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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월2일까지 예산안 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예산 테러’ ‘예산 폭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전례 없는 횡포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정부·여당이 예산을 늘리면 야당은 이를 ‘칼질’, 즉 삭감하는 데 주력했다. 헌법 제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삭감할 수는 있지만 정부 동의 없이 증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민주당이 대놓고 헌법을 위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건전재정을 내세우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긴축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아직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단계이기는 하지만 정부 안에 없던 항목까지 신설해 6조 원을 증액하고 반대로 정부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증액한 예산에는 소상공인 에너지 요금 및 대출이자 지원 2조2916억 원·연구개발(R&D) 예산 1조2700억 원·지역사랑상품권 7053억 원·새만금사업 5391억 원 등이 있다. 이런 항목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전매특허같은 정책을 잇거나 총선을 대비한 선심 정책의 성격이 짙다. 이렇다 보니 대통령이 과연 윤석열인지 이재명인지 헷갈릴 정도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헌법 제57조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취지는 예산 삭감은 국회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어도 예산의 증액은 반드시 정부 동의를 얻으라는 것이다. 이를 흔히 정부의 ‘증액동의권’ 또는 ‘예산견제권’이라고 하는데 제헌헌법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규정이다.
‘의회의 예산수정권 재조명’(김종면)이란 글은 제헌헌법에 기초한 유진오 박사의 저서 ‘헌법해의’(1949·192-193쪽)에서 이 조항의 취지를 설명한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불란서에서는 헌법에 이상과 같은 명문이 없었기 때문에 국회가 예산의 증가 또는 신(新)비목의 추가를 의결할 수 있느냐에 관하여 의논이 일치하지 못하여 국회의원이 자기가 선출된 지방민의 환심을 얻기 위하야 예산 증액을 제안하는 일이 많아 폐해가 적지 않았으며 (중략) 그러나 본항은 정부의 동의 없이 국회가 이러한 의결을 하는 것을 금지하였을 뿐이므로 국회가 예산의 증액 또는 신비목의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여 정부로 하여금 새로운 예산안을 제출케 하는 것은 하등 본조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규정은 1946년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이 채택한 조항을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 프랑스는 예외 없이 증액을 금지한 반면 제헌헌법은 정부 동의하에 증액할 수 있게 예외를 둔 점에 차이가 있다. 신생국 대한민국도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벌어진 폐해를 알고서 정부에 증액 동의권을 주어 국회를 견제하게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혜안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포퓰리즘적 유혹을 받기 쉬운 국회, 특히 민주당으로서는 정부의 증액 동의권이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여당이던 2018년에 정부의 증액 동의권 폐지를 당론으로 추진했던 적도 있다. 당시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면서 대통령과 행정부에 몰린 권력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으로 개헌안에 반영시키려 했던 것이다.
헌법 해석으로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있다. 헌법 문언엔 각 ‘항’의 금액을 증액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서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할 때 부처별로 ‘항’ 단위로 예산을 적시하고 하위 단위는 ‘명세서’에 따로 기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항보다 아래 단위의 세부 예산은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도 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에 관한 국회 권한을 확대하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견제 장치나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수정 가능한 예산의 총액 기준을 따로 명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힘 있는 의원이나 정당이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면 국가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이 배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마구잡이로 예산이 증액되면 국가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것이 뻔하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헌법 제57조가 건재한 이상 지금까지는 정부 제출 예산안이 국회에서 수정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했던 작년을 상기하면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을 20일 넘는 진통 끝에 통과됐었다. 그런데 당시 제일 큰 쟁점은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율이었다. 예산 관련해서는 행정안전부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 경비 삭감인데, 금액 자체로 보면 매우 작은 액수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약인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3525억 편성과 공공임대주택 관련 전세임대융자사업 예산 6600억 원 증액이 있었으나 합쳐서 1조 원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민주당이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작년에 비해 두 배 증액하는 등 무려 6조 원대로 증액을 하니 예산 테러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헌법 제57조가 있는 이상 민주당 마음대로 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결산위원회 차원에서 여야가 합의한 후에 마지막에 정부가 동의해 주는 식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상임위를 통과한 안은 여당이 합의해 줄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민주당의 의도는 명확하다. 포퓰리즘성 예산이 깎이면 정부·여당에 책임을 전가하고 정부가 굴복하면 자신들의 성과로 포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5년을 거치며 국가채무가 폭증해 GDP 대비 50%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에 경기침체로 세수를 확대할 가능성은 요원한 상태이다. 오죽했으면 총선을 코앞에 둔 정부가 긴축 재정을 편성했겠는가. 이제 공은 여당으로 넘어왔다. 배수의 진을 치고 야당에 맞서 건전재정을 사수해야 한다. 국민 앞에 진정성 있게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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