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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와 대한민국 [8] 민족의 비극 6·25전쟁
조국을 사랑한 마이클 이의 美CIA 40년 생생한 증언
마이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5 06:30:20
▲ 마이클 이(Michael P. Yi) 박사
[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과 CIA’를 지면에 연재한다.
 
 
이 끔찍한 역사적 범죄를 누가 범했는가
 
대한민국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미()군정청과 주한미군이 1949630일에 완전히 철수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0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극동방위전략을 발표할 때 이른바 애치슨 라인에 일본과 필리핀은 포함되었지만 한반도가 빠져 있었다. 그 당시 국제정세상 미국이 돌봐야 하는 나라가 16개국이었는데 대한민국은 그중 13번째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북한의 김일성은 남침 계획을 세우고 당시 국제공산주의 확산에 혈안이 돼 있던 소련의 스탈인·중공의 모택동과 협의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은 북한은 1950625일 새벽 4시를 기해 10개 사단 병력과 소련제 T-34 탱크 150대로 38선 전면에서 무력 남침 기습을 감행했다.
 
당시 갓 태어나 두 살이 채 안 된 대한민국은 국방 태세가 무방비 상태였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면서 북한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남진해 내려왔다. 존 무초 주한 미국 대사가 이 사실을 즉시 본국에 보고하자 휴가 중이었던 트루먼 대통령은 급히 워싱턴으로 돌아가 안보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공산 침략군을 개새끼들이라고 욕하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후 4(1945-49) 동안이나 업어 키운 어린 동생,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연합(UN)195077일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하나인 소련의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연합군 파병을 의결했다. 이 결의는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1세 황제가 제안하여 채택된 국제평화 질서를 위한 UN집단 안보체제에 근거한 것이다. 그때 16개국이 일차적으로 약 40만 병력을 파병했고 5개국이 의료 지원을 했으며 40여 개국이 물자를 지원했다.
 
당시 인민군은 부산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연합군은 1950725일 낙동강 전투 이후 반격을 개시해 928일에는 맥아더 원수가 지휘하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서울이 수복되었으며, 101일에 38선을 통과해 그 여세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1025일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14일부터 연합군은 다시 후퇴를 시작해 오산·평택까지 밀려났다.
 
6·25전쟁의 참화
 
이 전쟁은 19537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장장 31개월간 지속되었다. 협정 체결 시 휴전선은 쌍방의 최전선으로 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비무장지대(DMZ)이다.
 
 
이 전쟁으로 남한의 산업시설과 건물·가옥·농경지가 초토화되었고 남한에서만 민간인 약 374만 명·국군 약 31970·미군(전투원·비전투원 합해) 5425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군의 경우 전사자·부상병·실종 포로를 합해 약 142000명이 희생되었으며 UN군은 전사자 약 58000명에 부상병과 실종 포로를 합해 약 546000명이 희생되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전쟁고아가 10만 명 이상 발생했다.
 
그때 UN 16개국이 참전하여 공산 침략군과 싸웠으나 전투의 90% 이상을 미군이 수행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1950717일부로 작전지휘권을 미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위임했다. 전쟁의 피해가 너무나 심각했던 그 당시 공산 진영의 제의로 시작된 휴전 협상은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간의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2년이나 시간을 끌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압록강·두만강까지 치고 올라가 북진 통일을 할 것을 계속 고집했다. 그가 미국의 집요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공산 침략의 재발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 없이는 절대로 휴전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기 때문에 미국이 이에 응해 1953727일부로 휴전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불과 2개월 4일 후인 1953101일 한·미 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작전지휘권을 주한 UN군 사령부로 이관했다. (이 조약은 19541118일부로 발효되었다.)
 
불완전한 한미상호방위조약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었다. 이 조약의 3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조약국 영토에 대한 외부의 침략이 있을 경우에 한해 조약을 이행하며 한국이나 미국이 적국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전쟁을 일으켰을 경우에는 조약을 발동할 수 없다.”
또한 조약 3조를 발동할 때에도 미국 행정부는 헌법 절차에 따라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유사시 미국의 자동 참전을 보장하고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은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한국 정부는 끈질기게 미국과 협상을 벌이며 설득한 끝에 드디어 1978117일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게 되었다. 이로써 유사시 미국의 자동 참전이 보장되었으며 안심할 수 있는 방위 체제하에서 경제 부흥과 민생 복리에 더욱 힘쓸 수 있게 되다.
 
인민군이 남한을 점령했을 때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 17살이었기 때문에 한 살이 모자라서 인민군이 강제로 징발했던 의용군에 끌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는 따발총을 메고 감시하는 인민군의 지시대로 박격포탄을 메고 따라가기도 하고 금강 강변에서 작전 참호를 파기도 하고, 그들이 먹을 음식을 지게로 지어 나르기도 하고 노역에 동원도 되었다. 그래도 의용군으로 끌려가 개죽음을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철없는 학생들이 교실에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이라는 북한 국가와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하면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면사무소가 있는 저잣거리에서는 평소에 불량배·깡패로 빈둥거리던 젊은이들이 팔에 빨간 완장을 차고 설치며 돌아다녔고 일자무식으로 남의 집에서 머슴 살던 인간들이 면 인민위원회 위원장·초급당 위원장이라고 하면서 평소에 숨기고 있던 남로당원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러고는 원한이 있던 사람들을 반동분자라고 잡아다 괴롭히고, 알 만한 집안의 부녀자들이 뛰쳐나와 인민군에게 공급할 이불을 거둬 가고 젊은이들에게 의용군에 지원하라며 설치고 다녔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민군 앞잡이들이 먹을 것을 다 거둬 가고 우리들은 들에 나가 독사풀 꽃가루를 채취해서 솥에 볶아 죽을 쑤어 먹었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민주청년단이라는 것이 조직되어 죽창을 들고 다니면서 부잣집 영감들·지방 유지들·경찰 가족 등을 잡아다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소위 인민재판이라는 것을 진행하고 현장에서 낫으로 찍어 죽이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공산군의 만행
 
휴전 후 내무부에서 발간한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의하면 6·25전쟁 중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남한에서 학살된 민간인 수는 122799명에 이르고 납북자는 84532명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학살 대상은 기독교인·공무원·군인과 경찰관의 가족·우익 지성인 등이었다. 학살의 80%가 호남 지역에서 발생했고 전체 학살당한 사람의 65%에 해당하는 79708명이 전라남·북도에서 희생되었다.
 
저들은 반동분자라고 지목한 사람들을 정당한 재판이나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단했다. 학교 운동장이나 광장에 부락민을 모아 놓고 반동분자를 처단하시오를 외치는 소위 인민재판을 통해 낫과 삽·죽창·도끼 같은 농기구로 찍어 죽이거나 우물에 수십·수백 명을 밀어 넣거나 예배당이나 창고에 가두고는 불을 질러 죽였다.
 
프로필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CIA(중앙정보국) 24)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CIA ·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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