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21] 장마철에 만나는 탐스러운 꽃,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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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에 자양화라는 이름을 붙여준 백거이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22 09:04:21

▲ 물을 유난히 좋아하여 장마철 즈음에 꽃을 피우는 수국. 윤상구 사진작가

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식물 수국(水菊)은 장마철 즈음에 꽃을 피운다. 이름에 물 수(水) 자가 들어가 있고 영어 이름 하이드레인저(Hydrangea)가 ‘물그릇’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는 점만으로도 수국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산수국을 개량한 관상용 수국 꽃은 암술과 수술이 퇴화한 무성화이다. 겉모습은 탐스럽지만 활발한 번식을 위해 벌이나 나비 등 벌레를 유인하려는 ‘헛꽃’이다. ‘씨 없는 수박’과도 같은 관상용 수국에는 향기도 없다.

토양 성분에 따라 꽃 색깔 결정

▲ 흰색으로 피어나는 수국 꽃은 토양 성분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변한다. 윤상구 사진작가

처음에 수국 꽃은 초록빛을 띤 흰색으로 피어난다. 하지만 점차 파란색, 보라색 등으로 변하는데 이 색 변화는 식물 자체의 작용이 아니다. 수국 꽃 색은 토양 성분, 즉 토양의 pH(수소이온농도·산도)에 따라 달라진다. 토양의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을, 산성이 강하면 남색을 띠고 보라색·자주색·붉은색·자주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꽃 색깔이 다양하게 바뀌어서인지 수국의 꽃말에는 ‘변덕·변심’이 포함되어 있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항저우 자사로 있을 때 어느 사찰에서 수국을 처음 보고 “어느 때인가 신선단에 심었던 것을/ 머지않아 불국토에 심어놓았구나/ 사람 중에 있어도 너를 몰라보니/ 너에게 자양화라 이름 지어 준다”라는 시를 지었다. ‘보랏빛 태양의 꽃’이란 뜻의 자양화(紫陽花)라는 이름을 수국에 붙여준 것이다.

스물아홉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가 된 백거이는 808년 황제에게 직접 간언할 수 있는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는 이때 여러 편의 시를 써서 황제와 관리들의 잘못과 사회의 병폐를 지적했다. 그런 그의 주장은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들은 물론 황제 현종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직급이 강등된 그는 어머니와 딸의 사망을 계기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대 사회 풍자 시를 많이 쓴 백거이

▲ 수국은 그 장마철을 기다려 아름답고 활기차게 피어난다. 윤상구 사진작가

오래지 않아 백거이는 다시 임용되어 태자를 보필하는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백거이는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언행은 많은 사람의 공격을 받았다. 백거이를 미워하는 조정 대신들은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도 유포했다. “백거이의 어머니는 꽃을 보려다가 우물에 빠져 숨을 거뒀는데 이는 백거이가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해서다. 그럼에도 백거이는 ‘상화(賞花,·꽃놀이)’ ‘신정(新井·새 우물)’ 등의 시를 지었다. 이는 불효의 극치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때 백거이는 장쑤성 지방 관리로 좌천되었고 이후 정치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게 되었다.

백거이는 38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시를 풍유시(諷諭詩)·한적시·감상시·잡률시로 스스로 분류했다. 그의 작품들의 특징은 어휘와 문장의 구성이 쉬우면서도 내용에는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백거이의 시는 계층을 막론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백거이의 작품 중 특히 풍유시들은 당대를 이해하는 자료로도 그 의미가 크다. 그는 과중한 세금·관리들의 횡포·권력층의 호사스러운 생활·부역의 고통 등 정치‧사회‧생활상과 그에 대한 비판을 직설적으로 작품에 담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시의 신선이라 불린 당나라 시인 이백은 시를 쓸 때 술 한 잔 마시고 단번에 써 내려갔고 시의 성인 두보는 열 번을 손질했다고 한다. 그런데 백거이는 시를 탈고할 때마다 글 모르는 노파에게 들려주었고 만약 노파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그녀가 뜻을 알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쳤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쉽고 대중적이며 서민이 받아들일 만한 내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이다.

‘비익연리’라는 비유로 유명한 ‘장한가’

젊은 시절 백거이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장편 시 ‘장한가’를 썼다. 이는 길이길이 화제가 되는 명작인데 ‘장한가’ 마지막 연에는 “하늘에서 만난다면 비익조(比翼鳥·날개가 하나뿐이라 한 쌍이 되어야 서로 의지하여 날 수 있는 상상의 새)가 되기를 원했고 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連理枝·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가 되기를 바랐지”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절절하게 비유한 이 표현은 지금도 비익연리(比翼連理)란 사자성어로 쓰이고 있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에서 장마는 전쟁이 계속되는, 고통스럽고 불행한 시기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장마철은 꿉꿉하고 활동하기에 불편하여 빨리 벗어나고 싶은 기간이다. 하지만 수국은 그 장마철을 기다려 아름답고 활기차게 피어난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수국은, 거의 모든 세상일이 무조건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수국에 ‘자양화’라는 당당한 이름을 붙여준 백거이도 그런 생각을 위안 삼아 험난한 세상을 헤치며 그 평탄치 않은 삶을 극복했을 것 같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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