휴업 늘고 소규모 기업 늘어… “문 닫은 공장 많아”
 
낙동강을 끼고 자리 잡은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대표적인 지방 산업단지 중 하나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1969년 전자·반도체 산업 중점 육성을 목적으로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뒤 1996년에는 단일 산업단지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 2005년에는 수출 300억 달러를 달성했다.
 
그러나 주요 대기업들이 공장을 이전하거나 축소한 데다 최근 몇 년 동안 폐업하는 기업도 늘면서 구미 산업단지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올해 초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정부 관할 30여 개 국가산업단지의 휴·폐업 기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7곳, 2019년 16곳이었던 구미산업공단 폐업 기업 수가 2020년 27곳, 2021년 32곳, 2022년에는 24곳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휴업 기업도 4곳 더 늘어났다.
 
반면 새로 생기는 기업의 수는 줄고 있다. 구미 상공회의소가 분석한 ‘구미지역 신설법인 현황 분석’에 따르면 구미지역 신설법인은 2020년 669개에서 2021년 644개로 줄었고 2022년에는 586개로 2년 연속 하락했다. 제조업 신설법인 자본금 규모도 5000만 원 이하가 전체의 66.3%로 소기업 비중이 높았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구미 국가산업단지에는 문을 닫거나 소수 인원만 근무하는 공장이 눈에 띄었다. 거대산업단지답게 인력과 기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곳도 있었지만 곳곳에는 공장 매매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구미 지역 주민들도 체감하고 있다. 구미 산업단지로 들어가는 길에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예전에는 대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많이 빠진 것이 느껴진다”며 “대기업이 빠진 자리에 소기업들이 많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구미 산업단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시민도 “공장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줄였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며 “식당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공장을 꽤 볼 수 있다”고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최근 몇 년 사이 매물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은 없다며 비슷한 얘기를 늘어놨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매물에 큰 변화는 없지만 공장을 닫으려고 해도 못 닫고 있거나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고 답했다.
 
산업계에서는 지방 산업이 흔들리는 원인으로 기업들의 해외나 수도권 이전을 들고 있다. 실제로 구미 산업단지에 있던 기업들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외로 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LG전자는 스마트폰·태양광패널 사업 등에서 철수하면서 구미 공장을 폐쇄했다. 2020년에는 일부 생산시설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하고 일부 공장을 LG이노텍에 매각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0년부터 베트남에서 스마트폰 조립 공장을 가동하면서 구미지역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네트워크 사업부를 수원으로 이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 관계자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이 지방에 와야 하고 지방에서 성공한 사례가 나와야 다른 기업들도 온다”며 “기업들이 지방 이전을 고려하려면 지방에 있는 기업의 법인세를 더 깎아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수도권보다 지방에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 평일 오후인데도 문이 닫혀있는 구미 국가산업단지 사업장들. ⓒ스카이데일리
   
다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 이슈가 불거지면서 기업들이 해외로 옮긴 생산시설을 다시 한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을 추진하고 있어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구미사업장을 ‘구미 퓨처파크’로 변경하고 LG 클로이 로봇 생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도 베트남 스마트폰 생산 라인을 다시 구미로 이전한 데 이어 올해 3월 구미에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SDI 공장에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반도체·OLED 첨단소재와 관련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첨단 산업 유치를 통한 체질 개선을 노리고 있다. 올해 3월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LG디스플레이·LG이노텍·매그나칩반도체·KEC·원익큐엔씨 등과 ‘구미 첨단 전자산업 자원순환 클러스터 조성’ 추진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구미시는 최근 정부의 방산 혁신 클러스터 대상지로 선정됐으며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또한 추진하고 있다.
 
첨단 산업 전환에 고급 인력 확보 필수… “월 100만 원 더 줘도 안 와”
 
지역 산업단지가 비활성화된 또 다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고급 인력들의 지방 기피를 꼽았다. 기업을 유치하는 게 물론 중요하지만 근로자를 구하지 못하면 별무소용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생산시설 등 일부 사업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국내 산업은 첨단 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젊은 고급 인력을 끌어들일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심규정 구미상공회의소 기업유치팀장은 “기업들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두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보급형 제품은 임금이 싼 해외에 공장을 짓고 국내 공장에서는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며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이 필요한데 그런 고급 인력들이 지방으로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구미가 호황이던 시기에는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일 정도로 엄청나게 젊은 도시였는데 최근에 연령 조사를 해보니 40대 초·중반이었다”며 “젊고 능력 있는 인력들이 놀 것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지방으로 내려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 인력들이 지방 근무를 기피한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있어왔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수도권에 거주하며 구직활동을 하는 20~34세 청년 301명을 대상으로 ‘지방 근무에 대한 청년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대다수가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회사를 선택한 응답자에게 지방 근무를 선택할 경우의 연봉 수준에 대해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0%가 연봉 1000만 원 이상을 더 받아야 지방을 선택한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1000만원 이상 36.5%, 1500만원 이상 8.8%, 2000만원 이상 18.6%이고, 연봉과 상관없이 지방 근무 의향 없음도 6.1%로 나타났다.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는 ‘지역 생활 여건 개선’이 38.5%로 가장 많았다.
 
지방에서 인력을 구한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은 고급 인력들의 지방 근무 기피 경향이 통계보다 체감 상 더 크다고 말한다. 구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재욱(46·가명) 씨는 “구미에서 월급 1000만 원 받고 일할지 대구에서 900만 원 받을지 고르라고 한다면 대구를 고르는 사람이 많다”면서 “지방 기업이 애써 인재를 고용한다고 해도 며칠 정도 일하고는 지방 생활 못 하겠다고 올라가버린다”고 토로했다.
  
▲ 구미 금오천 벚꽃 축제. 구미시청 제공
  
젊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이 중요해진 만큼 기업의 처우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예전에는 일과 개인 생활의 비중이 9대 1 정도로 일의 비중이 높았다면 요즘에는 ‘워라밸’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수도권 선호도가 더 늘었다”며 “단순히 산업을 발전시키는 곳이 아니라 지방 도시 자체가 살기 좋은 곳이 돼야 노동자들도 지방에 취업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구미시는 2023년 낙동강 둔치에 시설 조성 관련 예산으로 전년 대비 191% 증가한 108억 원을 편성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국내 최대의 캠핑페스티벌 ‘고아웃캠프’를 유치하고 금오천 벚꽃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여가 생활 개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구미에서 근무하는 이정엽(31·가명) 씨는 “좋은 대학교가 서울에 많이 있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는 친구들이 많고 좋은 일자리도 서울에 있으니 정착하게 된다”며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서울 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서울에 남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지금 인프라나 문화 시설 등을 늘린다고 서울을 따라잡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은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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