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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전 공정거래위원회 서기관은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공정위로 이직해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했다. 퇴직 이후 이 전 서기관은 공정위 재직 시절 느낀 공정위의 사건처리 방식 등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책 을 발간하는 등 공직자로서는 쉽지 않은 퇴직후 내부고발을 했다.
이 전 서기관이 생각하는 공정위의 사건 처리 방식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개선 방향은 무엇인지 들어 봤다.
윗선 압력 등으로 핵심 증거 은폐해 사건 무마한 경우 빈번
인터뷰 장소에도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난 이 전 서기관은 공정위 재직 당시에도 산행을 즐겨 공정위 내부 산악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고 밝혔다. 퇴직 후에도 산악 트래킹을 자주 즐긴다고 말했다.
“원래 취미가 산행이라 공정위에서도 내부 산악 모임을 5년간 이끌기도 했어요. 그래서 퇴직한 지금도 산악 트래킹을 주로 하고 그 밖에는 소일거리로 지인들 부탁을 받으면 공정위 신고서 같은 공문서 작성도 가끔 도와 주면서 지내요.”
자유롭게 살고 있는 이 전 서기관과 달리 공정위 직원들은 퇴직 후에 대비해 불공정 사건 처리와 퇴직 후 일자리를 맞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주변의 퇴직 후 루트를 보면 윗사람 눈치 잘 보고 ‘사건을 잘 덮는’ 사람, 친구나 윗사람한테 아부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친구들은 대부분 대기업 같은 좋은 데로 가더라구요. 그런거 보면 아무래도 정황이 유추가 되죠.”
이른바 ‘사건을 덮는다’는 것은 사건의 증거를 은폐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공정거래 의혹 사건을 무마시킨다는 의미다.
언급한 ‘사건을 덮는다’는 일에 대해 묻자 이 전 서기관은 재직 당시를 회고하며 공정위에서는 조사 사건에 대해 상부 또는 외부 압력 등 기타 이유로 사건의 증거를 은폐하거나 법규 해석을 이상하게 해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주장했다.
“가령 증거 은폐라는 것은 명백한 증거를 옆으로 치워서 없는 걸로 하고 논리를 구성하는 거죠. 여기엔 대체로 로비라든가 권력의 압력이 작용한다고 봐야죠.”
“그런데 이런 압력은 사건 조사관에게 구체적으로 ‘사건을 덮으라’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들어오진 않아요. 실제로는 조사관이 사건을 맡으면 공정위 간부들의 전화를 받는 식인데 전화를 받으면 ‘내가 아는 사람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라’든지 뭐 그런식으로 이야기하죠.”
이 전 서기관은 증거가 은폐된 구체적인 사례로 자신이 맡았던 만도의 불공정거래행위 신고 사건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만도의 부당 단가인하 행위에 대해 신고가 들어와 1·2차 조사를 거쳤지만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이에 대해 신고자가 불복해 거듭 신고해서 3차 조사를 제가 맡게 됐죠.”
“제가 조사를 맡아 보니 1·2차 조사관의 검토보고서에는 신고인 측에서 제시한 증거와 논리 등 핵심적인 증거들이 다 빠져 있었어요.”
“특히 저는 부당 단가를 주장하는 신고인 측에서 만도로부터 받던 단가가 신고인이 해당 사건으로 폐업 후 만도가 다른 업체에 주던 단가와 비교하면 현격하게 낮은 것을 발견했어요. 이 차이만큼 신고인이 열악한 조건에서 거래를 한 증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논리와 증거는 검토보고서에 전부 빠져 있었죠.”
이 전 서기관은 공정위 재직 당시 공정위 윗선의 사건에 대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버티다가 한직으로 밀려난 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공정위 직원들은 개인적인 전공이 있는데 군대 용어로 말하자면 저는 사건 파트에서는 하도급 업체가 주특기고 비사건 파트에서 주특기는 국제 업무·국제 협력 쪽이었는데 퇴직을 몇 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공정위 내 한직으로 취급되는 민원 파트로 보내졌죠.”
그는 이 같은 인사가 윗선의 압력에 저항한 결과 받은 일종의 보복이라고 생각했다.
“퇴직을 앞둔 사람을 민원실로 보내는 건 일종의 보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사건을 맡았을 때 윗선에서 묻으라는데 곱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죠.”
“공정위에 있을 때 그렇게 압력에 저항한 일이 몇 번 있었어요. 당시에는 ‘이걸 어떻게 덮냐 차라리 내가 그냥 나갈까’라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죠. 그렇게 몇 달 계속 압력을 받다가 정기 인사 기간도 아닌데 인사 발령이 난 거예요.”
위원회 안건 상정은 조사관이 책임지도록 해야
이 전 서기관은 공정위 재직 당시 윗선의 압력에 굴복해 사건을 그냥 덮어 버리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구체적인 압력 행사 방법에 대해 설명했는데 대체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담당자를 불러 집요하게 괴롭힌다고 말했다.
“사건 조사 담당자를 불러서 불공정거래 정황이 명확한 뻔한 증거를 가지고 이게 왜 증거가 되냐는 등의 질문을 반복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몇 달을 하는데 그러면 거의 고문이에요.”
이런 방식의 압력을 넣는 이유에 대해 이 전 서기관은 사건 조사 시 증거를 공정위 시스템에 올리는 행위 자체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맡으면 증거를 시스템에 올려요. 이때 명백한 증거를 올리면 증거가 안 된다고 반려시킬 경우 흔적이 남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증거를 시스템에 등록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거죠.”
이 전 서기관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윗선의 압력에 저항하다가 인사 조치를 당해 밀려나는 바람에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사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떠올려 보면 그때도 하도급 사건이었는데 직권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하도급 사업자들이 갑질을 당하는 게 너무 불쌍했어요. 그분들 상황을 보니까 영업이익률이 제로였어요. 그러니까 일을 하고도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였죠.”
“그분들한테 당시 제가 책임지고 시정을 해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죠. 그때도 위에서는 계속 압력이 내려왔었죠. 그래도 그때 저는 검찰로 치면 공소장 격인 심사 보고서도 다 썼어요. 그러나 이후 저를 다른 곳으로 인사 발령을 내 버리더니 그다음 조사관이 핵심 증거는 다 빼 버리고 심의 종료를 해 버렸어요.”
“뒤에 보니 그쪽 업종 사장님들이 자살한 경우도 있고 그래서 가슴이 아팠는데 그때 제 심사 보고서가 제대로 처리가 됐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죠.”
이 전 서기관은 공정위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는 ‘조사 담당관 책임제’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래 조사관이 위원회 안건으로 사건을 상정을 하기 위해서는 심사 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윗선인 과장을 거쳐 국장 결재를 받아야 해요. 반면 조사 담당관 책임제는 이 과정에서 과장·국장의 결재 없이 의견 정도만 받아도 사건을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이 가능해요. 대신 이 안건 상정에 대한 책임도 조사관이 지게 되는 거죠.”
이 전 서기관은 공정위 시스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건이 한 차례 신고에서 해결되지 않아 신고자가 이에 불복해 재신고를 하는 경우 그 사건은 공정위가 아닌 다른 기관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자체가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든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최소한 재신고 사건 만큼은 다른 기관에서 담당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공정위도 견제되고 사건 처리의 공정성도 조금은 제고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프로필
△ 경상대 독문학과 졸업
△ 독일 만하임대 수학(경쟁법 전공)
△ 대한항공 공항화물 관리센터 근무
△ 외교부 근무(7급 주사보)
△ 공정거래위원회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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