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범죄도시4’ 스크린 80% 독점은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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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영화 스크린 독점이 영화 다양성·독창성 저해
관객의 영화 선택권 빼앗으면 영화관도 관객 잃어
이번 기회에 스크린 상한제 도입 적극 추진하자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09 00:02:01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범죄도시4’가 스크린 독점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한 영화가 전국의 극장 스크린 열 개 중 여덟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누구든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상황이 아니다. 특정 영화에 관객이 몰린다 해도 영화관이 자체적으로 스크린 배정에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 이는 관객의 영화 선택권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영화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범죄도시4’는 지난달 24일 개봉한 이후 2주 동안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개봉 13일째인 이달 6일 누적 관객 수 800만 명을 돌파했고, 이대로 간다면 1000만 관객 달성도 목전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영화가 극장가에서 거의 독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5일 기준 ‘범죄도시4’의 상영 점유율은 68.9%·좌석 점유율은 72.2%였다. 개봉 첫 주에는 이보다 훨씬 높아서 상영 점유율 81~82%·좌석 점유율 85%를 보인 바 있다. 전체 영화 상영횟수 가운데 특정 영화의 상영이 차지하는 비중인 상영 점유율이 80%가 넘는다는 건 거의 하루 종일 전체 상영관에서 오로지 이 영화만을 상영한다는 의미다. 또 좌석 점유율은 극장 전체 좌석 수 가운데 해당 영화에 할당된 상영관의 좌석 수의 비율을 뜻하는데, 좌석 점유율이 상영 점유율보다 높다는 건 이 영화에 배정된 상영관이 다른 영화 상영관보다 규모가 더 크다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범죄도시4’가 개봉된 이후 다른 영화를 보려고 극장가를 찾은 관객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헛걸음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부모는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갔으나 적당한 상영 시간을 찾지 못해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는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잖아도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설이 이미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계가 고사 직전까지 갔다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된 지금도 우리 영화산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극장가 관객의 발길이 줄어든 데다가 콘텐츠 빈곤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흥행 예감이 좋은 영화가 있으면 극장가는 그 작품에 올인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5분·10분 간격으로 상영 시간을 촘촘히 배치해 찾아오는 관객은 무조건 해당 영화를 보도록 만든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상영관의 좌석은 상당수 비어있게 된다. 배정된 좌석 수에서 실제 관객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좌석 판매율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범죄도시4’의 평균 좌석 판매율은 30%대이다. 실제 수요보다 상영관 수를 훨씬 더 많이 배정했다는 걸 뜻하는데, 이는 그만큼 다른 영화의 상영관이 줄어 관객의 영화 선택권이 침해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영화 전문가들은 상영 기회의 불공정성이 영화산업의 양극화로 이어져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독립·예술영화 등은 입지가 더 좁아질 것으로 우려한다. 당장 인기 있는 영화 한 편에 ‘올인’한다면 영화의 다양성은 물론 영화 시장 전반의 흥행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관객도 등을 돌리게 만들어 악순환의 구조가 된다.

영화 시장이 악순환에서 탈피하고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프랑스·일본·미국 등 스크린 상한제를 취하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8개 스크린 이상 소유한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이 일간 상영 횟수의 30%를 초과할 수 없도록 영화법으로 엄격히 통제한다. 일본은 영화관 자체적으로 최대 25%까지 스크린 상한제를 실시한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그간 논란이 됐던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적극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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