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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꼬레·까리 등 한국을 가리키는 외국어 명칭이 ‘고려(高麗)’에서 유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차이나·키나·신느·지나 등이 진시황의 진(秦)에서 유래한 것처럼 한 나라를 가리키는 외국어 명칭은 그 나라가 세계사의 어느 시점에 등장했느냐에 달렸다. 러시아어로 중국을 ‘키타이’라 하는 것은 러시아에선 거란족이 요나라를 세운 10세기 전후 유라시아 동쪽에서 온 그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케세이 퍼시픽 항공의 ‘Cathay’란 이름에도 거란의 원래 발음이 간직돼 있다.
거란족은 대륙 내 거대 민족이나 주변국에 흡수돼 사라졌다. ‘契丹’으로 음역돼 왔는데, 글자대로라면 ‘계단’이지만 ‘거란’이라고 읽는다. 컴퓨터의 미국식 발음이 ‘컴퓨러’가 된 연음 현상쯤으로 보면 되겠다. 더 흥미로운 것은 고려의 어원인 ‘케레이’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나 몽골에 주요 부족명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 확장을 통해 ‘겨레’(민족)라는 단어로 현대까지 살아남았다.
인도 가전제품 회사 Koryo는 힌디어 등 여러 현지어 속에서 이채를 띠는 이름이다. 아직 구체적 증거를 찾진 못했으나 이 역시 케레이, 나아가 고려와의 먼 인연이 상상된다. 또 영국 식민지가 되기 직전 인도를 지배한 무굴제국을 보자. ‘무굴’ ‘무갈’ ‘모굴’ 등 달리 발음될 뿐 같은 뜻이고 ‘몽골’이 어원이다. 무굴 왕조는 징기즈칸의 자손 중 하나가 개창한 왕조였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인도 땅에 케레이의 흔적이 남은 것은 별로 이상할 게 없다.
몽골의 일족 케레이의 후신이 한반도에 있던 고려 왕조다. ‘케레이’ ‘고려’ ‘겨레’ 모두 한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왕실 간 통혼이 빈번해 고려‧몽골은 혼인동맹에 가까웠다. 13세기 연합군을 구성해 일본 정벌에 나섰다가 도중 바닷바람을 만나 실패한 적도 있다. 이때의 바닷바람은 훗날 가미가제(神風)로 근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됐지만 중세 당시엔 몽골과 고려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예로부터 일본에선 울던 아이도 뚝 그치게 한다는 마법의 주문이 ‘모쿠리 고쿠리’(몽골·고려)다. 일본어로는 고쿠리(고구려)와 고려가 혼용된다.
한편 몽골어로 몽골은 ‘으뜸’을 뜻하며 이를 의역한 게 원나라(1271~1368)의 ‘元’이다. 중국사엔 당나라 때 등장해 몽골(蒙骨·朦骨)·맹골(盲骨) 등으로 표기되다 원나라 들어 그나마 폄하 의미가 줄어든 蒙古(몽고)로 정착됐다. 오늘날 몽골은 중국이 원나라를 자국사에 편입시켜 취급하는 것에 대해 충격과 분노가 크다. 국제학술대회에서 몽골 측 참가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도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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