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한국 유권자가 정치 탓할 자격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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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불법 종합선물 세트’ 후보 당선은 충격
합리성 결여된 대중에 의한 중우정치 위험성
이미 중우정치 초입 단계에 진입해 있는지도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25 06:31:20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놈이 바보입니다.” 몇 년 전 TV 채널인 OCN에서 방송되었던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다. 지역 토호 세력, 조직폭력배와 연계해 지역개발 사업으로 이권을 차지하려는 부패한 시장을 단죄하는 내용이다. 이 대사는 드라마 후반부에 서원시장으로 나오는 인물이 한 말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합해 180석 훨씬 넘는 의석수를 확보해, 사실상 윤석열정부를 식물 정권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정권 심판론을 넘어 대통령 탄핵에 근접한 주장을 편 야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번에도 부정선거 논란이 있지만 그 문제는 차치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과가 그렇다는 말이다.

선거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집권 여당을 처참하게 몰락시키고 야당 독주체제를 구축했다고 해서 충격적인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야당과 당선된 인물들이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실제로 야당 대표들은 여러 범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 중에 있다. 이뿐 아니라 야당 당선자 중에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막말과 욕설, 불법·편법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솔직히 일부 당선자는 ‘저질·불법 종합선물 세트’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이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최선의 인물을 선출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더라도 최악의 선택은 막을 수 있다”는 민주주의 선거 제도의 최후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이미 우리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도 지금 야당에게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몰아주면서 입법 독재체제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거대 야당이 보인 행태는 입법 폭주 아니 입법 난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검찰개혁이란 이름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무력화시키고, 언론개혁이란 명분으로 징벌적 배상제를 통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거세하려 했다. 또 공영방송을 영구히 장악하기 위한 방송법 개정도 시도한 바 있다.

내용적으로는 물론이고 절차적 정당성조차 무시된 졸속 입법 행태가 회기 내내 지속되었다. 대통령 거부권에 의해 겨우 버틸 수 있었지만 야당은 180석 의석으로 거의 모든 정부 정책 입법을 거부 혹은 무산시켜 식물 정권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정부와 여당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석을 호소했지만 국민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해 버린 셈이 됐다.

그렇다면 지난 국회보다 더 거대해진 야당 아닌 야권은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합리적 입법 활동을 할까? 기대는 할 수 있겠지만 지난 4년간 보여 온 야당의 행태나 새로 배지를 단 당선자들의 면면으로 보아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 어쩌면 더 강도 높은 입법 난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벌써 지난 국회에서 실패한 언론개혁 입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고, 이미 권한이 크게 줄어든 검찰을 아예 해체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암울한 전망이 현실이 된다면, 결국 우리 국회 아니 한국 정치는 더 심각한 정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 그렇게 되면 우리 국민은 또 국회와 정치인을 욕하고 정치를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만든 책임이 정치권과 정치인들에만 있을까? 그런 선택을 한 국민은 공범 아니 주범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현명한 시민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어리석은 백성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 제도가 합리성이 결여된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중우정치(ochlocracy)가 될 위험성을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중우정치 초입 단계에 이미 진입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의 대사를 약간 바꿔 보면 “한 번 속아 잘못 뽑은 것은 국민 잘못이 아니지만, 두 번 속아 잘못 뽑으면 속은 국민이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정치와 정치인을 3류 혹은 4류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이 그렇게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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